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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19. 2018

아찔한 낙원

2.17. 아말피-폼페이-바리

아말피 해변의 해안 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도로 중 하나로 뽑히는 곳이지만 절벽을 따라 만든 해안도로는 운전하기 힘든 길로도 정평이 나 있다. 여름 휴가철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엄청난 정체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아말피 해변까지는 족히 서너시간이 걸리므로 여유 부리다가는 엄청 막히는 시간에 도착하기 쉬웠다. 되도록 아침 일찍 도착하기 위해 새벽에 호텔에서 일어나자 마자 아침도 안 먹고 대충 씻고는 바로 아말피를 향해 출발했다.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고속도로에 차도 별로 없어서 9시쯤에 아말피 해변의 제일 남쪽에 도시인 솔레르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덜 막힐까 싶어서 일반적인 루트와는 반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꾸로 올라가면서 보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아침도 안 먹고 너무 일찍 서둘러 오다 보니 와이프가 피곤해서인지 줄곧 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도로에 와서 잠만 자고 있으니 운전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아말피의 이름없는 해변. 배로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아말피의 해안 도로는 절벽을 따라 만들어져 있어서 길이 좁고 굴곡이 많아 운전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가끔 반대쪽에서 큰 버스라도 나타나면 한참을 씨름해서 겨우 통과하곤 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서 있으면 노련한 버스 운전사가 손짓으로 지시를 해 주어서 지시를 따르면 되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나같으면 이런데서 버스운전사는 못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아말피 해안도로는 베르동 협곡 도로에 비해서도 훨씬 운전하기 어려운 난이도 상급의 도로였다. 게다가 중간 중간 멋있는 바닷가 마을들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싶어도 차 세울 곳도 찾기 힘들 정도로 차도 많고 주차장도 좁아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로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운전하느라 경치도 제대로 못보고 옆에 와이프는 잠만 자고 있으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내려서 본 절벽과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좀 멋있다 싶은 해변에는 예외 없이 요트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말피 해변은 이렇게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한다.



아말피 해변의 마을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포지타노에 도착했지만 역시 차를 세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와이프는 여전히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계속 앞을 보면서 갔다. 


마지막 목적지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바로 그 소렌토이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소렌토로 돌아올까 하고 나름 기대를 가지고 소렌토에 도착했지만 지나왔던 아말피 해안의 다른 마을에 비해 훨씬 크지만 별로 특징 없는 도시였다. 


아말피의 대표 도시 포지타노 전경


절벽에 매달린 다른 마을들과는 달리 비교적 평지에 위치해 있어서 보통의 바닷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정상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돌았으면 아말피 여행의 시작점으로 괜찮았겠지만 해안의 절경을 다 보고나니 별다른 감흥이 없다. 왜 돌아오라고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아말피 해변은 아름다운 바다 빛깔과 해안 절벽, 그리고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집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절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컨디션이 안좋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을 때는 그 감동이 반감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태리 남부에서의 마지막 목적지는 폼페이다. 이 부근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나폴리이지만 이번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예전의 누가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고 했고, 우리나라에서 멋있는 항구 도시는 전부 자칭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우길 원하듯 나폴리는 아름다운 항구의 대명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예전 여행에서 본 나폴리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위험천만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아서, 와이프를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년 전 해가 바뀔 무렵 나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에 도착해서 유스호스텔에서 묵었었다. 원래 하루만 있을 생각이었지만 이틀 이상을 묵으면 카프리섬으로 가는 왕복 배표를 공짜로 준다고 해서 이게 왠 떡이냐 싶어서 이틀간 묵었었다. 


그날이 마침 12월 31일이어서 유스호스텔에 있던 청년들 중 누군가가 해가 바뀌는 시간에 나폴리 해변에 있어야 한다며 다 같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유스호스텔 원장은 위험하다고 극구 말렸지만 젊은 객기에 한국, 일본, 독일, 아르헨티나 등 다국적 나폴리 신년맞이 원정대가 해변을 향해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지 5분도 안 지나서 다들 후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12월 31일 밤의 나폴리 시내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불타는 차들에 피를 흘리며 도망가고 쫓아가는 사람들, 사방에서 터지는 폭죽과 그 소리 때문에 울리는 자동차 도난 경보기 소리들… 같이 있던 독일 아가씨는 자기가 아는 사람이 폭죽이 눈앞에 터지는 바람에 실명했다고도 한다. 멀쩡히 다들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정말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폼페이를 마지막으로 이태리 동부해안의 바리로 이동해서 크로아티아행 페리를 타기로 했다. 폼페이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고대 유적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화산재를 뒤집어 쓰고 죽어간 사람들의 석고형상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집 마당에 있는 역사책에서 많이 보았던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왕의 전투 장면을 담은 바닥 타일 모자이크는 특히나 반가웠다. 원본은 나폴리 박물관에 있다고 하니 여기 있는 것은 복사본이겠지만 모자이크가 원래 있었을 위치에서 보니 젊은 알렉산더의 패기와 겁에 질린 다리우스의 표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인들에게 큰 코 다치고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하고 마는 다리우스1세의 후손인 다리우스 3세가 또다시 알렉산더에게 패하고 도망 다니다 허망한 죽음을 맞은 것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알렉산더에 쫓기는 다리우스 대왕의 겁에 질린 표정


이제 바리로 가서 이태리를 떠나는 것만 남았다. 바리에서 크로아티아의 두보르브니크로 가는 페리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몇 시간을 씨름해도 예약이 안 돼서 그냥 가서 표를 사기로 했다. 만일 표가 없으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냥 무작정 가기로 했다. 


세 시간쯤 달려서 바리에 도착하니 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이 가장 성수기일 텐데도 꽤나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언제 와도 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바리로 향하는 이태리 남부의 풍경


티켓팅을 끝내고 터미널에서 패스트 푸드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했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크로아티아 사람들인 것 같다. 이태리 사람들과는 생긴 것도 많이 다르고 조금 거친 인상들이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호스텔’같이 무시무시한 영화들의 배경이 이쪽이라서 그런지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태리를 떠나는 페리에서 본 바리 항구 모습


차에 탄 채로 간단하게 수속을 하고 배로 들어가서 선실로 들어가니 답답하고 엔진소음 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잘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싼 선실로 하다 보니 배 밑바닥에 가까운 층이라 얼마 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도 생각나고 해서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태리에서 도둑 조심하고, 운전 신경 쓰고, 시끄러운 사람들 목소리 듣느라 받았던 스트레스가 덜해질 것이라 생각하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세면대는 있지만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인지라 좀 불편하긴 했지만 샤워도 하는 등 할건 다 하고 배 안에서의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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