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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 이준서 Apr 08. 2018

아마겟돈

당신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중학생 시절 허름한 만화방에서 본 이현세의 아마겟돈이 지금껏 잊히지 않았던 이유가 지금 이 글을 쓰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기억의 편린(片鱗)으로 존재하던 서사시를 다시금 꺼내기엔 본인의 기억력을 아무리 과대평가하더라도 무리가 있기에 스마트폰을 통해 다운로드하여 다시 보게 되었다. 세상이 하 좋아 이제는 종이책이 아닌 휴대폰으로 책을 보는 시대이다.

49억 년 전 고도로 진화한 앗시리아인은 그들의 위대한 프로젝트의 완성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에도 불구, 알파(α)와 오메가(Ω)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먼저 알파 계획이란 그들 앗시리아인이 아닌 다른 지적인 생명체를 찾는 계획. 결국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곧바로 오메가 계획을 실행한다. 지적인 생명체가 없다면 그들의 고도화된 과학기술로 만들면 되는 것.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끝으로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세상의 창조주이며 만물이시며 최종 목적이니 처음이자 마지막, 즉 생명의 창조와 그 영속과 죽음에 이르는 거대 창조의 프로젝트를 통해 앗시리아인은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9999개의 초자아 컴퓨터를 은하계에 뿌리게 되고 그중 한 곳이 바로 지구이다. 초기 지구 실험실에서 앗시리아인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거대 파충류, 공룡이었다. 지구의 초자아컴퓨터 델타8988은 공룡을 진화시켜 공룡인류를 탄생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지구의 원래 주인은 렙틸리언이었다는 음모론을 이현세 작가는 이 당시 알고 있었을까? 이외에도 상당하게 작가는 나를 놀라게 한다. 참고로 아마겟돈은 30년 전 작품이다.

앗시리아인의 계획은 두 군데에서 성과를 맺게 된다. 감마6666 컴퓨터가 탄생시킨 이드 종족. 이드 id는 프로이트의 정신영역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원시적이며 강한 공격 본능과 성욕과 같은 육체적 본능을 대변한다. 그 강한 공격본능을 토대로 그들은 정복전쟁을 치르게 되고 결국 지구에까지 그 마수를 뻗치게 된다. 특히 감마6666에서 6666은 666을 연상시키는데 굳이 6과 8, 그리고 9의 의미를 논하지는 않겠다.


다시 지구의 진화이야기로 돌아와서 공룡의 멸종 후 시작된 포유류의 번성은 델타8988이 인류를 탄생시키는 단서가 된다. 인류의 기원이 외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론 Makukov도 존재한다. 굳이 인류의 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계와의 접촉은 초고대문명, 오파츠(Out-of-place artifact, OOPArt) 등에서 상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만화로 돌아와서 그렇게 탄생한 인류는 두 종족으로 나눠지게 된다. 신화 속 아틀란티스 Atlantis와 뮤 Mu. 찬란한 과학문명을 탄생시킨 아틀란티스는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를 닮아 있다. 뮤 대륙은 그리스와 대비되는데 실제 스파르타에 의해 찬란했던 그리스 문명이 막을 내린 것과 같이 아틀란티스의 막강한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강력한 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두 문명 다 공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남지 않은 뮤 사람들이 지구의 남극으로 피신하고 그들의 왕국 엘카 ELCA를 건설한다. 그런 그들을 탄생시킨 앗시리아인들이 지구에 남긴 창조주 슈퍼컴퓨터 델타8988은 이러한 분란에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후일 현재 우리의 현생인류가 탄생하고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또한 같은 지구인인 엘카인들도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여 한 지구 안에서 서로 역사를 달리한 채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일원성이라는 신의 개념으로 볼 때 선과 악은 이원성이 낳은 착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신의 속성을 차용함은 이 작품에서 참으로 신뢰할만한 부분이다. 비록 그 신이라는 존재가 물신, 인격신이 아닌 컴퓨터라는 점이 인류의 히스테리를 자극할 수도 있겠으나 인격신이란 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비견 다를 바가 없다. 생명의 탄생에 있어서 일원성에 의한 신의 침묵은 그 어떤 가르침보다 효과적이다. 붓다와 가섭의 일화에서 침묵은 그 어떤 가르침보다 직접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위 말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로는 세울 수 없다. 진리는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다. 선종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법을 말한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진정한 가르침은 침묵에 있다고 하였다.

