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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Oct 29. 2018

모네와 고흐의 자취를 따라

2.37. 지베르니-오베르쉬아즈

오늘은 내가 와이프와 여행에서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다. 와이프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정차장과 권셰프를 만나서 다시 한달간의 여행을 위해 아일랜드로 떠날 예정이다. 저녁 무렵에 드골공항에 도착하면 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한 후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모네가 직접 가꾼 지베르니 연못


먼저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로 향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연못과 정원이 딸린 집을 사서 그 곳에서 그림을 주로 그렸다고 하는데 유명한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그림들이 이곳에서 그려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듯 입장을 위해 한참 줄을 서야 했는데, 역시 모네의 그림에서 보았던 것 같은 풍경들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모네의 그림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버드나무와 연잎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림에서처럼 버드나무와 연꽃이 흐드러져있다.


모네의 저택에 들어가면 모네가 살아있을 때 작업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모네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 촬영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내가 이곳을 본 한두 달 후에 이곳에서 박지윤 아나운서가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진촬영 금지인 곳에서 사진을 찍어서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은 잘못한 일이겠지만 굳이 이곳을 사진촬영 금지로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은 든다.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 자유롭고 작품에 손상이 갈 수 있는 플래시만 금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네가 가꾸었을 정원


그림에서 본 것 같은 강렬한 색깔의 꽃들


지베르니에서 모네의 발자취를 더듬은 후 고흐를 만나기 위해 오베르쉬아즈로 이동했다. 이곳은 고흐가 마지막 생을 보낸 곳으로 고흐의 걸작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그려졌고,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고흐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라부 여인숙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고흐 사망 125주년을 맞아 라부 여인숙의 고흐가 살던 방에 1억 2천만 유로를 들여 고흐의 그림을 사서 거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얀센이라는 분은 우연히 라부 여인숙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인연으로 이 여인숙을 인수하고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도 모자라 고흐의 비싼 그림을 사서 거는 것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흐가 마지막까지 살다 간 라부 여인숙


오베르쉬아즈 마을 곳곳에는 고흐가 그린 풍경과 실제의 풍경을 비교할 수 있도록 고흐의 그림을 붙여 놓은 곳이 많다. 고흐가 이곳에서 풍경 작품도 많이 남겨서 번호까지 매겨가며 마을 곳곳에 서있는 입간판을 숨은그림처럼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고흐의 작품과 실제 모습을 비교하는 입간판이 곳곳에 서있다


어제 오르셰 미술관에서 본 고흐의 걸작 오베르 교회의 실제 모습을 그림과 비교해보기 위해 오베르 교회를 찾아갔다.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언덕을 오르내리며 한참을 헤맨 후에 겨우 찾았다. 


고흐가 그린 오베르 교회는 격렬하게 뒤틀리고 불타오르는 느낌인데 실제 오베르 교회는 당연하게도 너무도 얌전한 직선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극도로 뒤틀린 고흐의 정신 상태가 그대로 투영된 그림이라고 하겠다.

 

격렬하게 뒤틀린 고흐의 오베르 교회


실제 오베르 교회


오베르 교회 뒷편 언덕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고흐의 그림에 자주 나오고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바로 그 밀밭이 있고 그 한편에 고흐와 테오의 무덤이 있다.


까마귀 나는 밀밭의 무대


이제 공항으로 갈 시간이다. 드골 공항에 근 한 달 만에 도착해서 정차장과 권셰프를 만나서 와이프와 서로 인사를 했다. 정차장과 권셰프는 몇 일 전에 파리에 도착해서 한인 민박에 묵으면서 파리 구경을 한 모양인데 이 쪽도 파리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듯 했다. 둘 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지하철 역의 여직원이 대놓고 무시했다고 하고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그래도 처음 오는 곳에서 씩씩하게 잘 돌아다닌 듯 했다.


짐을 다시 정리한 후 와이프가 한국으로 가는 출국 게이트로 들어갔다. 와이프는 떠나기 몇 일을 남겨두고서는 체력이 바닥났는지 힘들어했지만 떠날 때가 되니까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오랜 여행으로 피곤이 쌓이기도 했고, 결혼 후 이렇게 오래 와이프와 떨어져 있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와이프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이별을 하고 아일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와이프가 검색대에서 걸려서 짐을 다 풀어헤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것저것 기념품을 많이 사 모으다 보니 짐이 커졌는데 백이라도 사 가는 줄 알았나 보다. 나도 엑스레이 검색대에서 걸려서 짐을 다 풀어헤쳐야 했는데 전자기기들의 충전 선들과 주머니칼 때문이었다. 이후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마다 꼭 하나씩 걸려서 짐을 풀어헤쳐야 했는데 다음 번에는 잘 싸야지 하다가도 꼭 한두 가지씩 빠뜨린다.


이제부터는 사람도 장소도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을 고하고 낯설고 거친 장소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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