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감정 중, 가장 휘말리기 쉬운 감정을 고르라 한다면 수치심이라 대답할 것이다. 넘어지면 아픈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고 보지 않는가. 수치심은 고통을 잊을 만큼 강력하다.
사람마다 역린이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내 모습이 원치 않은 순간에 드러날 때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모두 같다. 웃긴 건, 날 때부터 수치심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습(習)의 무서움을 느낀다.
말이 없는 장면들로 수치심을 배운다. 수치심은 좋은 선생이다. 함구를 가르치고, 절제를 가르친다. 나도 모르는 곳에 역린이 있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만들기도 한다.
좋은 선생이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불현듯 이불 킥을 하게 만들고, 맥락 없이 욕을 지껄이게 만든다. 수치심이 집요하게 나를 우롱하면, 이미 밑바닥인 거 더 망가지겠냐며 나를 내려놓는다. 이는 마음 편하게 사는 방법이긴 하나, 잘 사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걸쩍지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