아틀란티스와 뮤 상상도

2157년 지구인들은 그들보다 뛰어난 과학문명을 지닌 이드인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거의 전멸을 앞두고 있는 상황, 더 이상 이를 두고 볼 수 없게 된 엘카인의 여왕 헤라는 그 정체를 인류와 이드인들에게 드러내고 인류를 돕는 한편 델타 8988의 창조의 힘이 고스란히 복제된, 오메가계획의 최종 수행자인 1987년의 오혜성을 데려오기 위해 자기와 같은 DNA를 지닌 엘카의 정예요원 마리를 과거로 급파한다.


엘카인이 과거 뮤 대륙의 후예란 설정을 조금만 더 살펴보자. 아틀란티스와 뮤 대륙은 플라톤에 의해 처음 신화로 언급되었으며 최근에 들어서는 1926년 영국 제임스 처치워드의 ‘잃어버린 뮤 대륙’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요나구니라는 일본 오키나와 근해의 해저도시를 전설의 제국 뮤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밖에도 아틀란티스와 뮤(레뮤리아)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주장들이 있다. 그 두 제국의 핵전쟁을 뒷받침하는 것들로는 마라바라타의 핵전쟁을 묘사하는 여러 문헌이나 모헨조다로 고대유적에서 발견되는 트리니나이트 -핵실험실에서 자주 발견되는 암석- 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전직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는 지구공동설을 뒷받침하는데, 지구공동설을 설명하자면 지구의 속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핵과 마그마, 맨틀이 아닌 그 속이 비어있는 공과 같으며 남극과 북극을 통해 그 외부와 내부를 오가는데 그 지구 안에 또 다른 인류, 우리보다 더 뛰어난 인류가 살고 있고 그 비밀을 몇몇 지구의 지도층만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들이 바로 생존한 뮤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지구공동설, 지구 안에 또 다른 지구?

엘카의 여왕 헤라에 의해 과거로 타임워프된 마리는 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오혜성을 만난다. 엘카는 철저히 출생부터 각자 맡은 의무를 부여받고 감정을 배제한 채 살아간다. 엘카의 정예요원 마리는 그러나 점점 오혜성에게 사랑을 느껴간다. 참고로 혜성은 총 5명의 여성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부럽지 아니한가?


이드의 총사령관 케사로스는 엘카에 의해 처음 그의 전쟁사에서 패배를 맛본다. 왜 이드의 원로원은 그에게 공격을 멈추고 아무것도 없는 목성의 소행성을 단지 인간 하나, 오혜성을 죽이기 위해 파괴하란 명령을 내리는가? 네오에 의해 처음 패배를 맛본 스미스요원은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이어폰을 스스로 뽑고 매트릭스에서 해방된다. 케사로스는 이드인류가 한낱 초자아컴퓨터 감마6666에 의해 탄생되고 원로원 또한 그들의 꼭두각시였음을 깨닫고 그의 분노의 총구를 돌려 이드행성으로 향한다. 스미스요원은 그를 해방시켜준 네오에게 분노를 표출한 바, 케사로스 소령은 그런 면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진실을 목도했을 때 우리의 행동은 두 가지이다. 철저히 무시하든가, 철저히 파헤치든가.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몫이라는 케케묵은 문구를 기억하는가? 기억은 떠올리기 쉬우나 그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망각은 그래서 인간에게 유용한 방어기제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받아들인다. 시신경을 통한 빛은 전기적 자극의 형태로 물체에 대한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같은 신호라도 뇌에서 다른 정보로 판단하게 된다. 보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가진 그 사람의 성향이 우리가 소위 보았다고 하는 개념을 정의 내리게 한다. 스미스요원은 자신 또한 매트릭스의 일부임을 알게 해준 네오를 공격했으나 케사로스는 이제껏 자신이 알고 있던 거짓진리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같은 상황, 다른 판단에서 무엇이 올바른 판단임을 선택할 용기를 그대는 가졌는가?

