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Sep 07. 2018

구름 속의 돌로미티와 아픈 역사

2.25. 돌로미티

돌로미티는 이태리 북부에 위치한 산악지역인데 줄지어 있는 가파른 절벽과 깊은 계곡으로 유명해서 신들의 지붕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알프스 하면 대부분 스위스를 떠올리지만 돌로미티도 그에 못지 않은 압도적인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돌로미티를 제대로 둘러보기 위해서는 볼차노라는 도시와 코르티나 담페초 라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두 갈래 길을 차로 이동하면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최근까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볼차노를 향해서 이동하는데 오늘도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이 내리던 비가 볼차노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폭우로 바뀌어 있었다. 돌로미티 패스로 들어왔지만 구름에 가려서 앞에 뭐가 있는지도 안보일 지경이었다. 


티롤의 아픈 역사를 알려준 기념품 가게 주인 아저씨


비가 그칠 때까지 좀 기다리기로 하고 목공예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거의 대부분 주인 아저씨가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파는데 와이프가 이쁜 것들이 너무 많다며 한참을 둘러본다. 그 사이 주인 아저씨와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다가 어제 묵었던 마리안하우스 여주인에 관한 얘기를 물었다. 


“왜 이태리 사람이 독일말을 쓰는 거죠? 생긴 것도 독일사람 같던데”


“그건 이 지역이 1918년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 땅이어서 그래요.”


그에 따르면 이 지역은 남부 티롤이라고 불리는 지방인데 1918년 전에는 오스트리아 땅이었다고 한다. 알프스 산맥 중의 산간지대에 걸쳐 있던 티롤 지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일부였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한 후 남부 티롤이 이탈리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 아주머니가 독일어를 쓴 것인데, 사실 오스트리아가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럼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독일말을 쓰나요?”


“이태리말과 독일말을 쓰죠. 거기다 라디노까지 더해서 보통 3개 국어는 해요.” 라디노는 티롤 지방의 토속 언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언어를 다 배우려면 이 지역에서 살아가기도 만만치 않은 일일 것 같다.


“여기 분들은 스스로 이태리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이 많으신 분들은 본인이 이태리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분들도 많은 거 같아요.”


남티롤은 비교적 최근에 이태리에 합병된 곳이라 아직도 이태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태리 다른 지역보다 훨씬 부유한 느낌이고 건물이나 경치도 이태리보다는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에 가깝다. 최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실시로 인해 남부 티롤 지방도 분리독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우연히 들른 기념품 가게에서 많은 것을 배운 느낌이다. 


 

다시 출발해서 한참을 갔지만 여전히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에 유럽이 올해 이상저온이라서 날씨가 춥고 해를 별로 못 본다고 했었는데 여기도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나 보다.


점심을 먹은 후에도 여전히 날씨가 우울해서 그냥 포기하고 가다가 중간에 한 고개 마루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거짓말처럼 날이 개면서 주변의 장엄한 경치가 한 순간에 나타나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구름 속의 돌로미티


이때다 싶어서 차에서 내려서 와이프와 트래킹을 하기로 하고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돌로미티가 유명한 트래킹 명소였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시도한 것인데, 화창하게 갠 날씨에 기분은 좋았지만 얼마 못 가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와이프나 나나 원래 좋지 않은 체력인데다가 오랜 여행으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완전 저질 체력이 된 모양이다.


돌로미티의 특이한 지형
잠시 화창해진 날씨로 장엄하게 드러난 돌로미티


다시 돌로미티 패스를 따라 가는데 우리 차와 같은 빨간 번호판의 푸조 3008을 두 대나 마주쳤다. 내가 깜짝 놀라서 반대편 운전자를 쳐다보니 그쪽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빨간 번호판은 푸조나 시트로앵 리스차만 달고 다른 렌터카들은 달지 않기 때문에 유럽에서도 빨간 번호판을 보기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인데 이곳 돌로미티에서는 자주 볼 수 있었다. 돌로미티가 우리나라 자동차 여행자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있나 보다.


돌로미티 패스를 둘러보고 코르티나 담페초를 가는 도중에 캠핑장을 잡아서 쉬어가기로 했다. 코르티나 담페초는 1956년에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라서 훌륭한 스포츠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올림픽 시설의 일부인 유명한 캠핑장도 있어서 거기서 묵을 계획이었다. 


돌로미티 캠핑장 창문 너머 풍경


예약을 위해 전화를 해보니 이미 꽉 찼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 부근 어디에서 묵어야 했다. 검색을 해보니 부근에도 괜찮은 캠핑장이 있어서 전화로 예약하고 찾아갔는데 돌로미티의 거대한 바위산 아래에 위치한 아름다운 캠핑장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텐트는 치지 않고 지붕 있는 아파트먼트로 구했는데 좀 비싸긴 했지만 창문을 여니까 바로 돌로미티의 바위 절벽이 보이는 곳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낮에 트래킹을 하려다 저질 체력으로 고생했기에 몸보신을 하기로 하고 마트에서 생닭을 사서 백숙을 준비했다. 기왕이면 삼계탕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여건상 그냥 삶아먹는 수 밖에 없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소금만 찍어서 먹어도 너무 맛있었다. 뭔가 원기 회복이 된 느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르다의 안식과 스텔비오의 공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