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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 이준서 Jul 22. 2018

제 5차 산업혁명

진짜 영성(靈性, Spirituality) VS 가짜 영성

학자들마다 시기에 대한 의견차이는 있으나 인공지능(AI)이 초지능을 갖는 특이점이 오는 시기를 2045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포스트휴먼이 온다란 책에서는 인간 이후의 존재자 즉 포스트휴먼이 출현하는 시기를 또한 2045년으로 보며, 가상현실(VR)과 드론이 일상이 된 가까운 미래를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의 배경 2045년이며 영화 '매트릭스' 또한 2045년을 배경으로 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단!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을뿐…….


※ 포스트휴먼(posthuman) - 현 인류보다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서, 지식과 기술의 사용 등에서 현대 인류보다 월등히 앞설 것이라고 상상되는 진화 인류. 생체학적인 진화가 아니라 기술을 이용한 진화로 반영구적인 불멸을 이룰 것이라고 여겨진다 ☞ 다음백과사전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얘기를 좀더 해보면 때는 아주 가까운 미래, 2045년 드론과 가상현실세계 VR이 상용화된 세계이다. 주인공의 집을 드론을 이용하여 폭탄을 설치하거나 -실제 인공지능을 장착한 드론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연구도 진행중- 가상현실 내에서 사용하는 전자코인, 그 코인을 빚져 가상현실 안에서 노동을 하는 장면 등은 픽션이 아닌 팩션이 될 확률이 크다. 지금 현재 2018년의 암울한 현재를 2045년에 그대로 투영하여 가상현실세계는 하나의 탈출구로서의 작용을 한다. 마치 3S(sports, sex, screen)정책처럼 그것은 교묘히 대중들의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게 하며 현실을 등한시하고 현실세계의 퇴로를 차단하여 더욱더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엘리트들의 대중우민화전략을 무척 닮아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드론이나 가상현실 VR, 증강현실 AR, 전자코인 등은 현재 4차산업으로 곧 우리삶에 들어올 문명으로서 곧 생산현장의 ICT화를 의미한다. 1차에서 바로 앞의 3차 산업혁명까지 돌아보면 4차 산업은 전기로 인한 2차산업과 닮아있다. 그것은 곧 생산성의 비약. 생산성의 비약을 다른 말로 풀어보자. 그것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포드생산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곧? 노동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것. 어떻게? 자동화로 인한 노동의 감소, 대량실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러다이트운동(1811년부터 1817년까지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벌인 반자본주의 운동, 기계파괴운동)까지 벌어졌는데……. 이 점이 4차 산업과 매우 닮아있다는 것이다. 생산현장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3D프린터가 남는다 생각해보자. 더이상 노동자는 필요없다. 그렇게 잘려나간 노동자가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러다이트운동이라도 하자'하고 컴퓨터를 부술 수도 없다. 인터넷을 부술 수 있는가? 본인도 현장작업자이지만, 3차 산업혁명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사로 따져서 사무실은 현장을 서브 serve하는 역할이다. 그러므로 3차산업으로 인한 생산성혁신은 크지 않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다. 생산성의 비약적 혁신이란? 아쉽게도 그것은 곧 생산의 3요소 토지, 노동, 자본 중 노동의 감소를 의미한다. 글쎄……. 큰 그림에서 보면야 반사작용으로 인한 신성장산업으로 인한 새로운 일거리,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신직업이 생길 수도 있고,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제도가 생겨나 좀더 여유로운 생활로 여가를 즐기고……. 장및빛미래를 투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에 당신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아니 엘리트사회가 당신을 끼워줄 것이라고 보는가?

