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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Oct 27. 2018

최고의 야경, 최악의 모히토

2.36. 파리

스트라스부르를 떠나 파리를 향했다. 근 한달 만에 다시 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거의 네 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한 파리는 여전히 정신 없이 북적대고 있다. 복잡한 도로와 체증 때문에 또다시 운전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이틀을 자고 와이프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여행의 후반부를 함께할 회사 동료를 만나 아일랜드로 갈 예정이었다. 파리 남쪽에 있는 이비스 호텔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시설이 낡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위치가 지하철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좀 걱정되기도 했지만 새로 찾기도 귀찮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칸막이 없이 뻥 뚫린 파리 지하철 신형 객차 내부. 커브를 돌면 재밌는 광경이 펼쳐진다.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는데 가이드북에 소르본 대학 근처에 싼 가격에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 부근 같은 느낌이었는데 싼 가격에 코스 요리를 파는 곳이 책에 나온 곳 말고도 많이 있었다. 


책에서 본 식당을 찾아가보니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노천에 있는 자리를 잡고 12유로짜리 코스 요리를 시키니 그걸 먹으려면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한다. 12유로짜리 코스는 어떤건지 호기심에 시켜본 것인데 시작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살짝 나쁘다. 


전체 요리로 상추와 연어 샐러드가 나왔는데 뭐 그냥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요리가 나오는 순간 와이프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스테이크라고 나온 것이 도저히 요리라고 하기 힘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뻣뻣하고 맛없기는 우리나라 가판대에서 파는 햄버거 패티보다 나을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다 먹고는 한참을 기다려도 디저트가 안 나오길래 직원을 불러서 얘기하니까 그제서야 갖다 준다. 우리가 스테이크를 보고 웃어서 그런지 종업원도 표정이 좋지 않고 불친절한 낌새다. 그런데 디저트는 너무 맛있는 것이 아마도 요리와 상관없이 공통으로 내주는 모양이다. 재미있긴 한데 씁쓸한 경험이었다. 


너무 무거운 자물쇠때문에 무너져 내렸다는 사랑의 다리


다음날 보기로 한 오르셰 미술관은 지하철을 타고 가 보기로 했다. 몇번을 갈아타야 해서 도중에 갈아타는 역에서 서울 만큼이나 복잡한 파리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길을 고민하고 있는데 지하철 도우미인듯한 여자가 와서 도와준다고 한다. 여자 말이 가장 가까운 RER 역은 폐쇄되었으니 다른 방법으로 가야 한다면서 방법을 알려준다. 아르바이트생인지 자원봉사자인지 모르겠지만 미리 알려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오르셰 미술관에 도착하니 총을 든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원래 서는 건지 아니면 최근의 테러 사건 때문이지 알 수 없었다. 


선상 카페에서 본 노트르담 성당의 야경


오르셰 미술관은 폐쇄된 기차역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라 미술품뿐 아니라 박물관 그 자체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수많은 미술품 중에 특히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고흐의 힘있는 붓 터치를 가까이서 보니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대부분의 작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도 유명한 작품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셰 미술관


박물관을 나오니 너무 배가 고파서 바로 옆에 있는 중국 식당에 갔다. 손으로 찍으면 원하는 음식을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너무 싸서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찍고 보니 표시한 가격은 100g당 가격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중국인 주인 아저씨가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정신을 쏙 빼놓더니만 정신 차려보니 이미 비싸게 한 상 차려놓은 뒤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맛있게 먹어서 좋았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에너지를 비축한 후 와이프가 파리에서 꼭 들러야 한다고 했던 몽쥬 약국으로 갔다. 파리에 오는 한국 여자들의 90%는 들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한다.


파리에 오는 한국 여성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른다는 몽주약국


지하철 역에서 내리니 바로 있었는데 겉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약국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나게 넓은 곳이다. 많은 손님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었는데 각 나라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한국인 손님들이 단연 많은 거 같았다. 한국인만 전담하는 한국인 직원이 따로 있어서 쇼핑을 돕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안에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밖에 나와서 기다렸는데 바로 앞에 공원도 있었지만 앉을 만한 곳이 없어서 기다리는 것도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와이프와 나 둘 다 저질 체력이라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일단 호텔로 돌아와 한잠 자기로 했다. 저녁 무렵에 일어나 은령씨를 다시 만났는데, 은령씨가 잘 아는 벨기에식 홍합요리 집으로 안내했다. 화이트 와인과 곁들인 홍합이 역시나 우리 입맛에 잘 맞아서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후에는 걸어서 센강의 야경을 보며 노트르담 성당 방향으로 걸어 갔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이번에는 상쾌한 기분으로 파리의 밤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가다 보니 다리 난간이 온통 자물쇠로 꽉 차있는 다리가 나왔다. 지난 6월에 자물쇠들의 무게를 못 견디고 다리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는 퐁데자르였다. 복구가 됐는지 무너진 흔적은 없었는데 여전히 많은 자물쇠들로 힘들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퐁네프에서 보는 야경도 예전처럼 아름다웠고 노트르담 성당도 여전히 멋진 야경을 보여주었다. 은령씨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노트르담 성당 뒤쪽의 센강에 떠 있는 선상 카페였다. 


은령씨의 단골집은 이미 문을 닫아서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다른 곳으로 갔는데 조금씩 흔들리는 배에서 칵테일과 맥주를 마시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만 모히토 맛은 먹어본 최악의 맛이어서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었다. 가끔 배 옆 센강변을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는 시커먼 쥐들을 구경하면서 파리의 밤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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