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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Oct 01. 2021

직업으로서의 에디터

- feat. 즐거운 편지

지금이야 야구 경기 중간,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를 연결하는 중간계투의 중요성이 그래도 어느 정도 부각되고 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중간계투는 적당한 명칭이 없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다. 1이닝 길어야 3이닝을 소화하는 중간계투는 그저 선발과 마무리 사이의 ‘여백’을 메워주는 보충제 같은 존재였다. 야구 역사에서 투수 분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문적인 역할과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사실 에디터라는 존재 역시 이와 비슷하다. 근대 이후 이루어진 다양한 직업 분업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디터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야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니까. 그러나 야구와는 다른 점이 있는데, 편집자는 선발투수와 마무리 투수, 저자와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존재이기 전에 독자와 저자를 잇는 존재라는 점이다.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이를 디자이너에게 전달해 최종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절차적 기능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읽는 사람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가 곧 편집자라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구술을 받아 적고 종합한 성경의 제작 과정에도 편집자가 존재했다. 때문에 같은 사람이 같은 말을 했음에도 성경은 편집자에 따라, 그 편집자가 겨누고 있는 독자에 따라 표현이 바뀌었다. 어떤 성서에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써있지만, 다른 성서에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살짝 단어가 첨가되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 마음은 가난한데 물질적으로 부유했던 세리(세금 징수관)들을 중심으로 포교했던 마태오가 편집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세리는 인두세, 토지세 등 나라에서 정한 몇 가지 고정 세금 외에 기타 세금 징수 항목과 이율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또 돈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세금을 대납하고, 대신 그에 대한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을 겸했다. 게다가 세금 징수관 면허를 받게 되면 직접 세금을 걷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따로 고용했는데, 이때 입찰을 통해 세금 징수액 규모를 가장 크게 써낸 이들을 세금 징수 대행인으로 뽑았다. 그래서 당시 세리는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고리대금업과 재하청을 통해 큰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그랬으니 ‘마음이’라는 단어를 하나 슬쩍 끼워넣을 수밖에. 마태복음의 독자들 가운데 세리들이 많았던 탓이다. 


예로 든 사례가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편집자는 알고 보면 이처럼 다양한 이해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직업에 가깝다. 작가가 내세우는 제목, 강조하고 싶은 부분,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모티브를 적절한 지점에서 타협시켜야 하고,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그것이 가닿았을 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게 될지를 고민해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에디터가 독자의 반응을 고민하고 기다리는 대신, 그냥 작가의 원고를 기다리고, 디자이너의 작업물을 기다리는 데에만 머물러 있다면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사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에디터로 일하고 있거나, 에디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어떤 야구 선수도 ‘훌륭한 중간계투 선수가 되어야지!’ 하고 당찬 포부를 밝히는 경우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에디터가 다만 기능적으로 저자, 디자이너, 제작자 사이의 조율에 머물러 있을 뿐일 때, 때로는 그런 역할에만 한정될 때, 단언컨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中 


에디터는 본질적으로 기다리는 직업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디자인을, 작가를, 인터뷰이를 기다리고, 피드백을, 수정 사항을, 독자의 반응을 기다린다. 다만 일찍이 황동규 선생이 에디터들에게 바치는 시(아님), ‘즐거운 편지’에서 그 기다림에도 다양한 자세가 존재한다고(중요) 쓰셨는데, 지금 갈 곳 잃은 에디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때로는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기 위해, 때로는 딱 한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종일 불펜에 대기하고 있는 중간계투 투수들의 기다림이 야구의 중요한 일부이듯이, 때로는 맹목적이기 그지없는 에디터들의 기다림이 좋은 이야기와 콘텐츠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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