레디 플레이어 원을 한번 보시길. 오락적인 면에서도 재미있지만 곧 다가올 미래라는 점을 감안해서 보길 바란다

포스트휴먼이 온다(이종관 지음)라는 책에 이러한 미래사회에 대한 철학적담론이 참 재미있게 담겨있다. 철학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 책은 한편으로 언어의 독해력을 시험하는 듯 하다가도, 그러나 또 깊게 음미하면서 읽어보면 틀린 말은 없다. 분명 이러한 철학적 질문과 성찰만이 인간이라는 고깃덩어리를 단순히 기계의 창시자, 도구의 창시자가 아닌 진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명시적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정립해주는 것이다. 태어났으니 산다는 비철학적이며 반철학적인 존재까지도 담론의 과정의 거치면 태어난 이유를 유추하고 반추하여 삶에 참여하는, 진정한 존재자로도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온다는 가설 중 가장 가까운 2045년을 27년 남긴 2018년, 현재에 사는 당신이 반드시 부여해야 할 삶의 목적인 것이다.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줄 인간의 창조성이란 방탄조끼조차 입지 않은채 금속머리에 금속팔다리를 갖춘 휴머노이드를 상대할 자신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진짜 용기있는 사람이거나, 용기와 만용을 구별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본인은 99% 후자라 본다.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는 인간으로서 맞는 온갖 괴로움,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최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을 위해 메텔과 함께 기계별로 향한다. 온갖 모험이라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목적을 위해 다다른 기계별. 기계몸을 가진 기계인간들이 사는 방식은 단 하나. 그저 사는 것이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 배가 고프지 않으니 노동을 할 필요도 없다. 몸이라는 매체에 대한 흥미로운 담론이 '포스트휴먼이 온다' 책에 나온다. 메를로퐁티의 지각이론에 따르면 몸과 세계와의 관계는 일방적 지향성이 아닌 상호교호관계를 통해 서로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교감을 통한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 비단 몸과 세계의 관계만이 아닌 물질계와 현상계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원리이다. 몸은 의식을 담는 도구로서 그 도구가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사는 세계를 접하고 수용하게 된다. 감각적 세계에서 지각이라는 접촉적 방식을 통해 복잡계의 세계까지 이해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지혜이며 통찰이라고 부른다.

자! 이제 더이상 몸은 세계와의 교착점이 아니다. 기계몸로서 세계와의 단절감은 애니에서는 죽음으로 나타난다. 기계몸이다 보니 죽음이라는 것은 부품의 해체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을 본 철이는 다시 열차에 몸을 싣고 기계몸이라는 꿈을 접고 길을 떠난다.


구글 글래스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몸과 세계, 의식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몸의 지각체계를 단지 그자체 수단으로만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수단을 통해 세계를 접하여 이해하는 단계를 무시하고 단지 몸을 그 구글 글래스를 사용하기 위한 개체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사는 세계는 물리학적으로 3차원 공간이다. 그래서 3의 법칙을 많이 보게 되는데, 항상 3이 7을 이끌어 10수를 완성하게 된다. 얼굴에 구멍 7개, 몸에 구멍이 3개. 이렇게 몸은 신성한 우주의 법칙을 담은 신성한 도구이다. 세상을 명징하게 바라봐야 할 눈과 세상을 재단하는 손을 그저 도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다. 세계와의 접합점을 키보드에서 모니터로 돌린 아이패드와 비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뜬금없는 영성과 아직 채 4차산업도 완성되기도 전에 5차산업을 거들먹거리는 걸까?몸과 ICT와의 교착점을 없애는 것, 4차산업이 생산현장의 ICT결합이라면 5차산업은 직접 인간의 몸에 ICT를 결합, 이식하는 것. 예를 들어 4차산업의 웨어러(Wearable 옷이나 시계, 안경처럼 자유롭게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기기이다. 미국 군사 훈련용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점점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패션, 이동통신기기 및 디지털 제품에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을 넘어 스스로의 몸에 인공지능칩을 이식하고, 현재 구글에서 추진중인 칼리코프로젝트(인간수명연장프로젝트)와 같은 바이오산업을 결합하여 영생하는 인간이 되는 것, 곧 신이 되는 것이 5차산업일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에 입각한 포스트휴먼이 되는 것, 바이오(bio)산업을 통해 수명연장을 이루는 것.


