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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1. 2018

로마로 가는 길

2.28. 바이로이트-밤베르크-뉘른베르크

독일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길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로만틱 가도와 고성 가도이다. 로만틱 가도는 로마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이고, 고성 가도는 말 그대로 길을 따라 많은 성들이 있는 곳이다. 고성 가도는 동서로 이어지고 로만틱 가도는 남북으로 이어지는데 그 교차점이 바로 로텐부르크이다. 우리는 프라하에서 고성가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로텐부르크에서 로만틱 가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바이로이트


고성가도의 첫 번째 목적지인 바이로이트에 도착했다. 작고 별로 안 알려진 곳이어서 그런지 거리도 한산하고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검소하고 소박한 차림새여서 호감이 갔다. 예전 여행에서는 독일과 독일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안 좋은 느낌을 가졌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였다. 


거리 한편에 생활용품 마트 같은 곳이 있었는데 전 세계에서 온 갖가지 화장품을 다 파는 것이 특이했다. 한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는 곳 마다 그런 식으로 화장품을 큰 규모로 파는 걸 보면 보기와는 달리 독일 사람들이 화장을 좋아하나 보다 싶었다.


바그너 음악제가 준비중인 오페라하우스


바이로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오페라하우스이다. 매년 7,8월에 이곳에서 바그너 음악제가 펼쳐진다고 하고, 이때는 독일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인다고 한다. 바그너가 살았던 집과 무덤도 보존되어 있어 바이로이트는 바그너의 도시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아쉽게도 오페라하우스는 때마침 내부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외부만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작은 배에 탄 소년들이 장난으로 싸우고 있다


고성가도의 두 번째 행선지인 밤베르크는 독일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물의 도시인데, 워낙 작은 동네라서 그런지 2차 대전 때 파괴되지 않아 예전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물의도시라고 불리울 정도로 밤베르크에는 많은 수로가 있다.

밤베르크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은 다리 위에 지어진 구 시청사 건물인데, 이 건물이 다리 위에 지어지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14세기에 교회와 시민들의 세력간의 충돌로 교회에서 시민들에게 시청 지을 땅을 허락하지 않자 다리 위에 시청사를 지어버렸다고 한다. 


다리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시청사


밤베르크의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거리를 돌아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날씨가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오락가락해서 다음 목적지인 뉘른베르크를 향해 이동하기로 했다. 


뉘른베르크는 2차 세계 대전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곳인데,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도시였지만 2차 대전 말미에 연합군으로부터 대규모 폭격을 받아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가 전후에 복원된 도시이다. 특히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여서, 전쟁 전에는 나치의 전당대회가 여러 차례 열리기도 한 나치의 수도 격인 곳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범 처리를 위해 그 유명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카이저부르크성


뉘른베르크에 도착하니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숙소를 예약해야 했는데 저렴한 곳으로 하다 보니 성 바깥의 외곽지역에 숙소를 구하게 되었다. 중심가까지는 거리도 꽤 멀고 숙소 주변이 좀 슬럼가 같은 느낌도 들어서 좀 걱정되기도 했다. 


숙소를 향해 운전해가다가 프라하에서처럼 실수로 트램 라인으로 들어갔는데 어쩌다 보니 앞 뒤 트램 사이에 낀 샌드위치 꼴이 되었다. 설마 트램이 우리를 들이박지는 않겠지만 쩔쩔 매다가 간신히 옆 차선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급한 순간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욕을 했는데 와이프가 깜짝 놀라면서도

“오빠도 그런 욕을 할 줄 알어?”하며 재밌어 한다. 


뉘른베르크 성을 보러 중심가로 들어가다가 중국요리 식당을 발견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최근에는 거의 호텔에서 자는 바람에 밥을 먹은 지 오래됐는데 오랜만에 중국요리와 밥을 먹으니 너무 행복하다. 전세계 어디를 가나 중국 요리가 가장 입맛에 맞고 가격도 적당해서 좋았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고리를 애써 돌리는 와이프
쇠너브루넨의 꼬마 천사 조각


중앙 광장에 조그만한 기념탑인 쇠너 부르넨은 예전처럼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는데 혼자서 보는 탑이 유난히 쓸쓸했던 기억이 있다. 탑의 한군데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고리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와이프가 돌리면서 소원을 빌길래 뭘 빌었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기만 하고 안 가르쳐 준다.


뉘른베르크 유스호스텔. 성의 마굿간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20년 전에 묵었던 곳이어서 반가웠다.


시내의 야경을 보기 위해 예전 황제가 머물렀다는 카이저부르크 성으로 올라갔다. 성 옆에 있는 커다란 유스호스텔은 전에 혼자 왔을 때 묵었던 곳인데 성의 일부를 유스호스텔로 개조했다고 해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원래 성에 딸린 마구간이었다고 한다. 말이 자던 곳에서 사람이 자는 셈이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보니 유스호스텔이 그대로 있어서 반가웠다. 카이저부르크에서 뉘른베르크의 야경을 본 후 시내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낮이면 멋있었을 거 같은데 인적이 드문 거리를 돌아다니려니 좀 겁도 나고 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올 때도 좀 먼 거리였는데 밤 늦은 시간에 돌아가려니까 너무 힘든 길이어서 겨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뉘른베르크 거리의 한 상덤. 막강한 종교들에 더해 총까지.. 확실한 보호 수단들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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