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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n 14. 2021

미아(迷兒)의 세계

-김광빈 감독의 영화 <클로젯> (2020)

  누구나 한번쯤 집에서 숨바꼭질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집에서 숨기 좋은 곳이 바로 벽장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숨으면 대개 부모들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몰래 벽장을 열고 나오기까지 모르는 척한다. 왜냐하면 쉽게 숨어있는 장소를 찾으면 아이가 곧 실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벽장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이 작품에서 벽장은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으나 무관심한 세계를 상징한다.      


  예컨대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누구나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 <클로젯>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고발하고 있다. 과연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 나아가 한 아이의 부모라는 이유로 나의 자식의 운명을 결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 인격체로서 아이들을 대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고 있나? 영화는 IMF로 인해 막대한 빚을 지고 자살을 시도하는 부모의 모습이 등장하고 벽장 속의 원귀(寃鬼)인 명진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희생당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주인공 ‘상원’과 그의 딸 ‘이나’가 차를 타고 한적한 별장으로 이사를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상실감에 젖어있는 이나의 마음은 모르고 상원은 자기 업무에만 매진한다. 그러던 중 상원은 갑자기 차를 세우는데 그 이유는 도로의 한 가운데 까마귀에 둘러싸인 죽은 새끼 노루를 어미 노루가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서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영화의 도입은 상원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며 이 작품의 방향성을 관객들에게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별장에 도착한 상원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날아오르고 있는 까마귀 떼를 발견하는데 마침 새 한 마리가 그가 바로 보고 있던 창으로 날아든다. 창이 깨지며 상원은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과거 교통사고 당시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사고를 당해 죽어가던 아내는 이나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 장면은 평소 아버지인 상원이 망각하고 있는 그의 의무와 책임감을 다시 일깨워준다.     


  이 장면은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 (1963)를 연상시킨다. 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한 여인이 배를 타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가는데 갑자기 날아든 새 한 마리가 그녀를 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젝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 새는 여자 주인공에 의해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분리시키려는 시도를 거부하는 혹은 지연시키려는 모성적 초자아가 새의 형상으로 구현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라는 존재가 초자아의 구현물로 무엇인가를 금지시키거나 주체에게 도덕적 책임을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상원을 공격하는 새는 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죽은 아내의 초자아가 상원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것 혹은 상원에게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 상원은 건축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딸 이나를 치유하거나 혹은 자신과 분리되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벽장 속에 숨은 원혼인 명진이라는 존재에 의해 경고를 받는다.


  결국 이 작품은 아직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부재한 상원이라는 인물이 명진이라는 원귀로부터 잃어버린 딸을 되찾음으로써 아버지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즉,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라는 보편적인 생각이 얼마나 실제의 현실에서 허구적인지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로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아이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실제 우리 사회에는 실종되었으나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많은 미아들이 존재하고, 부모의 폭력과 무관심으로 잔혹하게 살해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이 혼란한 시대에 영화는 어른으로서 혹은 부모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한다. 공포영화의 형식을 통해 이 사회의 폭력성과 무관심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 상원은 벽장 속으로 사라진 딸 이나를 되찾았으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주변에 무참히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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