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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Oct 28. 2018

황새의 도시

2.35. 에기솅-콜마르-스트라스부르

프랑스 남동부에 남북으로 펼쳐진 알자스 와인가도로 이동했다. 와인을 위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라고 해서 와인가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인데, 역시 와인가도에 들어서자 포도밭이 사방에 푸르게 펼쳐져 있다. 


다른 곳에서도 포도밭은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사방에 포도밭이 펼쳐진 광경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기는 하다. 알자스 지역은 예전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로렌과 함께 예전부터 프랑스와 독일의 영토분쟁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문화와 독일 문화가 뒤섞인 퓨전의 느낌을 주는 곳이다.


에기솅의 중세 거리


어디를 가나 제라늄 화분으로 장식되어 있다.


와인가도에는 조그마한 아름다운 중세 마을들이 많은데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에기솅이다. 여러 개의 동심원 구조로 중세 거리가 펼쳐진 곳인데 집집마다 창문을 제라늄 화분으로 장식한 것이 인상적이다. 


에기솅에는 ‘제라늄의 도시’라고도 불릴 정도로 어딜 가나 많은 제라늄을 볼 수 있는데, 창틀에 붉은 색 제라늄 화분을 놓는 전통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집 주변에도 꽃을 심고 가꾸는 것을 무척 즐기는 곳이라고도 한다. 미로 같은 중세시대 골목길로 돌아다니며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아름답게 장식된 꽃들을 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황새의 마을답게 건물 지붕에 황새집들이 있다.


에기솅은 ‘황새의 마을’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황새와 관련된 여러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마을의 중심 광장에 면한 건물 지붕 꼭대기에 황새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군데도 아닌 여러 곳의 지붕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니다. 이곳이 ‘황새의 마을’이라는 것을 확실히 어필하는 광경이었다.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콜마르의 쁘띠베니스. 규모로는 베니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다음 목적지인 와인가도의 대표 도시인 콜마르로 가기 위해 이동했는데 도로가 공사로 끊긴 곳이 많아서 찾아가는데 애를 먹었다. 콜마르는 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와인가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쁘띠 베니스라는 곳이 있는데 베니스에 비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수로와 집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콜마르의 올드타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도 한다. 


콜마르를 둘러보고 중앙 광장에 면한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를 저녁으로 먹었는데 값도 저렴한 편이고 너무 맛있어서 잊지 못할 저녁이 될 거 같다. 저녁 식사 후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해서 이비스 호텔에서 잠을 잤다.


콜마르 중앙광장에서의 잊지 못할 식사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연합(EU) 의회가 위치한 곳으로 이곳 사람들은 유럽연합의 수도라고 얘기하는 곳이다. 알자스 지방에서는 가장 큰 도시로 장미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노트르담 성당은11세기에 시작한 공사가 15세기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을 정도로 대규모로 지어진 곳인데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파괴된 것을 프랑스 정부가 정성을 기울여서 복구했다고 한다.


기념품 가게에서 신혼여행에서 산 강아지 집사를 발견해서 반가웠다


다음날 스트라스부르 중앙 광장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을 보기 위해 도심으로 찾아갔다. 주차할 곳을 찾다가 성당 뒤편에 있는 노면 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우고 성당의 첨탑을 올라갔다. 노트르담 성당은 19세기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3백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첨탑 꼭대기를 올라서면 탁 트인 시내 전경이 펼쳐진다. 


장미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압도적 스케일의 노트르담 성당


좁은 첨탑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니 예전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올라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못 올라갈 것 같을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올라간 수고에 비하면 그다지 큰 볼거리는 없었지만 장미빛 사암으로 만들어진 성당을 내려다보면서 플라잉 버트레스와 같은 고딕 성당의 특징인 구조물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정교한 디테일의 파사드


성당을 내려와서 쁘띠 프랑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콜마르에 쁘띠 베니스가 있다면 스트라스부르에는 쁘띠 프랑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 명소라고 한다. 사실 프랑스 영토 안에 쁘띠 프랑스가 있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곳이 프랑스와 독일의 오랜 영토분쟁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기는 한다. 아마도 독일 입장에서 지은 명칭이 아닐까 싶다. 


노트르담 성당 내부
고딕 성당의 특징적 구조물인 플라잉버트레스를 잘 볼 수 있다.


시내를 돌아본 후 차를 세운 곳으로 돌아왔는데 처음 출발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넘게 지나 있었다. 주차 티켓을 한 시간으로 끊어 놓았었기 때문에 혹시나 단속에 걸렸을까 봐 내심 조마조마하면서 빨리 왔는데 역시나 도착해보니 차 앞에 뭔가 딱지 같은 게 붙어 있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서 자세히 봤더니만 단속 스티커가 아니라 다른 주차 스티커였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시간이 서너 시간이 남아 있는 주차 스티커를 누군가 우리 차 유리창에 놓고 간 것이었다. 누군가 계획보다 빨리 떠나게 되어서 주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아있는 우리 차에 놓고 간 거 같은데, 아마도 우리 차 앞에 세워져 있던 스포츠카가 떠나면서 두고 간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지 몰라도 고마운 사람들이다. 차도 멋지더니만..  


스트라스부르에는 와인가도 중심도시답게 마을 광장에 거대한 와인 숙성통이 놓여 있다.


주차 시간도 여유 있겠다 점심을 먹기로 하고 광장에 있는 노천 식당 한 곳에서 어제처럼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를 시켜 식사를 했는데 어제보다는 못한 느낌이다. 


식사를 하는 중에 네다섯 명 정도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식당 앞에서 머뭇거린다. 가족인 듯한데 아버지가 식당으로 불쑥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가 나온다. 아마도 화장실이 급한 모양인데 아버지가 나온 후 다른 가족들도 돌아가며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양이다. 


문간에서 식당 직원이 서서 눈총을 주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당 직원이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인데 별로 보기가 안 좋았다. 오직 급했으면 그랬겠나 싶기도 하지만, 커피 한잔이라도 시켜놓고 다녀와도 될 텐데..


쁘띠 프랑스 전경. 콜마르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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