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내편

by 밑줄긋는여자

'오늘부터 우리는'이라는 만화가 있다. 주인공 미츠하시는 이토라는 절친이 있는데 둘은 평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정작 위기에 처하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돕는다.

'오늘부터 우리는 '캡쳐화면

이런 친구가 있다면 아마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일거다.

절대적으로 나를 믿어 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현재 믿고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이 34개국 중에 34위라는 뉴스를 봤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게 쇼킹하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 뒤로 마음의 기절이라는 반작용 역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겨우 인구 오천만의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순위 11위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앞만 바라보고 달려야 했을까?


우리나라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

그러니 결국 사람이 무언가를 개발하고 만들어야한다.

철저한 인적자본이 필요했기에 자연스레 사람끼리의 경쟁도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마음을 터놓을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한 채

주변과 비교당하며 투쟁심을 가지라고 훈련받았다.

겉으로는 나 너 우리가 모두 '위 아 더 월드'지만 뒤로는 이겨야한다는 압박과 은근한 경쟁심으로 무장하며 자라왔다.(나 역시 그랬었다)


게다가 예전엔 경제성장률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최소한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경제성장률만큼 많은 회사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경제성장은 침체의 길을 걷고 불황과 좁은 취업문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다.

게다가 경제성장기에 나라의 허리를 떠받치던 사람들이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채 은퇴당하고 하루하루 내일을 걱정하며 산다.


이런 상황이니 성적하나에도 비관해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극단적인 결론에 치닫거나 부모와 형제들이 버젓이 있는데도 자신의 괴로움을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오지랖과 가벼운 관심들은 넘쳐나는데

그 안에서 외로움에 질식되버리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테오 반 고흐의 초상

우리가 잘 아는 반고흐에게는 화상이자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가 있었다.


너는 그림을 팔기만하는 화상이 아니란다.
너는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란다


생전 반고흐는 단 한점의 그림만 팔렸다고 알려져있다.

그런 그가 37살의 짧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전적인 후원자이며 친구이며 동반자였다.

물론 그게 고흐의 자살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살아 있는 동안 테오는 분명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거다. 지금도 두 사람은 나란히 묻혀있다.


모딜리아니에게도 폴 알렉상드르,즈보로스키 부부와 같은 절대적 믿음을 주는후원자가 있었다.

영화'뷰티풀 마인드' 캡쳐화면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천재수학자 '존'이 정신분열증으로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을 때 그의 아내는 억지로 정신병원에 보내지않고 그를 믿어준다.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결국 존은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물론 이 영화는 실화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를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거다.

그러니까 저런 이야기들이 미담으로 오늘까지 기록됐겠지?

그러나 그 믿음과 지지로 인해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테오의 지지가 없었다면 '별이 빛나는 밤'도 '해바라기'도 태어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아내의 믿음이 없었다면 존 내쉬 역시 프린스턴의 교수가 아닌 정신분열증 환자로 여생을 보냈을거다.


내가 멀쩡하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하며 글을 쓰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친구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 뭐하는 거냐며 글은 아무나 쓰냐고 웃었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시큰둥하게 넘겼다...하하.


그런데 한 친구는 내 이름이 새겨진 펜을 주문해 선물해주었고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직접 표지까지 만든 필작노트를 주었다.


나는 그 때에 비해 아직도 크게 이룬 것은 없다.

내 이름을 걸고 책이 나온 것도 아니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있지도 않다.


그래도 나를 믿어준 그 친구들 덕분에

아직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아마도 평생을 걸고 글을 쓰리라 확신한다.


강의를 하다보면 꽤나 많은 학생들이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느껴진다. 단 하루 만나는 타인인 나에게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도 있다. 쉬는 시간마다 와서 시덥잖은 주제로 말을 걸고 농담따먹기를 하는 학생도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사람이 그리운거구나...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지지해줄 사람이 필요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진학이 아닌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할 때나,

아내나 남편이 하루 아침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나,

떨어져 사는 부모님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면


꾸지람 대신 동조를,

비난 대신 위로를,

바쁘다는 말 대신 깜짝 방문을 한다면 어떨까?


그것이 꼭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다하더라도

세상에 내 편은 꼭 필요하니까.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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