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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Feb 24. 2016

누가 이 영화를 소수의견이라 말하나?

-김성제 감독의 <소수의견> (2015)

  실화를 소재로 하다   

 

   실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많은 경우 내러티브의 전개 과정에서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좌초하는 경우가 많다. 기능적인 인물과 대사들로 가득한 무미건조한 영화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클리셰에 가까운 내러티브를 마주하게 되면 저절로 비싼 돈을 내고 영화를 봐야 하는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결국 영화가 무엇을 소재로 하고, 실화냐 아니면 허구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개체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느냐라는 것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법정드라마이자 성장드라마  


   영화 <소수의견>은 법정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윤진원이라는 변호사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윤진원은 많은 수임료를 받는 성공한 변호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박재호와의 만남을 통해서 뉴타운재개발을 둘러싼 비리를 알게 되면서 진정한 법조인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며 사회의 정의를 구현한다는 법정드라마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윤진원이라는 인물의 성장도 함께 다룸으로써 관객들이 그에게 정서적으로 밀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건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면서 윤진원이 변호사로 성장하는 만큼 관객들도 그의 심리 변화를 따라서 사건을 접하게 된다. 윤진원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회의 부정이나 부조리 앞에서 좌절할 때  관객들도 좌절하거나 성장한다.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 
  
   김성제 감독의 영화 <소수의견>은 손아람 작가의 원작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영상화한 작품으로 2009월 1월 19일에 있었던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뉴타운재개발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소년 박신우와 의경 김희택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감추고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지방대 출신의 국선변호사 윤진원은 죽은 박신우의 아버지 박재호의 변론을 맡는다. 박재호는 자신이 무죄이며 경찰을 공격했던 것은 아들을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한다. 윤진원은 그의 말을 믿지 않지만 얼마 후에 일간지 사회부 기자 공수경이 그를 찾아와 사건의 정황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와 언론에서 밝힌 모든 말들의 진위가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윤진원은 보다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 검찰에 사건송치자료 열람을 요청하지만 거부당하자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에 확신을 얻고 본격적으로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하게 된다. 
   

   국가와 법 그리고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문제 삼다  


   영화 <소수의견>은 국가라는 시스템에 관해 질문한다. 두 청년이 죽었다. 그렇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언론은 김희택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무의미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기능을 한다. 박재호와 김희택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프레임을 고정화시킴으로써 박재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언론에 의해 국민들의 관심이 뉴타운재개발과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흐려진다. 
 

  우리 사회는 죽음의 맥락과 그 내부에 감춰진 진실보다 죽음 그 자체가 주는 충격에만 반응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부정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다. 윤진원이 박재호의 변론을 맡았음에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알려고 하는 자에게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이 본 것과 경험한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것과 경험한 것이 대타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어찌될까? 고민해볼 문제이다. 

 


    또한 법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영화 <소수의견>은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변호사 윤진원이 검사에게 사건송치자료 열람을 요청했지만 검사 고유의 권한으로 거절하는 장면,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거짓으로 꾸며내는 장면, 윤진원을 변호사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검찰청장이 압박하는 장면, 공권력을 사용해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물을 강제로 빼앗아오고 훼손하는 과정은 국가의 공권력과 사법체계가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법이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통치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작동할 때 법은 기성 권력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치가 된다. 문제는 사회의 부조리가 불법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이다.    


  윤리적 질문을 던지다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난 이후 떠오르는 생각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신우와 김희택이라는 두 청년이 죽었다는 팩트만 있을 뿐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사실상 어렵다. 박신우는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경찰을 공격했고, 김희택은 자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박신우를 철모로 살해한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박재호는 김희택을 쇠파이프로 가격해 살해한다. 서로가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휘두른 폭력에 박신우와 김희택이라는 두 청년이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가? 
 

   박신우가 잘못인가? 아니면 김희택의 잘못인가? 그리고 박재호의 살인은 정당방위인가? 영화 <소수의견>은 우리에게 이 사건을 공정하게 판결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각각의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가 잘못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자면 선악을 따지기 어렵다. 이처럼 영화 <소수의견>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을 피하고 있다. 
 
 


    결국 영화에서 박재호는 징역 삼 년을 선고받는다. 그는 법정을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김희택의 아버지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박재호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모두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남겨진다. 그렇다면 두 아버지에게 비극적인 아들의 죽음을 안겨준 범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게 핵심이다. 하지만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재개발 현장을 보여줄 뿐이다. 즉 영화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려왔지만 여전히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윤진원과 비리 검사는 다시 재회한다. 검사는 윤진원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말한다. “도대체 넌 한 것이 뭐냐?” 그의 말이 뼈아프다. 변호사 윤진원은 결국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실패했다. 정당방위를 주장한 박재호는 유죄를 선고 받았고, 뉴타운재개발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윤진원은 변호사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검사의 “도대체 넌 한 것이 뭐냐?”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질문 하나, 세상은 정녕 바뀐 것이 없는 것일까? 변호사 윤진원이 했던 일들은 무의미한 것인가. 감독은 허무주의적 물음에 답한다. 윤진원이 명함을 쳐다보고 웃더니 바닥에 버리고 법원으로 들어간다.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은 바닥에 버리면 그 뿐. 언젠가 철학자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너의 길을 가라”라고. 그렇다. 옳다고 믿는다면 너의 길을 가면 그뿐, 누가 뭐라고 말한들 무슨 상관이랴.    
    
  소수의견은 결코 소수의 의견이 아니다  


  영화 <소수의견>은 소수의견인가? 그런가? 우리는 누구나 다수성과 소수성을 함께 지니고 있지 않은가? 성차, 계급, 인종 등등 상황과 조건이 바뀌면 언제든지 다수자에서 소수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우리는 누구나 언제 소수자에 속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소수의견이 말하고 있는 그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벌어진 불합리한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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