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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0. 2018

미라벨 정원의 흑인 올페

2.26. 할슈타트-잘쯔부르크

거대한 돌로미티 바위산 아래에서 하루를 잔 후 다음날 일찍 할슈타트를 향해 출발했다. 돌로미티 지역을 내려오자 마자 만난 이름 모를 호수가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물빛이 환상적이었는데 가족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도 많은 거 같았다.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의 향기가 어느 때 보다도 진하게 느껴졌다. 


환상적인 물빛의 이름 모를 호수


출발할 때는 화창한 날씨였는데 할슈타트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흐려지더니 급기야 폭우로 변했다. 이태리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국경을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통과해버리는 바람에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통행증을 사기 위해서 급하게 근처 주유소에 들러야 했다. 


유럽의 고속도로 요금 체계나 부과 방식은 나라마다 다른데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는 고속도로 통행증인 비넷(Vignette)을 사서 반드시 앞 유리에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비넷 없이 다니다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입국하자마자 제일 먼저 비넷부터 사야 했는데, 오스트리아는 그나마 10일짜리도 살 수 있었지만 스위스는 반드시 연간권을 사야 하므로 우리처럼 잠시 들를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낭비였다.


빗속의 우중충한 할슈타트


할슈타트가 가까워질수록 비가 그치기는커녕 폭우로 변해가고 있어서 마음도 점점 무거웠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과속 단속이 엄격하고 벌금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해서 규정 속도에 맞춰서 가느라 시간이 배로 걸리는 느낌이다. 


특히 국도로 가다가 마을들을 만나면 무조건 50Km나 30Km로 속도를 줄여야 했는데, 이태리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지만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반면 여기서는 거의 모든 차들이 규정속도로 달리고 있다. 국경을 넘자마자 사람들의 운전 습관이 너무 급격히 바뀌어서 적응하기 쉽지 않다.


비를 피하려 들른 카페. 음악의 나라답게 모짜르트가 모델이다


할슈타트에 도착하니 그나마 비가 좀 덜 와서 돌아다니며 마을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빈과 잘쯔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잘츠카머굿 지방은 수많은 멋진 호수와 산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곳인데, 할슈타트가 잘츠카머굿을 대표하는 경치라고 할 수 있다. 


할슈타트의 할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름처럼 이 마을에는 철기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세계 최고의 소금광산이 있다. 소금 광산이 아니더라도 할슈타트는 호숫가의 멋진 마을 풍경으로 우리 어릴 때 여러 집을 장식했던 달력 사진의 단골 메뉴로 사용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호숫가의 멋진 경치도 이런 빗속에서는 그냥 평범한 호숫가 마을로 느껴질 뿐이어서, 날씨가 풍경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볼프강 제의 석양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할슈타트 거리를 둘러본 후 잘쯔부르크 쪽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날씨가 조금 괜찮아져서 잘쯔카머굿의 또 다른 호수인 볼프강제를 둘러보았다. 이 곳은 할슈타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라서 좀 더 조용하고 한가하게 호수를 둘러볼 수 있었다. 


호수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물이 깨끗한 곳이었는데 물 속에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데 아무도 고기를 잡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의아했다. 거대한 호수 전체가 낚시 금지로 지정되어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 차에 둔 낚시대를 가져와서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다.


맑은 물 속에 수많은 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이곳 볼프강제에는 단체 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할슈타트에도 중국인들이 많기는 했지만 한국인 여행객들도 좀 있었던 반면, 이곳 볼프강제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만 득실거린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떠들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하는 것은 어딜 가나 거의 비슷한 거 같다. 



클래식의 나라 답게 호숫가에서 공연을 준비중이었다


다시 잠시 차를 달려서 잘쯔부르크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미라벨 정원을 찾았다. 사운드오브뮤직의 배경이자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곳이라 그런지 다른 어떤 여행지보다도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았는데 특히 젊은 여자 둘이 다니는 커플이 많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이런 패턴이 왜 유독 한국에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미라벨 정원을 둘러보다 보니 어디선가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린다. 허름한 차림의 거리의 악사가 클라리넷 같은 목관악기로 연주를 하고 있는데 바로 흑인올페의 메인 테마였다. 처연하고 비극적인 멜로디가 꽃이 만발한 미라벨 정원과는 좀 안 어울리는 듯 했지만 너무나 감동적인 연주였기에 나의 거금 50센트짜리 동전을 아낌없이 던졌다.


미라벨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


미라벨 정원과 멀리 보이는 호헨 잘쯔부르크 성


잘쯔부르크의 또 다른 명소인 호헨잘쯔부르크 성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푸니쿨라를 타야 했지만 늦은 시간이어서 푸니쿨라가 운행을 할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성까지 이어지는 길이 표시가 되어 있어서 혹시 차로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한번 올라가보기로 했다. 


구글맵을 따라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는데 역시 중간 중간 길을 막아 놔서 성으로는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성으로 올라 가는 것은 포기하고 언덕 위에 잠깐 차를 세워두고 잘쯔부르크의 야경을 보기로 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좀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막상 전망이 보이는 언덕 위로로 가자 여기 저기 연인들이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질녘의 잘쯔부르크는 20년 전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잘쯔부르크의 야경


하염없이 야경을 감상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을 몰라서 숙소 예약해야 할 시간이 지나 버렸다. 급하게 숙소를 찾아보니 마땅한 숙소를 찾기 힘들었는데, 오스트리아의 비싼 물가 때문인지 너무 비싼 방들만 남아 있어서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아서 예약을 마치고 그 쪽을 향해 출발했다.


10시전까지 체크인을 해야 했는데 남은 시간이 촉박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운전하다가 와이프와 또 다투고 말았다. 사실 지나고 보면 와이프 말대로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다. 역시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인생은 희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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