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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24. 2018

무서운 첫인상의 브르보스카

2.19. 흐바르-브르보스카

스플릿에 도착한 후 바로 흐바르로 가는 페리를 탔다. 흐바르는 애초 계획에는 없던 곳인데 여행 내내 강행군에 치쳐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셔 몇일 쉬기로 했다. 


아름다운 곳이 많은 크로아티아에서도 많은 이들이 최고로 꼽는 곳이라 내심 기대가 컸다. 스플릿에서 두 시간 정도를 배를 타서 스타리그라드 항구에 도착했는데 숙소를 예약한 브르보스카는 스타리그라드에서 3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했다. 


스플릿 항구 전경


구글맵에서 시키는 대로 예약한 호텔을 향해 가는데 가는 길이 뭔가 이상하다. 수로를 따라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니, 도저히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이 나온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서 확인해보니 호텔이 있어야 할 곳엔 공포영화에서 자주 본 것 같은 짓다 만 건물만 서 있다. 


구글맵 주소가 또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혹시 누군가가 이름 모를 크로아티아 오지로 우리를 유인해서 뭔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건가?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를 텐데 만일 납치라도 되면 어쩌지?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안그래도 호스텔이나 테이큰 같이 유럽에서의 납치, 감금, 고문, 인신매매를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 이쪽이 배경인지라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같은 나라에서는 몇배로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극악무도한 변태 스너프 영화에 붙인 제목이 ‘세르비안 필름’일까. 


브르보스카를 관통하는 수로는 아드리아해로 이어진다


호텔 주인과 통화를 시도했는데 겨우 연결된 주인아저씨가 지금 어디냐고 서툰 영어로 묻는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를 설명하기도 힘들고 겨우 설명해도 주인 아저씨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서로 한참을 헤맨 끝에 동네 가운데에 있는 다리 앞에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과연 호스텔 영화 주인공의 운명이 될 것인지 생각하면서 기다리다가 주인 아저씨를 만났는데, ‘아 이제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맞아가는 거 같다. 러시아 계통인 거 같은데 큰 덩치에 대머리인 것이 왠지 효도르 같기도 하고 마피아 같은 느낌이 든다. 절대로 호텔 주인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효도르 마피아 아저씨를 따라 갔는데, 호텔에 들어가는 순간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족 손님들이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호텔에서는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는데 러시아 계통의 엄청난 미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올라갈 것을 걱정했더니 자기 남편이 도와 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한다. 난 무거워서 겨우 끌고 올라가는 캐리어를 효도르 아저씨는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잘도 올라갔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폴레옹 군대나 2차 대전 때 독일이 이런 무지막지한 사람들이랑 싸우느라 여러모로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브르보스카의 평화로운 석양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살펴 본 브르보스카는 아드리아해까지 이어지는 수로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평화로운 항구 마을이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넓은 진입로가 있는데 구글맵이 이상한 골목길로 안내하는 바람에 헤맨 것이었다. 


수로 주변에 집들과 작은 요트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작은 마을이라서 외지인들은 별로 오지 않는지 우리가 돌아다니니까 다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자리를 펴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져서 떠나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날씨가 잔뜩 흐려서 금방이라도 비가 떨어질 거 같다. 그림 같은 해변에서의 여유로운 휴식을 찾아 일부러 찾아온 곳인지라 비가 오더라도 무조건 해변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숙소 주변의 해변은 아름다웠지만 자리를 펴고 누우려니까 빗방울이 떨어져서 일단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섬 건너편의 아름답기로 소문난 흐바르시티로 가기로 했는데 가는 도중에 와이프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오후까지 서로 말도 안 하면서 갔다.


날씨가 안 좋으면 기분도 안 좋아지고 쉽게 다투는 일도 생긴다. 그러고 보니 흐바르에서도, 피르스트에서도 날씨가 우울할 때만 와이프와 다퉜던 거 같다.



흐바르시티 산 위의 성을 둘러 본 후 항구로 내려왔다. 성에서 본 구시가지의 아기자기한 지붕들은 다른 크로아티아 도시들처럼 짙은 오렌지색인데, 특히 이곳의 풍경은 마녀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마을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마녀배달부 키키 마을같은 느낌의 흐바르시티


항구를 둘러보다 보니 여기 저기에서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불기는 했지만 나도 들어가서 수영해보기로 했다. 


아드리아해에서 수영할 일이 내인생에서 언제 또 있겠나 싶어서 바닷물에 들어가 보았지만 거친 파도 탓에 오래 있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얼른 나와야 했다.


높은 파도에도 수영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오후가 되어서 다시 숙소 부근의 해변으로 돌아왔는데, 오전 보다는 날씨가 괜찮아서 이번에는 와이프와 같이 물 속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했다. 한참 동안 있다가 나 혼자 해변에 나와 잠시 쉬고 있다가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예쁘장한 아가씨 하나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다가 물속에서 놀고 나서는 금방 다른 비키니로 갈아입곤 했는데 아마도 젖은 옷을 입고 있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두어 번 비키니를 탈의실로 들어가서 비키니를 갈아입더니 그마저 귀찮은지 그냥 노천에서 비키니를 훌러덩 벗고 갈아 입는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눈 앞에서 펼쳐진 예기치 않은 광경에 나는 깜짝 놀랐다. 지난번 해안도로에서의 광경도 그렇고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남의 눈을 진짜 별로 신경 안 쓰나 보다.


흐바르 시티 항구 풍경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나니 피곤해서 한잠 자고 저녁 무렵 항구로 다시 나왔다. 생선 바비큐를 파는 집이 있었는데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걸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려고 보니 생선 값이 너무 비싸다. 생선을 주문하려면 주방으로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생선을 직접 찍어서 요리하는 방식인데 활어도 아닌 것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모듬 그릴로 시켜서 먹었다. 


음식이 너무 짜고 별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항구의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 맛이 아주 좋았다. 레몬 맥주라고 하는데, 레몬과 맥주의 맛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괜찮은 맛이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와이프도 너무 맛있다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서 레몬맥주를 잔뜩 사서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아껴 마실 정도였다.


평화로운 항구의 저녁 풍경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기로 했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일찍 들어와 잠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주인을 깨우니 주인 아주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일어나 체크아웃을 해준다. 역시나 남의 눈을 별로 신경 안 쓰나 보다. 아주머니가 이별의 선물이라며 조그마한 라벤더 주머니를 준다. 그러고 보니 이곳 흐바르도 라벤더를 많이 재배하는 곳이라고 한다. 


호텔 시설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주인 부부가 너무 친절해 기분 좋은 곳이었다. 입었던 수영복이나 밀린 빨래를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직접 세탁기로 돌려 주고 직접 널어주기까지 하는 등 진심을 다해서 손님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주인 부부였다. 


처음 부킹닷컴 별점이 아주 높은데 비해서 시설이 별로라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별점을 주라면 나도 아주 높은 별점을 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귀찮아서 한 번도 별점을 줘 본적은 없지만..


첫인상과 달리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브르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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