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Aug 06. 2018

느리게 사는 도시

2.15. 오르비에토-티볼리

시에나에서 로마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기 중간에 위치한 오르비에토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오르비에토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채 마을인데 슬로시티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슬로시티는 패스트푸드와 반대되는 개념인 슬로푸드란 용어를 도시 단위로 확장한 개념이다. 전통과 자연 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를 지향한다. 


슬로시티의 본고장 오르비에토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도시들이 스스로 슬로시티를 추구함을 선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전남 담양을 비롯한 여러 도시가 슬로시티를 선언하고 슬로시티가 추구하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오르비에토는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언된 4개 도시 중 하나이자 현재에도 슬로시티 운동 본부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이태리답지 않게 도시 전체가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넘치는 느낌이고, 절벽 꼭대기의 성채 마을답게 주변의 탁 트인 경관과 시원한 바람을 자랑하는 곳이다. 



오르비에토에는 산 파트리치오의 우물이라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우물이 있다. 당나귀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수직의 이중나선 구조로 되어 있어서 내려갈 때와 올라갈 때 서로 마주치지 않게 되어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수 백 년 된 우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보존이 되어 있고, 깊이가 50미터가 넘어서 한여름인데도 바닥에 내려가니까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우물이었다. 


당나귀도 다닐수 있다는 16세기 우물


토스카나를 떠나 반나절을 이동해서 로마 근교의 티볼리에 도착했다. 티볼리는 로마 제국 시대때부터 귀족이나 황제의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던 곳으로 지금도 로마시대의 휴양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빌라 데스테는 유럽의 정원 중 가장 경이로운 정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태리 정원 예술의 걸작이다.


빌라데스테 메인 분수광장


예전에 가본 유럽의 정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프랑스 베르사유와 온통 황금빛으로 번쩍이는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테르호프였다. 빌라 데스테도 두 정원에 못지 않은 인상적인 정원으로 기억될 것 같다. 


베르사유가 거대한 스케일로, 페테르호프가 화려함으로 승부한다면 이곳 빌라데스테는 물의 정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수와 연못들로 특징지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빌라데스테는 물의 정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수로 가득 차있다. 


빌라데스테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사려고 하니 카운터에 있는 여직원이 뭔지 못 알아들을 영어로 뭔가를 계속 묻는데 아마도 연못인지 분수인지 어딘가에 물이 없으니 내일 다시 오라는 얘기 같다. 입장료도 비싼데 괜히 돈만 날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다른 날에 다시 올 수 있는 일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서 다 둘러봤지만 물이 없는 연못이나 분수 같은 것은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되어서 손님 받는 게 싫어서 그냥 그렇게 둘러댄 건지 아니면 내가 못 본 무언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번 친퀘테레에서 사기 당할 뻔한 사건 이후로 이태리에서는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100개의 동물이 물을 뿜어내는 재미있는 분수


빌라데스테에 입장해서는 제일 먼저 거대한 정원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베르사유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꽤나 넓은 정원에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연못과 분수가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우리만의 비밀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가장 재미있는 곳은 100개의 동물 모양의 분수가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곳인데 원숭이를 비롯한 여러 동물의 조각상이 입에서 물을 내뿜고 있는 것도 재미있고 각각의 조각상의 표정이 다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얼핏 과음한 다음날 동물 친구들이 나란히 서서 같이 토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빌라데스테는 더운 날씨 속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가면서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다양한 분수와 조각상이 어우러진다


빌라데스테 정원의 시원스러운 물소리를 뒤로하고 드디어 로마를 향해서 출발했다. 


다른 모든 곳에 있는 유적을 다 합친 것 보다 로마에 더 많은 유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로마에는 수많은 고대의 유적들이 있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여행 왔을 때 책에서 봤던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고대의 유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빌라데스테에서 내려다본 티볼리 풍경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로마 시내로 진입하자 좁은 도로와 교통 체증 때문에 운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호텔 근처까지 왔는데 복잡한 일방통행 체계 때문에 호텔 주위를 빙빙 돌다가 겨우 호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로마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혈질에 신호도 잘 안 지키고 틈만 나면 끼어드는 등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한국에서 단련된 우리에게는 고향에 찾아온듯한 느낌도 드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스카나의 중세 도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