일어놓다

떠내려 간 것들에 대하여

by 무말랭이

"깨 좀 일어놔."

깨는 볶기 전에 씻어야 한다. 물에 담가놓으면 둥둥 뜬다. 그 사이로 돌이 가라앉는다. 가라앉는 돌을 버리고 깨를 씻어내는 것을 충청도 말로 '일어놓는다.'라고 한다.


작은 알갱이들이 물에 떠서 자꾸 떠내려 간다. 때문에 은근히 어려워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즈그 딸내미한테 깨를 한 봉지 쥐어다가 씻어놓으라 했더니 한 줌 밖에 안 남았단다. 엄마와 이모들은 깔깔거린다.


나는 그 즈그 딸내미다. 웃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멋쩍지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다. 될 대로 되라지. 처음 하는데 잘하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닌가. 깨가 둥둥 떠있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을 빼려고 보니 자꾸만 쏟아진다. 돌멩이와 함께 깨가 쓸려 내려간다. 한번. 다시 씻어낸다. 쓸모없는 것과 함께 소중한 것이 쓸려내려 간다. 두 번. 분명 소중했는데. 세 번.


깨로 이루어진 물에 손을 담그면 손에 붙어 조금 징그럽다. 그 아래는 돌 알갱이가 바스락거린다. 입자가 작다 부드럽다. 멍하니 깨와 돌을 만지작거린다. 결국 한 줌만 남은 깨를 가져다가 프라이팬에 볶는다.


알갱이 하나는 의미가 없으나, 그것들이 모여 쥐어짜지면 참기름이 된다. 이러나저러나 곧 너는 음식 위에 감초다. 먹음과 동시에 휘발되는 노력의 산물이라. 그것의 의미를 우걱우걱 씹어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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