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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04. 2018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

2.54. 트롤스티겐-올레순드-트빈데포센

이태리에서 힘들게 찾아갔었던 스텔비오 패스와 함께 전세계에서 험한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트롤스티겐에 도착했다. 


힘들게 올라갈 것을 각오하고 와 봤더니만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고갯길이다. 급경사에 헤어핀 구간이 반복되긴 하지만 길도 넓고 차도 많지 않아서, 어제 게이랑거 피요르드에서 올라오는 고갯길이 훨씬 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을 관통해 지나가는 폭포


내셔널 루트를 따라가면 보게 되는 흔한 폭포


결국 스텔비오 패스도 그렇고 트롤스티겐도 그렇고 거기까지 가는 길이 훨씬 험하고 재미있었던 셈이다. 길도 그렇고 인생도 큰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허무한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즐겨야 하는 것이다. 


구름 모자를 쓴 산할아버지


이번 노르웨이 여행의 북쪽 끝 목적지인 올레순드에 거의 도착했기 때문에 올레순드 조금 못 미쳐서 있는 캠핑장에서 묵기로 했다. 히테가 좀 비싸지만 좋은 시설이다. 


이곳 캠핑장 주인도 어딘가 모르게 괴팍한 것이 말은 극존칭으로 하지만 어딘지 싸이코 같은 느낌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총기 대량학살의 범인이 이런 사람들과 비슷한 류였을까? 어디선가 북유럽은 겨울이 너무 길고 추워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의 성격이 그렇게 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롤스티겐 전망대에 있는 식당. 노르웨이 답게 북유럽 스타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고갯길 중 하나인 트롤스티겐


캠핑장에서 해안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서 내려가서 낚시를 시도해 보았지만 어제와는 달리 아무것도 잡

히지 않는다. 바다에 면해 다이빙대도 만들어져 있고 이것저것 시설들이 있어서 나름 멋진 경치를 이루고 있지만 고기는 별로 안 보인다. 


왠 외국청년이 다이빙대에서 고기를 잡으면 잘 잡힐 거라고 말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폴란드에서 노르웨이로 일하러 왔다는 아저씨였는데, 항구에서 화물을 하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에도 3d 업종에 종사하는 동유럽 출신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이 아저씨도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혼자 일하느라 외로운 듯 했다. 


캠핑장에 면한 바다에서 낚시를 해보았다


왠지 우리랑 계속 대화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는 낚시에 정신이 팔여 있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결국 폴란드 청년은 쓸쓸하게 돌아가고 우리도 빈손으로 쓸쓸하게 히테로 올라와야 했다. 


그래도 오늘 저녁도 어제 잡은 고기들로 만든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적당히 말라서 꼬들꼬들하니 점점 맛있어진다. 


올레순드 캠핑장에 면한 바닷가 풍경


올레순드는 깨끗하고 깔끔한 인상의 도시이다. 시장 구경을 했는데 집에서 만든 햄이나 잼들을 가져와서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물가가 비싸서 선뜻 사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시내 가운데 있는 산 위로 418계단을 올라가면 올레순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는데 뭣 때문인지 폐쇄되어서 올라갈 수 없어서 아쉬웠다.


시내에 바다를 향해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여인의 동상이 인상적이다. 바다로 고기 잡으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아닐까 싶다. 


깔끔하고 조용한 느낌의 올레순드
여기도 소년 어부 상이 있다
카약을 즐기는 커플


이제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야 할 차례이다. 내일은 트롤퉁가로 가서 아침 일찍부터 10시간 가까이 트래킹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은 최대한 근처까지 이동해야 했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하루 사이에 이동하는 거리로는 가장 먼 거리가 아닌가 싶다. 


노르웨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못생긴 트롤 상
집에서 만든 과자를 파는 듯. 너무 비쌌다.
평화로운 올레순드 풍경


피요르드를 따라 이동하다가 페리도 여러 번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빨리 갈 수 없었다. 한 곳에서는 페리 목적지가 두 군데 연달아 이어진 곳도 있었다. 


보통 페리에 타면 순서대로 앞쪽부터 채우고 도착하면 순서대로 내리는데 목적지가 두 군데일 땐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정답은 첫 번째 목적지에서 모든 차들이 일단 다 내린 후 다시 타고 두 번째 목적지로 가는 것이었다. 


내리는 곳을 분류해서 다른 곳에 서있으면 되겠지만 이것저것 머리쓰기 귀찮아서 그냥 다시 내렸다 타는 느낌이다. 


공사 때문에 막혀도 아무도 짜증내지 않는다


피요르드를 따라서 한참 내려오다 보니 차들이 무슨 이유인지 긴 줄을 지어 멈추어 서있다. 정차한지 꽤 된 모양으로 사람들이 차에서 나와서 어슬렁대고 있었는데, 아마도 공사 중이어서 길을 막은 모양이다. 


우리 나라 같으면 차들 잘 안 다니는 밤 시간에 빨리 공사를 해치우는 경우가 많은데 유럽에서는 종종 이렇게 낮 시간에 도로를 막고 공사를 하곤 한다. 보통은 한쪽 차선만 막고 나머지 한 차선으로 차를 교대로 통행시키며 이동식 신호등을 사용해서 차선을 통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대부분 사람들이 신호를 잘 지키는 편이어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가끔씩은 이렇게 양방향을 모두 막고 공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짜증내는 사람이 없다.  


Likholefossen 풍경. 흔한 길가에 있는 폭포다


오늘의 목적지인 오다(Odda)를 향해 이동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잘 곳을 찾기로 했다. 가다가 보니 표지판에 어딘가 익숙한 지명이 눈에 띈다. 트빈데포센이라고? 잘 생각해보니 몇 일전에 들렀던 폭포이다. 거기에 캠핑장이 있었던 것이 생각 나서 묵기로 하고 찾아갔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잘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캠핑장에 텐트는 거의 없고 캐러반이나 히테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서둘러 저녁을 준비해서 생선 3마리만 남겨두고 전부 요리해먹고 나서 너무 추워서 늦은 시간에 어디서 들고 온지 모를 차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일정을 생각해서 일찍 잠들었지만 폭포 옆이라 그런지 습기도 많은 것 같고 폭포 소리도 시끄러워서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제 밤 늦게 마신 출처 불명의 차 때문인 거 같기도 한데 항상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잠을 못 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난 그래도 몇 시간이라도 잤는데 권셰프는 한잠도 못 잤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캠핑카나 히테에서 자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늘은 엄청난 강행군을 해야 하는 날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 기다리는 여인상. 기다리는 마음은 어디나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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