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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c 01. 2021

제주생활백서

제주로운 생활자를 향한 기록 : 노동의 가치

현재의 내가 나의 내일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서 나는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꼭 생산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최우선에 두는 생활자를 지향하고 싶었다.

'그냥'이라는 감각은 소중하다. 누구의 욕망도 아닌, 온전한 나의 욕망이기에
우리는 '그냥'이라는 감각에 귀 기울이며 그냥 해보고 싶은 일을 그냥 해봐야 한다.
"그 나이 되도록 뭐 했나?"
"방황했습니다!"
"치열하게 살았군."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어딘가 나에게 맞지 않았던 캐디 생활을 버리고 남겨진 소득으로 제주로운 생활자를 시작했다. 거주비용과 여행비용을 제외하고 생활비를 아껴가며 그냥 해보고 싶었던 일에 계속 도전했다. 제주에서 열리는 학술이나 공연, 크고 작은 문화행사, 축제를 돕는 스텝일들을 주로 많이 했다. 계절마다 할 수 있는 단기 일자리도 다양했다. 겨울엔 귤 따기에 도전했고, 연중 열리는 제주의 다양한 행사에서 코스튬을 착용하고 홍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리마켓에 셀러로 참여해 내가 만든 소품들,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하며 다양한 밥벌이를 궁리했다.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재밌고 다양한 일들이 단기로 사람을 구하는 형태여서 가능했고 대부분 이력서 없이 바로 채용됐다. 나는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선택이 가능한 오늘을 살고, 목적 없이 빈둥거릴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밥벌이와 놀이가 일치하는 생활자로 유유자적 시간을 즐기며 매일 놀 궁리에 빠진 모양으로 보냈다. 최소한의 생계를 영위하면서도 다양한 일들을 꽤나 즐기며 보냈는데 언제나 함께 일하는 친구들 중 나는 가장 연장자였다. 

그는 성인이라기보다는 방치된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경우가 아주 흔한 것은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이한중 역.


내 인생 외에 책임질 일이 없었던 나는 나이가 밝혀질 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단기로 떠도는 변변한 직장이 없는 연장자였다. 35세 미만을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아르바이트 시장, 그리고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들은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자본이 자본을 낳고 평생직장은 사라졌으나 평생 일을 해서 소득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에서 어쩌면 근로소득만으로는 답이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사회에서 가진 것 없이 어정쩡한 경력의 내가 유일하게 내 시간과 노동을 투입해서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이 언제나 자본으로 이동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에게는 노동이 자본의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사회 어딘가에 필요한 노동이 분명 존재하고 계속된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절하되어 가는 사회가 안타깝다.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워라밸 균형이 이루어졌던 날들, 노동을 통한 밥벌이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 힘으로 나는 또다시 밥벌이에 묶인 오늘을 살고 있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해본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수많은 길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 싶고 제주로운 생활자를 오래오래 지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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