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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개 Jun 10. 2023

글을 위한 글

나는 멋쟁이가 아니지만

아무거나 쓰고 싶어 지는 순간이 있다. 아무런 소재도, 감정도, 사건도 없는데 그냥 글이라는 것을 쓰고 싶은 그런 순간. 지금 내가 그렇다. 이런 순간에는 글을 잘 쓰고 싶다. 왠지 거창한 표현도 쓰고 싶고. 길고 그럴듯한 문장을 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멋쟁이가 아니라서.


그래도 쓴다. 이유는 글이 쓰고 싶으니까. 이것은 글을 위한 글이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내 시선에 닿는 것과, 내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쫓아 글을 적어 내려 가기로 했다. 다른 곳을 보면서 글을 치는 것은 마치 팬을 기타 대신 들고 관객들의 눈을 마주치면서 연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듣는 이 없이 나는 이 카페에서 글이라는 공연을 한다. 제목은 고요 속의 외침으로 할까.


속으로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 글이 바로 내 시선에 닿는 저 사람에게 닿지 못해 서글퍼지기도 하고, 공간에 가득 차있는 감정을 독점하고 있다는 우월감이 들기도 한다. 참 이상한 기분이다.


그다음으로 든 감정은 약간의 불안이다. 내가 이런데 저 사람이라고 악을 지를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지, 생각을 안 하는지, 얼마나 추악하거나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속으로 무수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지언정 그 속을 모르는 세상이라 조금은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멀리서 보기에 푸른 봄이라고 했던가.


조금 타성에 젖는다. 끝에 착잡함이 묻어난다. 그래도 타인을 있는 힘껏 사랑해야지.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그다음에 주변사람들 하나 둘, 조금씩 조금씩 커서 이 세상을 사랑하겠다고 생각했다. 거창하고 숭고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면은 추악한 법이다.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한 선택. 그걸로 세상과 대충 협의를 보기로 한다.


흠뻑 빠져있어야 힘이 덜 든다. 오늘 내 인생에서 가장 늙어있는 내가 몇 안되게 깨달은 것 중 하나다. 주변 사람들도 미친척하고 좋은 것만 봐야지 나쁜 것들만 보다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꾸 침침해지는 것 보다야 미친 세상에 나도 미치는 게 맞지. 그렇다면 세상을, 삶을 사랑해 내는 수밖에.


의식의 흐름은 결국 본질에 닿는다고 했다. 나의 본질은 사랑과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  진작에 껴안을 것이지.


다른 이의 감정도 나 몰래 채우시라며 독점하고 있던 감정을 주워 담으며 일어난다. 방백의 공연은 이제 끝났습니다. 타인 하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당신도 이 공간에 내가 모르는 아우성을 늘어놓았겠지. 혼자 짙은 공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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