웨어러블 기기들
칼리코 프로젝트 등

인간진화의 과정에서 산업화의 기여정도가 얼만큼 차지할 거라고 보는가? 문명은 분명 발전했으나 그로 인한 엔트로피, 즉 수많은 질병, 오염 등에서 우리몸은 얼마나 적응하였는가? 그 많은 신약들은 다 누구입으로 들어가며 그 많은 항생제는 얼마나 좋은 세포들까지 죽여나가야 하나? 제약회사들은 커가는데 왜 가난과 질병은 언제나 상존하는가?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왜 아프리카 아이들을 구제하지 못하는가? 아니 왜 안 하냐고 묻고싶다.


우생학적 견지에서 도태한 종은 스스로 퇴출된다. 그것이 인간세상으로 회귀하면 자연도태가 아닌 인위적인 조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초인공지능이란 인공지능의 의식이 인간을 넘어, 인간고유의 인지능력까지도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또다른 인공지능을 만들 수도 있는 것. 혹은 인간고유의 능력인 창조성의 발현을 볼 수도 있는 것. 물론 아직까지는 요원한 얘기이며, 상상해봄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상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 끝점까지 상상력을 추리해본다면 남는 것은 몸의 영생과 깨달음을 얻는 것.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몸은 우리 의식과 세계와의 교착점이다. 이런 교착점을 더 공고히 해주는 오래된 방법이 있으니……. 바로 영성이다.


※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이 낱말이 사용되고 있는 문맥에 따라 다음의 것들을 의미한다:

1. 궁극적 또는 비물질적 실재(實在, reality)

2. 자신의 존재의 에센스(essence, 정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내적인 길(inner path)

3. 의거하여 살아야 할 준칙으로서의 가장 깊은 가치들과 의미들 ☞위키피디아


영성을 자꾸 종교화시키다보니 비실제적이고 비현실적인, 심하게는 사이비화시키고 있으나 실로 영성은 그 모든 실제적인 종합체로서 그 자체로 완벽하다. 철학, 종교, 과학 그리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도 -물질적으로도- 가르치는 종합적인 학문이자, 처세술이며 이론이자 실재이다. 그 방법으론 수행과 명상법 등이 있다. 신에게 무얼 해달라 비는 기도와는 다르다. 산업의 고리가 1차, 2차, 3차…… 그렇게 가다보면 언젠가는 궁극의 실체인 영성과 만나게 된다. 4차산업으로 인해 살아남은 소수들이 자동생산화에 따른 시간의 유희를 영생과 깨달음에 바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수행이 아닌 과학으로 궁극의 진리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그걸 알아야 한다. 가짜 영성은 궁극의 진리를 설파하지 못할 것이다. 몸은 세계와의 교착점. 이질적인 과학의 산물을 기계몸은 그자체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물음을 위해 산업은 그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기계몸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몸과 의식의 교호작용, 여기에 더하여 외부세계와의 상호에너지의 표출과 교환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의식과 몸을 세계에 적용시켜 나간다. 몸이라는 하나의 표현수단이 의식의 의도와 맞물려 현상계를 구성하고 실상계와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이 만든 수단이 자연과 느낌, 감정을 나누며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아이언맨의 수트와 내가 운전하는 차는 내 공간 안에서 몸으로써 인식되나 몸은 아니다. 기술적인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인문윤리학적 견지에서 선행되어야 할 문제이다.

진정한 영성은 물질을 배척하지 않는다. 물질은 정신과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포스트휴먼은 영성인간이 될 것이다. 산업이 아닌 진화론적에서, 적응론적에서 정신과 몸과 세계가 조화를 이룬 내면의 평화를 이룬자, 감히 포스트휴먼이라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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