1987년의 오혜성은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마리의 희생으로 2157년으로 타임워프 warp, 아닌 차원워프하게 된다. 보통 타임머신을 생각하게 되는데 시간=공간, 즉 시공간이 별개의 개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3차원으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고 단선적인 세계이나 5차원을 넘어간 세계는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세계이다. 인터스텔라에서 표현을 하고 있지만 3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거할 때 시간이 상대적 개념이라면 시간의 절대성은 적어도 이 만화에선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구현된 5차원 공간

2157년의 오혜성은 1987년의 오혜성을 잊고 자신을 위해 헌신한 마리를 위해서라도 델타8988을 만나 이 전쟁을 마무리 짓고 오메가계획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다. 한편 이드행성의 지구침략의 진짜 목적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1년 후 그들 태양계의 태양의 운명이 다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낡은 우리 태양계의 태양을 파기하고 목성을 -태양계에서 태양 다음으로 크다. 다른 태양계의 행성을 다 합한 것보다 큰 질량을 갖고 있다- 태양으로 만들고 천왕성을 그들의 이주지로 삼는 레드어스계획을 실행한다. 일명 테라포밍 -테라는 지구를 말한다- 이라 하여 화성을 인간이 살기 좋은 곳으로 지구화하는 프로젝트가 실제 존재한다. 영화 맨 오브 스틸에 잘 묘사되어 있다.


다시 오혜성 얘기로 돌아와서 엘카에서 델타8988과 만나기 위해 온갖 훈련을 하는 도중 그에게 여왕 헤라, 그리고 엘카 최고의 여전사 베로나마저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케케묵은 사랑이야기라 할 지 모르나 이미 차원워프하는 과정에서 한번 죽었던 오혜성을 살린 건 그 안에 잠재하고 있던 가이아여신이었다. 가이아는 그리스의 여신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모성애를 상징한다. 파괴를 일삼는 이드, 감마6666에 대적할 최적의 무기인 것이다. 타인을 노예로 삼고자 하는 감마6666의 좌뇌의 편향성에 가이아가 오혜성을 통해 대리전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엘카의 여왕은 날 때부터 선택받은 자이다. 마치 쿠마리 -힌두교 신화에 바탕을 둔 네팔의 전국민적신앙의 대상. 어린 소녀를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신의 화신인 쿠마리로 정하고, 전 국민이 숭배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거나 초경을 하면 바로 쿠마리의 자격이 상실되어, 새로운 쿠마리 후보자를 선정한다, 다음백과- 처럼 철저히 지도자의 삶을 위해 감정을 철저히 배격했던 헤라는 오혜성으로 인해 최초의 일탈을 하게 된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버린 그녀는 스스로 여왕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넘버 2인 베로나가 여왕이 된다. 허나 그녀 또한 사랑이란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드디어 델타 8988을 만나러 가는 길에 헤라, 베로나 모두 동승한다. 그 시각 지구는 최후의 전투를 준비한다. 아마겟돈. 최후의 방어선인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인류의 생존자를 태운 우주선이 이드에 의해 공격받고 추락하고 만다. 215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0시를 기해.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두 아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또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마지막 우주선의 생존자가 다른 우주선에 태우고 그곳을 탈출한다. 그러던 중 그 조종사도 상처로 인해 죽고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살아남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부각되던 순간! 레드어스를 실행한 이드. 그러나 목성의 핵을 폭발시켜 태양으로 만드는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한다. 그들의 계산보다 천배나 큰 대폭발이 일어나고 그것은 이드의 전함과 더불어 마지막 희망의 불꽃처럼 부각되던 두 아이의 우주선마저 집어삼키게 된다. 그것은 이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이드를 향해가던 케사로스에게 초신성의 폭발의 형태로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소멸했음을 보여준다. 공식적으로 아마겟돈은 그렇게 어이없이 완성된다.

