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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 이준서 Jul 01. 2018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호흡과 차크라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유치하기도 하지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단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에 의한 비선택적 결과인가 혹은 나는 기억은 못하는 내 영혼의 선택적 삶인가 아니면 자연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대자연의 섭리에 의한 탄생인가. 태어났으니 산다는 염세주의도 종국적으로 생의 끝에 다다를 땐 한 번쯤 반추하는 근원적 질문이리라. 삶이 치열하지 않은 자에겐 어쩌면 주어지지 않을 질문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추구하였으나 항상 내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절망해 본 적 있는가. 항상 질문이란 호기심있는 자와 용기있는 자의 특권이다. 질문은 우둔해도 답변은 현명할 수 있다는 우문현답의 명제처럼 우둔한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우둔한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와 같은 목적의 방향성, 어떻게라는 방법론상의 문제를 함께 엮어야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기인식이 더 확고해진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그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으며 또 살아나갈 것인가. 삶이 객관적인 방정식이 아니듯 다양한 정답을 추론하고 유추할 수 있는 지혜와 열린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그대는 그 어떤 대답을 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무엇을 찾던 적이 있지 않은가. 딱히 잃어버린 것도,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항상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열쇠를 준다. 무엇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날아든 흥부의 제비가 물고 온 열쇠. 건강이란 키 key, 성공이란 키, 결혼이란 키, 돈이란 키… 영화 매트릭스에서 키메이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의 창시자 아키텍처에게 가는 키를 준다. 그 키를 꽂는 순간 네오에겐 선택의 문제가 주어진다. 인생의 키가 주어진다는 것은 항상 그 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이 순간 이곳에 머물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그전에 그 키를 찾아야 한다.

그 당시 강한 이끌림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단어가 있다. '호흡'과 '차크라 chakra'. 그 당시라 함은 그렇게 한참 키를 찾던 때이다. 자, 열쇠가 있으니 이제 그 키를 꽂고 돌려야 한다. 항상 두려움은 남겨질 자의 몫이다. 다음 백과사전을 펼쳐보자


차크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바퀴' 또는 '원형'이라는 뜻을 지닌다. 의식 상태이든 무의식 상태에서든 지속적으로 회전하는 공 모양의 차크라는 인간의 감각, 감정, 신체 기능을 지배하고 있는 에너지 센터다. 차크라가 담당하는 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우주의 원천적인 생명력과 영적 에너지의 각성이다. 에너지를 받아 전달하고 진행시키는 에너지 체계는 정신적 힘과 신체기능의 조절을 담당하고 영혼과 육체를 통합시켜 준다」


호흡(呼吸) : 산소를 이용해서 영양소를 분해하여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다. 단순하게 숨을 쉬는 것을 호흡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정한 의미의 호흡은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라는 것을 유의하도록 하자」


차크라란 말은 일반에게 생소한 말이지만 호흡은 간단하게 그냥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일어나는 폐에 의한 날숨과 들숨의 생명유지작용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단전으로 숨을 쉬는 복식호흡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폐로 넘어가고 나중엔 목으로 숨을 쉰다. 그래서 목숨이 넘어간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단전호흡이 좋은 게 그런 이유이다. 복식호흡을 통해 통해 유년시절의 몸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1분에 사람들은 평균 18, 코끼리는 10회, 악어와 거북이는 4회의 숨을 쉰다. 평균 호흡수는 수명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활성산소량이 많은 운동선수가 수명이 짧은 이유이다. 그래서 요가와 같은 수련에서 호흡을 중요시한다. 본인이 아는 수련법 중 호흡을 반대로 아주 거칠게 해서 몸속의 쿤달리니(산스크리트어: कुण्डलिनी Kundalini는 인간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이다. 이것은 생명과 영혼의 근원이며, 이것이 있으므로 살고 없어지면 죽는다. 이것을 잠에서 깨우는 자는 초인이 될 수 있고 못 깨우는 자는 속인으로 머문다 - 위키백과)를 깨우는 수련법이 있는데 명칭이 아난다만달라이다. 두 번 해 본 경험이 있는데 사전에 숙지하지 않고 갔다가 좀 놀랐었다. 시간은 30, 40분 정도 계속 이어지는데 정말 온몸의 진이 다 빠지도록 거칠게 호흡을 한다. 개인적인 소견은 이러한 인위적인 호흡법을 통해 쿤달리니를 깨우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수련이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의 경우일 것이고, 구루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수행자들은 자연스러운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


쿤달리니란 개념은 고대 인도에서 언급되는 척추 기저에 자리한 원초적 생명에너지이다. 뱀처럼 똬리를 튼 그림으로 표현된다. 그것이 척추에 존재하는 7개의 차크라를 차례로 통과하여 머리 꼭대기 백회 -사하스라라- 에 이른 모습을 천 개의 연꽃으로 표현한다. 세계 각국 성인들의 머리 뒤에서 빛나는 후광과 연관시켜서 이해하면 되겠다. 각 차크라의 위치와 역할은 다음과 같다.

