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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0. 2018

심야의 카를교

2.27. 체스키 클룸로프-프라하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들어오니 도로 상태가 확실히 좋지 않다. 한 국가의 경제 수준과 도로 상태는 거의 정확히 비례한다는 생각이 든다.


체코 국경을 넘자 마자 주유소에서 체코 고속도로 통행증을 샀는데 옆에 꽤 큰 아울렛이 같이 있어서 구경을 했다. 별로 살만한 물건은 없었는데 특이하게 주인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베트남 계통 사람들이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니까, 


“Korea, good!”이러는데 그냥 하는 소리 같지는 않고 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도 한류의 영향이겠지..


체스키 클룸로프는 하회마을처럼 말발굽 모양의 강이 감싸고 있다.


국경에서 한참을 더 달려서 체스키 클룸로프에 도착했다. 체코하면 일반적으로 프라하 정도만 유명한데 이 곳도 중세 도시가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유서깊은 곳이다. 


체스키는 ‘체코의’라는 뜻의 형용사이고 클룸로프는 말발굽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강이 도시 가운데를 말발굽 모양으로 통과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회마을과 비슷한 모양이다.


성 꼭대기에서 마신 맥주맛은 잊을 수 없다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성 꼭대기 마당에서 맥주와 간단한 간식을 팔고 있었는데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독일과 맥주의 종주국을 다투는 체코 맥주라서 그런지 싼 가격에도 기가 막힌 맛이다. 우리가 잘 아는 버드와이저도 원래는 체코 맥주였다가 미국으로 팔린 브랜드라고 한다. 


회벽에 그림으로 그려 넣은 벽돌들. 나름 하나의 미술 양식으로 인정 받는다고 한다.


체스키 성 안팎의 벽은 특이하게 회반죽 마감 위에 벽돌 모양이 그림으로 그려진 형태로 되어있다. 멀리서 보면 그냥 벽돌이나 석재로 된 벽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려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방식도 하나의 미술 양식으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좀 조악해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독특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 거 같다.


성을 둘러보고 아래로 내려와 구시가지 쪽으로 나가는 데 출구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뭔가 아래를 내려다보길래 봤더니 성 아래 해자에 곰이 있었다. 뜬금없이 왠 곰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뭔가 사연이 있을 거 같긴 하다. 


강 옆 식당에서 먹어본 체코 전통음식


구시가지를 둘러본 후 강 옆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체코 전통음식을 먹고 싶어서 종업원에게 추천을 받아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고기랑 우리나라의 떡 비슷한 것이 여러 종류 곁들여진 음식이었다. 고기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는데 떡은 별로 입맛에 안 맞았다. 어딜 가도 잘 못 들어 본 전통음식들은 대부분 성공한 적이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래도 강가 테라스 자리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니 기분은 좋았다.


숙소 앞에서 본 카를교


식사를 마치고 프라하를 향해 이동하면서 숙소를 예약했는데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교에서 2분 거리에 있는 호텔이라고 했다. 좋은 위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주차장이 없다. 위치는 좋아서 그야말로 카를교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는데 완전 도심이라서 주차장 만들 장소가 없어 보이기는 하다. 


프라하는 대도시라서 도시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정신이 없고 운전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트램 라인이 곳곳에 있는데다가 차도 많아서 깜빡 잘못하면 트램 라인으로 들어가서 트램한테 쫓겨 다니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호텔에서 몇 백 미터 안 떨어진 성당 옆 노천 주차장에 차를 세우라고 하는데 일방 통행에 복잡한 도로 체계 때문에 거기까지 가서 차 세우고 오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여행 중 시내에 주차할 때는 거의 지하에 주차했기 때문에 노천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한다는 것도 좀 불안했는데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냥 세워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체크하기로 했다.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는 카를교


호텔은 차 세울 데가 없다는 것만 빼면 훌륭한 시설이었다. 무엇보다도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 카를교가 바로 옆에 보이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카를교는 미션 임파서블을 비롯한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던 프라하의 대표적 명소이다.


카를교의 석양


20년 전에 혼자 왔을 때는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고 카를교의 쓸쓸한 겨울 분위기가 꽤나 인상 깊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시장통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아쉽긴 했다. 그래도 다리 위의 조각상들은 예나 지금이나 묵묵히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시청앞 광장의 퍼포먼스


카를교 건너편의 시청 광장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본 것과 비슷한 거리 공연을 여기 저기서 하고 있었는데 광장에 있는 노천식당에서 굴라시와 맥주를 시켜 먹으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괜찮았다. 굴라시는 낮에 체스키 클룸로프에서 먹은 거랑 비슷한 모양인데 맛은 훨씬 나았다. 


시청앞 광장 노천식당에서 먹은 전통음식


시청 광장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프라하성 쪽으로 걸어갔다.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은 어두워서 살짝 겁나기도 하고 경사가 가팔라서 힘들게 올라갔는데 꼭대기까지 가서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을 보니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라하성 야경


프라하 구시가지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늦은 시간이었다.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카를교로 가면 사람이 없을 거 같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를 넘은 시간이라 괜찮을까 싶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그 시간에도 사람이 한 두 명씩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게다가 경찰이 순찰하는 것도 보여서 와이프와 다시 옷을 입고 카를교로 갔다. 


심야의 카를교


낮에 보던 사람들로 가득 찬 카를교가 아닌 아무도 없는 조용한 다리를 보니 우리에게만 주어진 선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낮엔 사람이 많아서 사진 찍기도 힘들었는데 밤엔 둘이서 온갖 포즈를 취해가며 맘놓고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참 와이프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어떤 놈이 내 뒤에서 소리를 빽 질러서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현지인들인 듯한 청년 몇 명이 깔깔대며 웃으면서 지나간다. 화를 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이다. 뭐 그냥 친구들끼리 장난친 거겠지만 만약 스킨헤드 같은 놈들이었다면 한밤중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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