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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06. 2018

토스카나의 중세 도시들

2.14. 피사-피렌체-시에나

캠핑장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찌뿌둥하고 컨디션이 최악이다. 바닥에서 습기가 너무 올라와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푹푹 찌는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와이프도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고 하면서 다시는 캠핑을 안 하겠다고 선언한다. 습한 것도 습한 것이지만 개미들 때문에 진저리를 쳤다. 불과 몇일전 프로방스에서의 쾌적한 캠핑의 기억이 생생한데 찜통 개미지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더니 바로 백기를 든 것이다.


찜통 개미지옥에서의 캠핑 후


일단 당분간은 호텔에서 묵기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피사를 향해 떠났다.


피사와 피렌체, 시에나를 포함한 이태리 중북부의 지역을 토스카나라고 부른다. 19세기까지 독립된 나라로 유지되다가 이태리에 합병된 곳이어서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특히 르네상스의 본고장이어서 관련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프랑스에 살기 좋은 프로방스 지방이 있다면 이태리에는 토스카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살기 좋은 기후와 문화를 가지는 곳이다. 물론 토스카나의 태양이 프로방스보다는 훨씬 뜨거워서 여름에는 잠깐 동안이라도 야외에서 버티기가 쉽지는 않다. 


탑보다 사람 구경이 재미있다


토스카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피사이다. 피사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나도 유명한 피사의 사탑을 보러 오는데 사실 피사는 그 탑을 빼면 딱히 볼 것도 없는 조그마한 도시이다. 


피사의 사탑은 수많은 책이나 사진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인데, 수많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들 밑에서 넘어지는 사탑을 받치는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탑 구경보다 똑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 구경이 더 재미있다. 


이태리에서는 햇볕이 쨍쨍 내리 쬐니 기분은 좋은데 더워도 너무 더워서 금방 지치게 된다. 이태리 특유의 아이스크림인 젤라또를 파는 곳이 엄청 많은데 이런 더운 날씨에는 젤라또 없이 버티기는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베키오 궁전과 종루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본고장이자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인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이다. 피사가 생각보다 조그맣다면 피렌체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시내 가운데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주차장의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시내까지 나오는데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도착했을 때는 5시가 넘어서 저녁을 향해가고 있는 시간이었는데도 너무 더워서 중심부의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그늘을 찾아서 그냥 길바닥에 앉아서 쉴 수 밖에 없었다. 


노천 카페들에서는 뻥 뚫린 야외라 에어컨을 틀 수 없으니 물을 뿌리면서 선풍기를 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시원했다.


토스카나의 여름은 버티기 어려울 정도다


고대의 유적을 많이 볼 수 있는 로마와는 달리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이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나오는 브루넬스키가 디자인한 두오모의 돔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광장에서 출발해서 베키오 궁전을 통해 베키오 다리를 둘러보는 것으로 피렌체 여행을 마쳐야 했다. 


초콜릿 광고로 익숙한 느낌의 베키오 다리


15세기에 지어진 두오모는 거대한 돔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미완성인 채로 몇 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현상설계를 통해 브루넬리스키가 당선됨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브루넬리스키는 그전까지는 금 세공기술자였다고 하는데 혁신적인 2중 쉘 구조의 돔을 고안해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부르넬리스키가 두오모를 완성함으로써 비로소 르네상스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중세 토스카나 느낌을 간직한 호텔


피렌체에 도착한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빨리 숙소를 찾아야 했는데 피렌체 안에서는 도저히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 생각을 바꿔 시내가 아닌 외곽에서 숙소를 구하기로 하고 검색하다가 조금 떨어진 외곽의 호텔을 예약했다.


차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외관이나 내부 집기가 전통 토스카나 스타일로 꾸며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전통 토스카나 스타일의 호텔 내부 장식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풍기는 곳인데 마치 중세시대 저택에 들어와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바깥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니 숲 속에 중세시대부터 있었을 거 같은 연못과 오래된 다리 유적도 있어서 또 다른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나이 든 노인들이었는데 아마도 토스카나의 태양을 즐기며 오랫동안 쉬어가는 은퇴자들인 것 같았다. 



이태리 중북부에 위치한 토스카나 지방은 다소 거친 이태리 남부나 세련된 북부와는 달리 자연스러우면서도 정돈된 아름다움이 있는데, 프랑스의 프로방스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곳이다. 너무 더운 것만 빼면 나이 들어 살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연못과 다리 유적


토스카나 전통 호텔에서 하루를 지낸 후 토스카나의 또 다른 도시인 시에나로 향했다.


시에나는 중세 시대의 시가지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 비교적 조그마한 도시인데 중심부에 있는 부채꼴 모양의 캄포광장과 만지아탑이 가장 유명하다.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에도 비슷한 모양의 종루가 있는데 만지아탑의 종루는 100미터가 넘어서 규모에서 베키오 궁전의 종루를 압도한다. 


만지아탑 종루를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래에서만 구경하기로 했다. 


중세 모습을 잘 간직한 시에나 만지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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