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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Nov 28. 2021

제주생활백서

나만 집 없어, 내가 있는 집

제주에 왔을 때 일정한 직업이 없던 나는 비정규직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대부분의 날들을 그렇게 살아왔다.

서른 즈음 제주로 와서 5년 정도는 이것저것 하면서 그럭저럭 잘 살아졌다. 직업을 가져 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백수로 보내며 워라밸을 외치며 '뭐라도 되겠지'의 마음으로 하루는 되는대로 인생은 나름 열심히 살았다. 임금에서 주거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손바닥 만 한 집이라도 내 집을 갖는다면 조금 더 오래 덜 일하는 행복한 삶을 제주에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집은 건물로서 존재하는 집보다는 대한민국 어디든 땅을 사서 캠핑카나 카라반을 두고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집에 가까웠다. 실제로 중고 스타렉스를 구입해서 캠핑카로 열심히 만들어 보기도 했다. 제주에 살아보니 제주가 좋아졌고 제주가 아니라면 강원도에 살고 싶었다. 뭣도 모르는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막상 종잣돈이 모여 땅을 알아볼 때는, 집값은 물론 땅값이 너무 비쌌고, 내가 필요한 만큼의 작은 토지는 매물로 잘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과 저렴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 땅과 집을 알아볼수록 희망이 사라져 갔다. 캠핑카에 살기엔 나의 인생은 맥시멀리즘이었고, 집을 사기에 내가 모은 돈은 턱없이 부족하고 초라했다. 헐값에 캠핑카를 처분한 뒤 3년 계약직의 삶에 코로나가 왔다. 어차피 집도 캠핑카도 땅도 소유하지 못할 바엔 계약기간 3년간 돈을 모아서 내 유일한 재산 레이(경차)로 러시아~몽골~동유럽으로 차박을 떠나는 것을 단기적 목표로 삼고 살았. 코로나의 장기화는 해외여행의 갈증을 만들었지만,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점이 계약직으로 묶여버린 일상에 위안이 됐다.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내 삶에서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차박 여행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던 2년 차 지난해 가을 그를 만나면서부터이다. 그는 만난 지 한 십일쯤 결혼을 하자고 했다. 제주에 온 지는 3년이 안되었고, 친구도 없고, 담배와 술은 멀리하고, 복싱을 좋아하는 그가 이상하지만 괜찮은 사람 같았다. 키스를 할 수 있는 얼굴에 적당한 키, 은근히 챙겨주고 예쁜 말을 쓰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의 폭이 넓은 그가 좋았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그와 서로의 반려인으로서 함께하는 삶을 그리게 되었다. 아껴 쓰고 나눠 쓰며 함께 저축을 했더니 혼자 모을 때 보다 돈이 더 빠르게 모였고, 넓은 남의 집에서 살아보니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 낭비되는 공간들과 그 공간을 청소하는 데에 드는 시간들이 아까워졌다.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고 우리의 취향이 반영된 작은 집에서 함께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집을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득문득 사는 게 쉽지 않구나 느낄 때가 많다.

주식, 코인, 부동산, 재테크, 투자, 투잡, 파이어족.....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룬 거 같고, 나는 이미 늦은 것만 같고, 내 집이 꼭 있어야 할까, 어떤 것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에 대한 방향 자체에 의문이 들 때도 많아진다. 방향을 고민하고 수정하며 내 삶이 어떻게 나아가는지 기록해 두다 보면 언젠가는 선명해지지 않을까.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저마다 다른 길이 있을 뿐, 선택을 했다면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면 되겠지. 내 인생이 누군가와 함께 삶을 나눌 수 있고, 의미 있는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그중 한 사람을 얻은 것 같아 요즘 내 삶은 전보다 안정적이고 풍요롭다.

내 집 마련에 고군분투하는 모든 부린이를 비롯하여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이번 생은 선인장_나만 집 없어


나만 집 없어
나만 집이 없어
세상에 이렇게도 많은 집 중에
내 집은 없어
나의 집은 없어
언제쯤 나에게도 집이 생길까
빌라 아파트 오피스텔 모두 좋아
포근하고 날 지켜줄 너를 꿈꿔
집꾸미기
요리하기
이불정리
친구들 모아서 파티
나만 집 없어
나만 집이 없어
언제쯤 나에게도 집이 생길까
(이번 생은 선인장/lyrics by. 성현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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