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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19. 2018

로마는 공사중

2.16. 로마

로마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다. 차는 호텔에 두고 대중교통으로 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금 피곤한 하루가 예상되었다. 


먼저 바티칸 시티를 가 보기로 하고 정류장에서 버스 노선을 찾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세련된 오피스 레이디 같은 차림의 아가씨가 어디로 가냐고 묻고는 버스 번호를 자세히 알려준다. 한번에 가는 게 있고 갈아타는 게 있는데 한번에 가는 건 자주 안 오고 시간도 엄청 걸리니 갈아타는 버스를 추천한다. 


고맙다고 얘기하고 그냥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갈아타는 것도 귀찮고 오래 걸려도 로마 시내 구경을 하며 갈 수 있으니 괜찮을 걸로 생각했다. 이태리 젊은 여자들이 보통 도도하고 말 붙이기도 힘든데 인상과는 달리 착한 아가씨인가 보다.  


아가씨 말대로 엄청 오래 걸려서 바티칸에 도착하니 이미 엄청난 인파로 광장이 북적댄다. 게다가 성베드로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입장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돈을 더 내고 빨리 들어가는 급행 티켓을 호객하는 일종의 삐끼들도 많았지만 내키지 않아서 그냥 바깥만 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왔을 때도 줄서기 싫어서 바깥만 봤던 기억이 났다. 오래 전 여행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스위스 용병들도 여전히 문을 지키고 있었다. 


성 베드로 성당과 면한 광장


미켈란 젤로가 디자인한 유니폼을 아직도 입고 있는 경비병 


광장의 아름다운 분수는 공사 중인지 장막을 쳐 놓고 있었는데 이 장막을 시작으로 로마에서 수많은 장막을 보게 된다. 마치 로마 전체가 공사 중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베드로 광장에서 천천히 걸어서 스페인 계단으로 갔는데 여기도 역시 공사 중이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크게 볼게 없는 곳이긴 한데 그나마 지금은 계단 위쪽도 리모델링 중인지 장막을 쳐 놨고 아래쪽 배 모양의 분수도 장막에 가려 있어서 더더욱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스페인 광장에 면한 건물도 일부 공사중이었다


스페인광장 아래쪽 분수는 묵은 때 벗기는 작업이 진행중인듯  


장막 안을 살짝 들여다 보니 우주복 비슷하게 차려 입은 작업자가 에어 컴프레서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건설업종에 종사해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속칭 ‘노가다’아저씨들을 만나면 반가운 생각이 든다. 


또다시 천천히 걸어서 판테온을 향해 갔다. 로마는 꽤 넓은 편이지만 중요한 유적은 중심부에 모여 있어서 걸어서 둘러볼만 하다. 다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한 1킬로 정도 걷고 나면 젤라또로 식혀줘야 계속 갈 수 있었다. 


판테온은 옛모습 그대로 웅장하게 서 있다. 구와 박공이 만나는 단순한 구조의 판테온은 로마에 있는 유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지만 가장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고전 건축의 원형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 중 하나여서 예전 서양건축사 시간에 꽤나 중요하게 다뤄졌던 기억이 난다. 


후대에 세워진 성당이나 교회들이 유일신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면 판테온은 로마가 아직 다신교가 지배하던 시절에 세워진 건물이라 로마의 수많은 신들을 위해 지어진 신전이다. 그래서 판테온이라는 이름 자체도 만신전이라는 의미이다.


판테온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현대적인 느낌이다


판테온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구의 가장 꼭대기에 동그랗게 뚫려 있는 구멍일 것이다. 상승 기류 때문에 비가 와도 들이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잘 믿기지는 않는다. 



와이프가 기대하던 트래비 분수를 찾아 갔지만 여기도 공사중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필 지금 공사를 할 게 뭐람… 허탈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로마에 다시 오기 위해 던질 동전도 가지고 왔건만..  


어쩔 수 없이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강의 분수’가 있는 나보나 광장으로 이동했다. 강의 분수는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둘러싸고 4개의 강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는데 4개의 강은 갠지스, 도나우, 나일, 그리고 남미의 라플라타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강 들이다. 


이 분수는 로마에 있는 수많은 분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힐 정도로 걸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일 강을 상징하는 조각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데 이유가 베르니니가 라이벌이었던 보르미니가 설계한 성당을 보기 싫어서 가린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는 거장이시다. 


로마의 수많은 분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강의 분수


점심 먹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나보나 광장에 면해 있는 식당 중에 괜찮아 보이는 곳에 가서 피자와 파스타로 점심 식사를 했다. 음식은 괜찮았지만 더워도 너무 더워서 식사를 마치고도 그늘을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늘에서 한참을 쉬다가 로마 속의 진짜 로마라고 할 수 있는 포로로마노로 향했다. 


케사르가 ‘부르투스, 너마저..’라고 말하며 암살당해 죽어갔고 옥타비아누스가 연설하던 그 장소, 원로원, 공회당 등 로마의 공화정이 펼쳐졌던 그 장소가 바로 포로로마노이다. 포로로마노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에 올라가니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 여러 팀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도 옆에 대충 옆에 서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팀마다 가이드의 설명이 조금씩 달라서 비교해가며 듣는 재미가 있었다.  


로마 속의 진짜 로마 포로 로마노


포로로마노는 고대 로마인들이 시민 생활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신전이나 공회당 등 공공시설과 중요한 건물들이 있었던 곳이다. 한마디로 고대 로마의 다운타운인 것이다. 19세기에서야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전에는 가축의 방목지였다고 한다. 


포로로마노를 보고 나서 전차경기장을 지나 카라칼라 욕장으로 갔다. 카라칼라 욕장은 좀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서 지난 번에 왔을 때는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엔 일부러 찾아서 가 보기로 했다. 


카라칼라 욕장을 향해 가는 길 중간에 유명한 ‘진실의 입’이 있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 때문에 유명해진 곳인데 사실은 로마의 하수구 뚜껑이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은 거 같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손을 넣고 사진찍는 모습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의 하수구 뚜껑이라는 진실의 입


로마 시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로마의 모든 맨홀 뚜껑에 새겨져 있는 S.P.Q.R. 이라는 약자였다. 이 말은 ‘Senatus Populus - Que Romanus’ 즉, ‘로마 원로원과 시민’를 의미하는 말인데 고대 로마시대의 표어였던 것을 현재에도 계승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귀족 계급과 평민이 동등하게 로마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 말은 로마를 상징하는 표어 같은 역할을 했으며 고대 로마 제국의 영역이었던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등지의 모든 공공 건물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고대의 로마가 오늘날의 많은 나라들보다는 훨씬 민주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규모의 카라칼라 욕장 유적


카라칼라 욕장의 보존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목욕탕의 규모는 느낄 수 있었다.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아서 그나마 한가하게 돌아볼 수 있었지만 더운 날씨는 어쩔 수 없었다. 카라칼라 욕장의 지하는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지하동굴이 있어서 창고와 노예나 화부들이 일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목욕탕의 수용 인원은 1,600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인데 목욕만 하는 것이 아닌 강의실이나 도서관, 정치 토론이 행해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 공간이었으며, 역대 황제들이 가장 원했던 이상향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카라칼라 욕장을 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개선문과 콜롯세움을 둘러 보았다. 너무나 더운 날씨에 콜롯세움에 도착했을 때 쯤에서는 거의 파김치가 된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지쳐서 빨리 숙소에 가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 생각 밖엔 안 들었다. 그나마 틈틈이 젤라또를 먹어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피곤하기도 하고 다음날은 이태리 남부로의 긴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숙소로 일찍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콜롯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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