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우일 Nov 15. 2022

총구는 누구를 향하는가

- 이일형 감독의 영화 <리멤버> (2022)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고 하는 문제는 현재의 삶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함께 지속하고 그것을 마주하는 과정이 바로 미래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점으로 겹쳐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현재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곧 반민특위가 구성되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처럼 친일 인사들은 숙청되지 못했다. 해방 정국의 상황이 좌익과 우익 사이의 정치적 대결 국면으로 치닫게 되면서 다시 이승만 정권에 의해 과거 일제의 제국주의에 참여했던 친일 인사들이 남한 사회에서 중용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해 정치적 윤리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로써 남한 사회에서 반민족주의자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이 다시 남한 사회의 기득권으로 자리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는 반복되어왔다.


  그렇게 어느덧 20세기를 지나서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적 기억은 정치 ․ 윤리적으로 청산되지 못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일본은 과거의 역사적 잘못을 부정하고 있으며, 한국의 정치는 북한이라는 현실의 주적을 가리키며 미래를 위해 과거는 묻어두라고 강요한다. 그럼 이제 친일의 역사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소환되어서는 안 되는 망령의 기억인가?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는 자신의 저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1995)라는 책에서 프로이트의 유명한 개념 억압된 것의 귀환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즉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것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언제가 어떠한 유령의 방식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령의 형태로 우리의 신체와 무의식을 파고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는 것이다. 바로 영화 속에서 수많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형상들 그리고 유령들은 이러한 정치 사회적으로 억압된 것들의 무의식적 표상이다.


  이런 점에서 이일형 감독의 영화 <리멤버>는 바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억압해오고 있는 친일 협력과 그것의 청산이라는 억압된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작품이다. 과거 <리멤버> 말고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제작된 바 있다. 바로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에 대한 정치적 복수를 염석진이라는 친일 인사를 숙청함으로써 관객들의 무의식적 요구를 해소했다면, 김지운의 <밀정>은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좌익 독립운동가들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스크린으로 소환해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영화 <리멤버>는 앞의 작품들과 그 결이 다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가 아닌 일제가 패망한 이후의 한국 사회를 살아온 인물의 사후적 삶이 문제가 된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만행으로 인해 몰락한 집안의 자제인 장필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한 명씩 친일 인사들을 척살할 때마다 그들의 악행이 다시 스크린 속으로 유령처럼 되돌아온다.


  장필주가 뇌종양으로 인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 것은 망각되고 있는 과거의 역사적 기억을 암시하는 알레고리이며, 그의 복수가 성공할 때마다 스크린을 채우는 일제강점기 친일 인사들의 만행은 관객의 눈앞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로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있는 기억은 사회에서 망각을 강요하지만 청산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우리 사회로 되돌아오는 억압된 역사적 무의식이다.

 

  이 작품의 장르는 추적 복수극 정도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매력은 평생을 계획한 복수와 그 계획을 실행하는 장필주의 고군분투(孤軍奮鬪)이다. 철저한 계획들이 예상치 못한 이유로 실패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기지(機智)를 발휘하는 장필주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떠나서 장르적 쾌감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들이 손쉽게 관객들의 민족의식이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작품 자체가 주는 장르적 재미를 작품 속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영화에서 장팔주가 자신의 복수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뛰어넘을 때마다 그의 철저한 준비성에 놀라며 그의 복수를 응원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복수라는 요소만큼 인물의 행위와 그 동기를 충분히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소재도 없다. 복수라는 요소는 관객들이 이야기를 집중하게 하는 심리적 동력을 제공한다. 과연 그의 복수는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의 복수는 성공했다고 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자신의 바람대로 과거의 친일 인사들을 척살하고 만주에서 만주군으로 부역했던 자가 자신마저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장필주의 모습은 역사라는 신 앞에서 서 있는 한 윤리적 개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영화 <리멤버>는 숙청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기성세대들의 윤리에 일침을 가한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문제를 장필주와 김치덕이라는 두 인물의 관점에서 서로 토론하는 것처럼 교차편집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삶을 살아온 장필주와 일제강점기는 생존 논리가 우선하는 시기였다고 주장하는 김치덕의 교차하는 대화를 통해 역사의 아이러니함, 청산되지 못한 친일 문제와 그것을 바로잡을 용기 없는 현실 사회를 비판한다.


  왜 항상 과거는 미래라는 시간을 위해 망각되어야 하고 부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작품 속에 노골적으로 삽입된 민족적 이미지들이 불편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윤리적 책임을 진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괜찮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친일이라는 역사적 문제를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 그리고 화해의 문제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를 바라보는 시대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