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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Oct 25. 2018

백조의 위엄은 어디로

2.34. 베른-에비앙-제네바

베른 한 가운데에 위치한 장미 정원으로 올라갔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서 베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어서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꽤 있었는데 젊은 여행자 몇 명이 셀카봉을 들고 다니며 찍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족단위로 쉬고 있는 사람들과는 좀 안어울리는 듯한 느낌이다.


장미정원에서 내려다본 베른 시내 전경


장미 정원 답게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있다.


주로 가족단위로 쉬는 듯한 모습


시간이 늦어서 숙소를 구해야 했는데 베른 근처는 너무 비싸서 제네바 호수 아래쪽에 면한 프랑스 쪽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한참을 달려서 찾아간 호텔은 호수에 면한 멋진 경치를 가진 곳이었다. 


이번에도 싼 방을 구하다 보니 호수는 안 보이는 방이긴 했지만 2분만 나가면 바로 제네바 호수이고, 여러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호텔 리셉션에는 잘생긴 훈남 청년이 있었는데 방까지 와서 안내해주며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바람에 와이프가 특히 기뻐했다. 천성적으로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느낌을 주는 청년이었다. 


바닷가 같은 느낌의 제네바 호숫가


제네바 호수는 워낙 커서 호수라기보다는 바닷가에 있는 느낌이다. 제네바 호수는 레만호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어릴 때 보았던 ‘레만호에 지다’라는 드라마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이곳은 언젠가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남북의 남녀 스파이들이 어쩌다 서로 좋아하게 되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북의 여자 간첩이 레만호 호숫가에서 총에 맞아 죽는 비극적인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북한 간첩이 사랑 이야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던 드라마였다. 


지금이야 베를린 같이 북한 스파이를 스타일리시하게 그린 영화도 있지만 박통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커서 와 본 레만호에서 어릴 적 드라마에서 느꼈던 쓸쓸한 이미지 보다는 고급 휴양지의 느낌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다음날 제네바호수의 맑은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해 보았다. 해변이 모래사장이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고, 생각보다 물살이 세서 수영하기는 만만치 않았지만 바다에서 해수욕하는 거랑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르다 호수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민물이라서 끈적거리지 않고 상쾌한 느낌이 좋았다. 어릴 적엔 나도 강이나 호수에 들어가서 헤엄쳤던 기억이 많은데 요샌 수영은 그냥 수영장에서 하거나 놀이공원에서 하는 것으로 된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운치있게 호수속에 있는 야외 다이닝 테이블


호텔에서 나와서 에비앙으로 이동했다. 에비앙은 그 유명한 에비앙 생수를 만드는 에비앙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곳이다. 마을 이름이 브랜드가 된 것이다. 


예전에 프랑스의 한 귀족이 이 지방의 샘물을 꾸준히 먹고 요로결석을 치료한 뒤부터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이 지역에 열 몇 군데에서 나오는 샘물을 생수로 만들어 파는 것이 에비앙 생수라고 한다. 


그 중에서 두 개는 팔지 않고 그냥 공짜로 먹을 수 있도록 뒀는데 그 중 하나가 에비앙 본사 바로 뒤로 돌아가면 있는 샘물이다. 바로 이 샘물이 최초의 에비앙 생수라고 한다. 


오리지널 에비앙 샘물. 지역 주민들은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에비앙 본사 뒤로 샘물을 찾아가보니 두 어명의 사람들이 물을 뜨고 있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물을 떠서 식수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다들 커다란 박스에 물통을 가득 담아와서 물을 뜨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게는 먼저 떠가라고 양보를 해 주어서 기다리지 않고 물을 퍼갈 수 있었다. 물맛은 그냥 에비앙 생수 맛이었다. 


에비앙도 그렇고 볼빅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삼다수도 그렇고 화산석을 통해 걸러진 물 맛이 좋다고 한다. 에비앙이 제네바 호수에 면해 있어서 호수 물을 정수해서 파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에비앙 로고가 눈 덮인 알프스 모양이라고 한다. 호수물이 아니라 빙하 녹은 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비앙에서 잠시 에스프레소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길거리에서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이 애기 모습이어서 놀라는 재미있는 TV CF가 있는데 바로 에비앙 TV 광고이다. 에비앙 생수를 먹으면 젊어진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에비앙 본사에는 이와 비슷한 컨셉의 재미있는 장비가 있는데 즉석 사진기 같은 기계에서 사진을 찍으면 애기처럼 어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계이다. 


무슨 원리인지 궁금하고 나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한번 찍어보고 싶었는데 유독 거기만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가기로 했다. 


먹을 것을 던져주면 받아 먹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제네바 호수의 백조들.


제네바 호수의 메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제네바로 이동해서 호숫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호수에 수많은 백조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주는 음식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오리떼처럼 사람들이 던져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려고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 실망스런 느낌이다. 우아함의 대명사인 백조가 어찌.. 


우리나라에서는 백조를 보려면 동물원으로 가야 해서 아직도 백조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지만 여기선 너무 우스꽝스런 모습을 많이 봐서 환상이 사라진지 오래다. 베르사유 정원에서, 가르다 호수에서, 제네바 호수에서 과자를 받아먹자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백조라니..


음식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 분주한 백조떼


주네브의 상징인 물위의 거대한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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