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3.재회
에피소드3. 재회
공부를 썩 잘했던 나는 부모님의 기대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소위 수재(秀才)라 불렸던 내가 도시의 명문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그것은 나의 꿈이 아닌 부모님의 꿈이었다.
그 꿈 덕분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누나와 함께 도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한 부모님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제법 나와 잘 맞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고등학교 내에서도 교우 관계는 원만했고, 학업 역시 어려울 것이 없었다. 오고 가며 마주치는 다른 학교 여학생들과의 만남, 혹은 미팅을 통해 이성에게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연락을 주고받던 여학생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앞에 섰다. 당시에는 남학생이 여학생 집에 직접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받으실까 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공중전화 앞만 초조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때, 고민에 빠진 내 눈앞 커다란 대문에서 한 소녀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기회다.
나는 소녀에게 곧장 다가가, 그 여학생에게 대신 전화를 걸어줄 것을 부탁했다.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 있으면 전화를 바꿔달라는 부탁이었다. 내 사정을 들은 소녀는 당돌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뭐 해줄 건데요?"
"……어?"
"내가 전화해주면 뭐 해줄 거냐고요."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브... 브라보콘... 사줄게요!"
"그래요!"
소녀는 흔쾌히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약속대로 소녀와 함께 슈퍼로 향했다.
브라보콘을 손에 쥐여주고 슈퍼 앞 평상에 앉았을 때, 가로등 불빛이 소녀의 얼굴 위로 환하게 쏟아졌다.
순간, 낯이 익었다.
작년 겨울, 동네 골목길에서 엿을 전해주었던 바로 그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