7개의 에너지 센터, 차크라
지구에 존재하는 차크라의 위치

인간에 있어서 최상위의 차크라는 사하스라라이다. 동물에게도 차크라는 존재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최상위의 차크라는 물라다라이다. 그래서 동네 개들이 코를 땅에 처박고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그들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차크라를 행하는 것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냐. 곧 인간은 인간의 최고선, 아즈나와 사하스라라를 통해 지혜의 빛을 밝히고 신과의 합일을 통한 신성을 이 땅에 밝혀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 주위에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콧방귀를 뀐다. 그래서 아예 입을 막게 되는데, 현재보다 인간의 의식이 낮았던 2천년대의 예수는 어떠했으랴. 결국 죽지 않았던가.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을 떠올려보라. 이러한 자각이 30살 넘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온라인을 통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명상 법인체의 회원이며 포탈 검색 다음의 영성카페 운영자 -카페장은 아님-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우파니샤드라는 인도 고대 경전에서는 우주원리를 브라만(Brahman;梵)이라 하여 개별적 원리인 아트만(Atman;我)과의 일체인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궁극적 이상으로 하고 있다. 우주적 원리인 브라만이 실재적 현상계를 통해 다원성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 가운데 오직 브라만만이 실재할 뿐이고 나머지는 환영, 마야 maya에 불과하다. 곧 개별적 아트만이 곧 브라만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적 영성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양자물리학이라는 최신 과학 트렌드와 접목되면서 비약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에디슨 못지 않았으나 덜 알려진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스와미 비베카난다와의 교류를 통해 물리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갔다. 우리의 세계는 3차원 세상이나 우리가 이 3차원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시각을 통해 들어온 2차원 이미지를 뇌를 통해 3차원 홀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보통 스마트폰을 통해 글을 쓰는데 내가 이 스마트폰을 인식하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점, 선만을 인식하지 면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손으로 만졌을 때 그 폭을 인지하지 눈을 이 스마트폰의 뒤를 보지 못하지 않는가. 이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차원 이상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즉 개별적 실체인 아트만을 통해 궁극적 실재이며 실체인 브라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드러난 한 면, 아니 수많은 점들과 선들로 이루어진 2차원 세계를 보고 있다. 정말로 우리가 지혜의 눈을 깨우고 아트만을 밝힌다면 이 스마트폰을 이루는 원자의 99%가 빈 공간, 즉 이 스마트폰은 환영임을 알 수 있다. 과학으로 밝힌 바이므로 이의가 없길 바란다.

니콜라 테슬라
색즉시공 공즉시색 -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99.9%가 비어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각자 근기에 맞춰 살기 마련이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어야 되겠는가. 실제로 이 세상엔 솔잎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현재 소수의 지배자들이 갈잎을 먹고 산다. 앞에서 이 세상이 환영이라 했는데 이 환영에 속해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일반인들에게는 실재하는 세상이다. 이 매트릭스 세상을 알고 헤쳐나갔다 하여 혹자는 부처를 해커라 일컫기도 한다. 그분들이 일찍이 이 매트릭스 세상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비유와 은유를 통해 밝혀놓고 있는데 또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여 혹세무민하고 종교 비즈니스를 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리하여 참다운 교리들이 사이비로 전락하고 역선택의 오류를 범하게 한다. 세상 참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의 물리적 몸을 플라스마나 빛의 몸으로 기화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한 세상 살아나가야 한다. 항상 조화와 균형이 문제 되는 바. 좌뇌와 우뇌의 매트릭스에 갇히지 말고 정신과 물질의 균형을 잡아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가까운 미래, 정신과 물질을 업그레이드할 프로젝트가 준비되어 있다. 이 세상은 부당하게도 권력을 잡지 말아야 할 소수의 존재들이 대다수 지구인들이 누려야 할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뺏고 있다. 이 세상을 일(全一)의식으로 조망하지 못하고 전문가적 좁은 지식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학문의 분과가 많아질수록 통섭의 관점은 좁아지고 단일지식이 전체의식의 상승을 막고있다. 각 분야에 드는 에너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양의 엔트로피를 발생하여 이 세상은 마치 갈때까지 가보자는 식의 치킨게임  -2대의 차량이 마주보며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 1명이 방향을 틀어서 치킨, 즉 겁쟁이가 되거나 아니면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는 게임의 이름으로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치킨게임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각자 추구하는 바를 따라라. 그러다 그 추구하는 바를 이룩해나갈 때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온다면 그때? 그 느낌을 따라라.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목적지를 정했다면 방법 또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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