그림으로 표현한 가이아 Gaia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델타8988과 대면한 오혜성 일행. 그들의 창조주 앗시리아인의 시체 한구와 초자아컴퓨터 델타8988를 맞이한 그들에게 8988은 이드의 또 다른 복제세포 감마6666을 만나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리하여 블랙홀을 지나 화이트홀로 나온 그들은 행성이 아닌 혜성 이드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감마6666과 오혜성의 내재된 생명의 여신 가이아의 싸움이 시작된다. 감마6666으로부터 듣게 된 진실. 레드어스계획은 두 종족의 멸망을 위해 처음부터 조작된 것이었다. 수치를 일부러 낮게 계산하여 레드어스를 실행에 옮기게 해 태양계를 파괴하고 다른 진화된 인류를 만드는 것. 거대우주에서 명멸(明滅)하는 문명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그런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감마6666은 오혜성에게 새로운 진화된 인류의 조상이 되길 권한다. 돌아온 건 창조주의 창조와 파괴에 대한 발상 앞에 분노한 오혜성의 바주카포. 감마6666은 파괴된다. 또한 이드의 전투비행단 사령관으로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다가 자신과 함께한 수지라는 여인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케사로스 또한 그곳에 있었다.

만화 속 수지는 이 수지는 아니다

그 둘, 케사로스와 수지, 그리고 베로나의 시체를 남겨두고 오혜성 일행은 또다시 떠난다. 이제 남은 일행은 오혜성과 헤라 그리고 엘카의 하데스라는 조력자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셋 뿐이다. 그러나 감마6666은 파괴되었으나 죽은 앗시리아인이 고향에 보내는 신호는 계속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오혜성은 하데스에게 묻는다. 이따위 종말을 위해 9999개의 초자아컴퓨터를 우주에 뿌려댔는지 물어보고 싶지 않냐고. 미션 투 마스(Mission To Mars, 2000년 제작)에서 인류의 기원이 화성인에게 있음을 알게 된 주인공 짐 맥코넬은 고향 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화성의 우주선에 몸을 맡긴 채 그들을 향해 떠난다.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주인공은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은 회귀본능에 몸을 맡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반물질, 비물질을 입자가속기에 넣고 돌리면 가장 밀도가 높은 물질이 가장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비물질이 중앙에 집중되고 정중앙은 태풍의 눈과 같은 공(空, void)의 상태가 될 것이다. 차원으로 따지면 0차원이 아닐까? 모든 우주의 존재들이 이처럼 가장자리에서 근원자리로 회귀하는 모습일 것이다. 기억을 끝까지 거슬러, 정자와 난자 이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가? 내 몸이 흙에서 탄생한 물질이라면 비물질인 영혼의 근원은 알고 싶지는 않은가? 그 최초의 의문을 위해 그는 몸을 던진다.

뇌신경 vs 광활한 우주 “놀랍도록 닮았다”

마침내 그 신호를 따라 앗시리아인의 고향에 도착한 혜성. 그를 맞이하는 건? 양모를 두른 예수도 장삼을 걸친 붓다도 아니다. 모든 스토리를 다 마치고 마지막 결말을 준비하던 앗시리아의 소설가. 파리의 여인이란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드라마는 이 모든 스토리가 여주인공 김정은의 시나리오 내용이었다란 결말로 끝을 낸다. 단, 이 시나리오가 충분히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단 단서만을 남긴 채. 시청자를 위한 TV 대중매체의 배려였으리라. 그렇다. 어쩌면 허무할 수 있는 마무리를 독자들을 위해 단행본에는 오혜성과 헤라가 아담과 이브가 되어 잘 살았다라는…… 결말로 끝을 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알았다. 그러나 원본에는 이렇게 앗시리아의 소설가가 쓴 내용이 이렇게 현실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델타8988이며 감마6666이며, 인류의 역사며, 오혜성의 가족이며 그 모든 현실들이 소설이며 오혜성은 소설 속의 인물인 것이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결말이었으리라.

