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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04. 2018

사랑의 도시 베로나

2.23. 베로나-가르다호수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무대인 바로 그 도시이다. 베로나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본 곳은 시내 중심에 있는 아레나였는데, 로마 콜롯세움과 카푸아에 있는 아레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아레나라고 한다. 지금은 각종 예술 공연이 펼쳐지는 공연장으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님과 아를에 있는 아레나와 비슷한 느낌이어서 안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아레나에서 중심가를 따라 걸으며 베로나의 최대 볼거리라고 할 수 있는 줄리엣의 집을 향해 갔다. 이태리 북부 지방은 확실히 남부와는 달리 부티 나고 세련된 느낌인데 베로나의 거리도 확실히 여유 있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줄리엣의 집은 시내 한가운데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의 터널 벽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연인들의 낙서로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줄리엣의 집 마당에는 줄리엣 동상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동상의 오른 쪽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있어서 그 부분만 하얗게 반짝거린다. 


줄리엣의 오른 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런다는데 부처님 상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코가 닳아 없어지도록 만지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마음과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너무 노골적인 것 같다. 적당한 은유가 필요할 듯 한데…


줄리엣의 집으로 들어가는 터널은 낙서로 가득 차있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줄리엣의 집 벽에는 줄리엣이 내려다 보고 로미오가 바라보고 불렀을 테라스가 나와 있어서 잠시 그 광경을 상상하게 되는데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다 만들어진 가짜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베로나인 것은 맞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이므로 줄리엣의 집 같은 것이 실재로 존재할 리가 없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가짜인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줄리엣의 테라스를 쳐다보고 로미오의 세레나데를 상상하는 것이 신기하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줄리엣의 집 벽 틈에 사랑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끼워 넣는 통에 주기적으로 편지를 수거해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줄리엣의 테라스


고급스런 느낌의 베로나 거리


베로나를 마지막으로 이태리에서의 도시 여행은 마치고 이제부터는 북부의 산악지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 우리가 잘 숙소는 베로나의 북쪽에 위치한 가르다 호수에 면해있는 호텔이었기 때문에 그 쪽을 향해 이동했다. 


가르다 호수는 이태리 북부에 위치한 이태리에서 가장 큰 호수인데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은 곳이라고 한다. 가르다 호수부터 북쪽 지방은 알프스 산맥과 이어지는 험준한 지형이어서 높은 산과 깊은 계곡, 호수 등이 많아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치가 펼쳐지는 곳이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서 스위스로 갈 계획을 세웠다. 가르다 호수는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인데 양 옆으로는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멋진 경치이다.


저녁 무렵 가르다호수 풍경


한참을 달려 미리 전화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캄캄한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쾌활한 성격의 아주머니가 주인이었는데 밝은 목소리로 이런 저런 유의 사항을 얘기해 준다. 여기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짐을 들고 올라오기가 힘들 거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차에 둬요”


라며 웃는 얼굴로 말한다. 주차장이 찻길에 바로 면해있어서 당연히 짐을 다 들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차에 두라고 말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최악의 자동차 털이 얘기는 대부분 이쪽 이태리 북부 얘기여서 차 안에 뭔가 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소문에 제일 악명 높은 동네는 밀라노라고 하는데 도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에서 일부러 차를 펑크 내고 수리하는 동안 털어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유리를 깨고 가방을 낚아채 간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심지어 이번 여행에서 밀라노는 일부러 여행 목적지에서 제외하기까지 하였다. 아주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걸 보니 이 동네는 별로 안 위험한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 낑낑대며 짐은 다 가지고 올라가기로 했다.


밤에는 몰랐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 보니 우리 방이 호수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가진 멋진 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보니 대부분의 투숙객들이 유럽의 각 나라에서 온 노인 분들이다. 아마도 여기도 은퇴자들이 장기적으로 투숙하는 호텔인 것 같은데, 유럽에는 이렇게 은퇴 후에 경치 좋은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즐기는 노인 분들이 많은 거 같다. 


열심히 일하면 은퇴 후에 이렇게 여유로운 삶이 있으니 유럽 사람들은 한살이라도 일찍 은퇴하고 싶어 하고, 심지어는 은퇴 연령을 몇 년 늦추려는 정부 정책에 격렬한 시위로 반응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뉴스도 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노동계에서 정년퇴임 연령을 조금이라도 뒤로 늦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유럽과는 달리 정년퇴임 후에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뭔가 일을 찾을 수 밖에 없어서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렸다가 홀라당 날려먹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우리도 빨리 은퇴 이후에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복지 제도가 갖추어져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은퇴할 때쯤에는 뒷마당에는 수영장이 있고 앞에는 그림 같은 호수가 펼쳐진 이런 호텔에서는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을까? 그리 많이 남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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