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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31. 2018

친퀘테레 일주

2.13. 친퀘테레

드디어 이태리로 들어왔다. 여행 오기 전 이태리 사람들의 미친 것 같은 운전습관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던 터라 바짝 긴장해야 했다. 차로 국경을 넘는 것도 처음이라 더욱 긴장되었는데,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 보니 이미 이태리 국경을 넘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경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유럽이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 계획은 아름다운 코트다쥐르 해안도로를 따라 친퀘테레로 가는 것이었는데 너무 길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고속도로라고 해도 속도 표지판도 별로 없고, 있어도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렸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프랑스에서의 편안한 운전에 길들여졌던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오전 내내 달려서 오후 무렵에 친퀘테레의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시설이 영 시원찮았다. 우리가 배정받은 자리는 보기는 좋지만 바닥에서 습기가 많이 올라올 것 같은 곳이었는데, 친퀘테레에는 호텔이나 캠핑장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캠핑장에 묵을 수 밖에 없었다. 


친퀘테레는 이태리 말로 다섯 개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태리 북서부의 다섯 개 해안 마을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20년 전에 이태리에 왔을 때는 들어본 기억도 없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마을들을 돌아보려면 차로는 접근이 어렵고 보통 기차를 타고 가다 역마다 내려서 둘러보고 다음 마을로 가는 방식으로 여행한다. 마을들을 연결하는 오솔길을 따라 가는 방법도 있지만 산길이라서 다니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는 일단 첫 번째 마을로 가서 두 번째 마을로 트래킹으로 이동해보고 그 다음 이동 방법을 결정하기로 했다. 


친퀘테레를 대표하는 리오마조레 풍경


맨 먼저 도착한 곳은 리오마조레였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포구 쪽을 향해서 가다 보니 데크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광장이 나타난다. 유럽의 오래된 마을 들에는 어디나 마을 한 가운데 광장이 있기 마련인데 친퀘테레의 마을 광장들은 데크로 공중이 떠있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워낙 공간이 좁다 보니 이렇게 만들었는데 마을 아이들이 모여서 축구도 하는 등 주민들 간의 만남의 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광장에서 포구까지 내려가는 데 5분도 안 걸릴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는데 절벽 위에 지어진 알록달록한 색깔로 지어진 집들과 조그마한 항구가 조화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 저기 바위 위에 각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누워서 햇볕을 즐기고 있고, 다이빙을 하거나 수영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물 색깔이 너무나도 푸르고 맑아서 당장에라도 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나롤라 전경


애초에 다음 마을인 마나롤라까지는 트래킹으로 걸어가기로 계획을 세웠었지만 막상 가려니까 얼마 전에 비가 와서 일부 구간이 무너지는 바람에 폐쇄되었다고 한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타고 마나롤라로 이동했다.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


마나롤라도 리오마조레와 비슷한 느낌의 마을이었는데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며 즐기고 있었다. 여기서도 물에 뛰어 들어서 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일단 나머지 마을들도 돌아 보기로 했다.


너무 더운 날씨에 좀 쉬어가기로 하고 이태리 아가씨 둘이 운영하는 듯 한 식당에 들어갔다. 커피와 맥주, 핫도그를 시켰는데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음식값으로 50유로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 나오려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확인하니 10유로를 덜 줬다. 내가 덜 받은 걸 확인하고 한 아가씨에게 얘기하려니까 재빨리 10유로짜리를 하나 더 준다. 일부러 거스름돈을 덜 주고는 내 눈치를 보고 있다가 눈치를 채니까 뭐라고 하기 전에 재빨리 제대로 준 것이다. 


이태리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듣긴 했지만 직접 당하고 보니 황당하다. 멀쩡하게 생긴 여자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이런 사기를 치다니.. 이태리의 경치들은 참으로 좋았지만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아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산위에 위치한 코니글리아


코니글리아는 다른 마을들과는 다르게 바닷가 바로 옆이 아니라 한참 올라온 언덕 위에 있었다. 또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있는 다른 마을들과는 달리 셔틀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 와야 하기 때문에 이 곳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적한 마을을 거닐다가 두 명의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는데 거의 파김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옆의 마을에서 트래킹으로 걸어왔다는데 절대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길이라고 고개를 절래 절래 젓는다. 이런 날씨에 험한 산길을 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넓고 여유로운 베르나차


베르나차는 가장 넓고 여유로운 곳이었다. 다른 마을들은 너무 좁아서 그야말로 절벽에 매달린 아슬아슬한 느낌이 있었지만 이곳은 꽤 넓어서 포구 옆에 광장도 있고 나름 모양을 갖춘 항구도 있었다. 게다가 바다에 바로 면해 있는 성당은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베르나차의 항구


포구에 면해있는 광장에서 석양이 지는 바다를 등지고 두 명의 이태리 남자들이 뭔지 모를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노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 거 같았지만 우리에겐 가야 할 마을이 아직 하나 더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마을인 몬테로쏘를 향해 떠났다. 


석양을 등지고 노래하는 이태리 훈남들


몬테로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후라서 앞의 마을들에서 보았던 분위기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곳은 다른 마을들과는 달리 절벽에 매달리거나 언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바닷가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다섯 개 마을을 다 돌겠다며 서둘러 재촉해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여행 내내 뭐든 할 수 있을 때 하자 라는 말을 되뇌고 다녔지만 정작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즐기지 못한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잠들었다.


몬테로쏘는 다른 마을들에 비하면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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