애기야, 가자!

3차원 지구에서는 어떠한 물건을 창조하려면 시간과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약 창세기를 보면 ‘빛이 있으라 하여 빛이 생겨났다’하여 천지창조의 과정을 창조주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적어도 5차원 이상의 존재에게 부여된 창조능력으로서 그러한 생각이 바로 현실이 되는 창조력을 지닌 앗시리아 소설가에게는 지구의 탄생과 이드의 탄생, 그 명멸이 한순간의 우주적 놀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다 발견한 개미집은 그저 자연구조물일 뿐이며 지나가는 개미에게 우리 인간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개미를 볼 수 있으나 개미는 우리를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개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그 개미굴이 집이며 국가이며 우주일 것이다. 우리가 알던 우주가 단지 소설 속 누군가의 머릿속에 든 작품이었다? 우주의 모습이 마치 인간의 뇌신경과 닮아 우주는 어느 외계인의 뇌 속이 아닐까하는 주장도 있다. 그 충격을 받아들일 준비가 당시 독자들은 안 되어 있었을 것이다.

매트릭스를 통해 어느 정도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의문을 던진 영화를 본 소수의 의식 높은 이라면 모를까?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1990년 작품 토탈리콜을 보면 가상과 현실에서 헤매던 그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당신은 우리 회사의 가상현실프로그램에 의해 지금 꿈을 꾸는 것이라 한다. 순간 그의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보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그의 머리에 총알을 날린다. 영화 마지막 아놀드는 ‘이게 꿈이면 어쩌지’란 대사를 남기고 여주인공은 이게 꿈이라면 꿈이 깨기 전에 키스를 하자며 둘은 그렇게 뜨거운 키스를 하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런데 감독의 의도였는지 영화 중반 지하철 신 scene에서 가상현실프로그램 광고가 나오는데 실제로 그 회사의 직원이 그 총을 맞은 사람이었다. 영화에서는 지나가는 찰나의 장면이지만 ‘이 모든 게 다 아놀드의 가상현실이었다’로 깜짝쇼를 하고 싶었던 폴 버호벤 감독의 의도였을까?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듣게 된 오혜성은 앗시리아 소설가의 예상과는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오혜성이 레이저무기를 쏘고 이 소설가는 자신 몸의 분자구조를 광선총이 빗겨가도록 만들었지만 그는 구식 납탄이 장전된 총을 쏘았고 이 소설가는 그렇게 어이없이 죽는다. 그리고 오혜성도 다른 앗시리아인에 의해 죽는다. 그리고……. 그는 꿈을 깬다. 자신의 침대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누워있는 자신을 본다. 자신의 누나, 어머니, 자신의 침대. 이 모든 게 꿈이었나? 하는 순간 자신의 손에 들린 구식총을 본다. 이렇게 만화는 끝을 맺는다. 당시 이현세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에 기반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방대한 우주관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주의 창조에서부터 인류와 그 외 지적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상당수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 볼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어릴 적 허름한 만화방에서 만난 추억의 만화에서 현재의 나를 다시금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름 진리를 탐구하는 자라 여기지만 나는 저 진리의 바다에서 조금 예쁜 조개 하나를 주웠을 뿐이라는 뉴턴의 말에 나는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방대한 이야기를 어설프게 담아내서 미련이 남지만 그또한 읽는 분이 감내해야할 나의 깜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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