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봄꽃 Aug 21. 2018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책으로 만나는 세상, 그리고 나

요즘 새삼 느끼는 건데 나는 내면이 그리 건강하지가 않다. 


타인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예민하고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내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면서도 그들에게 그리 너그럽지는 않다. 작년까지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관계를 쌓고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지만 올해 들어서는 그나마도 냉담해졌다.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믿음도 버렸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두터운 벽을 치고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내게 돌아올 애정을 계산하며 관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내가 예전에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과 너무 닮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진심과 진정성을 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면서 애매모호한 언사로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계속해서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예민한 감정선과 비위를 맞추느라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녀는 자신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나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다가 관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릴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무언가 따지고 싶어도 그렇게 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게끔 관계의 구조를 만들었다.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1년 정도를 버티고 나서 자연스레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이따금 그녀 생각이 들면 절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직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세상과 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냉담한, 그러면서도 본인 스스로는 자신이 굉장히 따뜻하고 멋진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 옆에서 수그리고 살았던 것이 어떨 때는 너무 억울했다. 



몇 개월에 걸쳐 이제야 겨우 그녀와 이별했다 생각했는데, 요즘 또 다른 강적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이기 위해 서슴없이 타인을 깎아내린다.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그 외의 사람에게는 자신을 한없이 높인다. 자신의 커다란 욕심을 모든 사람이 다 아는데 본인은 그걸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 앞선 그녀와 공통점도 하나 있다. 본인은 스스로를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워낙 감정표현이 정직한 탓으로 이 사람과의 관계에 요 며칠 너무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했다. 설상가상 좁은 공간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만으로도 인격 수양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사람에 대한 회의감의 깊이를 더해준 사람이 있다. 늘 사랑을 이야기하고, 또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사는 것 같아 굉장히 신뢰했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내 모난 구석도 이해해주고 감싸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아픔을 내보일 때 내 모난 구석에 본인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느라 급급했다. 그리고 네가 지금 이렇게 힘들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은 다 네 잘못이라 말했다. 


그 말에 너무 충격받아서 이틀 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가족 외의 그 누구도 내 삶에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겉으로는 적당히 웃으며 누구하고 든 거리를 두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남편은 내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걱정했다. 나 스스로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냉담한 모습이 나를 지독히도 힘들게 했던 그녀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동네책방 숨'의 한 구석에서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만났다. 문체는 가벼우나 내용은 제법 묵직했다. 마치 작가가 내 속에 들어와 앉아 책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마다 내 마음을 찌르고 어르고 달래는 구절들이 가득했다.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이란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는 속이 다 후련했다. 그래, 그들은 그저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일뿐이구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이들에게 상처받지 않으면서 냉담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념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게 가능한 걸까? 이것은 여전히 내게 물음표로 남아있다. 


작가는 사회가 재단한 훌륭한 타인에 나를 맞추어 살지 말고, 나를 존중하고 나다움을 찾아 그 모습으로 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다. 글도 좋았지만, 귀엽고 재미있는 그림 속 농도 진한 한 마디 말이 답답한 속을 뻥뻥 뚫어주었다. 


이 책은 냉담한 세상에서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고, 냉담한 누군가로 변해가고 싶지도 않아 몸부림쳤던 작가의 기록이다. 그 몸부림을 나도 이제 막 시작했다. 세상과 타인에게, 그리고 가장 먼저는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책을 읽을 것이다. 책방 여행을 떠날 것이다. 여행에서 만난 책으로 다시 세상과 사람들과 나를 만날 것이다. 부디 이 몸부림의 끝에서 냉담했던 그 모든 관계들에 뜨거운 화해가 일어나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