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과 성격이 변하는 상관관계
지난 아침엔 우중충하니 비가 올 것 같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고 보니 9시 51분이고, 출근시간은 10시였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거친 바람은 뺨을 후려치고 내가 가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불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공복에 유산소? 오히려 좋아.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숨차서 죽을 것 같지만 일단 세이프. 사실 2분 늦었지만 오늘따라 아름다우신 나의 상사께서는 시계를 바라보지 않으셨다.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고 운동을 간다. 문득 출근하며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되뇐다. 그렇다면 난 무엇이 중요하지?
퇴근하고 나서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했다.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세에상에 네이버 카페를 로그인해봤더니, 내가 운영자라고 되어있는 카페가 있었다. 제목이 무려 <아프고 빛나는 청춘의 기록>이었다. 세상에…이런 글자를 아무렇게나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니. 용기 있던(?) 나를 향한 존경심과 환멸이 공존하는 기분이었다. 이는 G랑 S랑 스무 살 무렵 셋이서만 만들어둔 카페였는데, 게시글이 두 개밖에 없었다.
무려 2016년 게시글이었고, <20대 친구들이랑 하고 싶은 일들>이라는 이름으로 주욱 적어둔 버킷리스트가 하나, 친구가 적어둔 짤막한 문장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무언가 꾸미고 기록할만한 공간을 만들어서 사부작 거리는 걸 좋아했던 내가 생각이 날 것도 같다. 당시엔 관계가 정말 중요했나 보다. 글에도 사진에도 나는 없고 죄다 타인과 풍경만 가득하다. 그래, 난 그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조금 지나서는 타투를 했었다. 아, 맞아 이거 다짐이었었는데, 하고는 팔에 타투를 만지작거린다. 맞아 이때는 또 이것들이 중요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화두, 그리고 나는 선이 될 수 없으니, 악을 잊지 말고 선을 행하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개하게나마 잘 살아내자고. 그렇게 결심하면서 타투를 새겼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다짐에 비해 너무 많이 잊었다. 그래도 나름 미개하게 잘 살고 있지 않나? 살아남고, 살아내는 것에 급급한 게 아닌 것만으로도 제법 다행이니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평가와 동기의 기준을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둘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였다.
더듬더듬 중요한 것을 돌아보다 보니 작년까지 왔다. 작년엔 배배 꼬아둔 인생을 풀고 달래는 게 중요했다. 한참 광광거리며 주변사람들을 괴롭히고 나니 좀 안정적인 인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달라진 화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하자‘다. 고쳐야 되는데 잘 안돼서 자꾸만 일상에서 마주한다. 쪽팔리고 곤란하다. 뭐, 쪽팔려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며 대충 얼버무린다. 이전보다 나아진 건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는 고치는 것만이 문제인가? 물으니 또 그건 아니었다.
이럴 땐 최근에 있던 사건들을 한번 곱씹어봐 줘야 한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내 첫인상으로 ISTP라고 말하는 거보니 성격이 많이 변했기는 했다. 어쩌면 원래 내 성격이 이런 인간이었는데, 그냥 지나치게 눈치 보고 약해져 있던 건 아닐까도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성을 제법 잘 길러놨았는데 요즘은 좀처럼 작동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무언가를 놔버렸다는 감각이 들었다. 아마 이건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편한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편한 사람들도 편한 사람들이지만 인연이 그리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해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뭘 하더라도 이어질 인연은 이어진다는 건 제법 생소한 감각이다. 이것도 편한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에 알게 된 감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선순위가 변하지는 않았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관계, 사랑은 진부하게도 1순위다. 다만 나에게 잘 맞는 것을 찾기 위해서 맞춰보기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이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이 해보니 접근 법이 달라진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고 곁에 둘 것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품는 방식 또한 내가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 바꿔둔 성격이 관성적으로 돌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론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으니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춰야 될 것이다. 그러다가 사회성이 필요하면 또 자연스럽게 변해갈 테다. (고칠 생각이 없다는 걸 참 길게도 얘기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삶에서 우선순위가 변한 게 아닌데 성격과 생각이 바뀐다는 것 말이다. 삶에서 철학과 사유가 중요한 건 아마 이런 것 때문이지 않을까? (잘 모르지만) 내 동기는 타인에게 있다. 누구와 어울리고 싶은지에 따라 성격까지 달라지니 참 내 인생을 내가 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나를 갈고닦아서 어딘가에 또 나를 던져둘 준비를 한다. 그게 나를 망가뜨릴지라도 내 선택이니 후회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 지루하게 조금씩 변해가야 하겠지. 그러다 보면 또 어딘가의 누구와 새로운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