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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Nov 22. 2022

식민주의 비판과 영웅의 탄생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영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 (2022)

  영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맥락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째, 와칸다 국왕이자 오라버니 티찰라의 죽음에 대한 애도로서 슈리의 모험 둘째,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셋째, 가상의 물질 비브라늄을 둘러싼 서구 열강들의 패권주의로 요약된다.


  영화는 와칸다 왕국의 공주 슈리의 관점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오라버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는 충분히 티찰라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와칸다 왕국의 국왕 라몬다는 티찰라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슈리는 죄책감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는 슈리가 애도를 끝내고 블랙 팬서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와칸다 왕국의 위기를 불러온다. 슈리가 강력한 적의 침략으로부터 와칸다 왕국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티찰라의 의지를 이어받는 순간 그녀의 애도는 비로소 끝나게 되는 것이다. 영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에서 영웅의 죽음과 그의 유지를 잇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은 고대 전설 속의 무수한 영웅담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영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통찰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네이머는 자신의 왕국 탈로칸의 군주이며, 탈로칸 왕국의 백성을 누구보다 아끼는 영웅이기도 하다. 그가 와칸다를 침공하게 된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 전쟁을 벌이기 이전에 먼저 와칸다와 동맹을 맺어 우군을 얻으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네이머가 블랙 팬서에게 패배하면서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내적으로 굴하지 않고 훗날 와칸다와 탈로칸은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고 예언한다. 왜냐하면 와칸다와 탈로칸이 지닌 비브라늄을 빼앗기 위해 서구 열강들은 그들의 왕국을 침략할 것이기 때문이다. 와칸다와 탈로칸은 전통 생활양식과 자신들의 문명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비브라늄이라는 자원을 소유한 이상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서구 열강들의 식민주의적 욕망을 UN 사무국 회의 시퀀스를 통해 고발한다. 블랙 팬서라는 와칸다 왕국의 수호자가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와칸다 보호시설에 숨겨진 비브라늄을 강탈하기 위해 각국의 전투조가 침투하는 장면은 상대국 앞에서 평화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는 서구 열강들의 위선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에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미국은 와칸다의 분열을 획책하고 동시에 그들을 침공할 명분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블랙 팬서> 시리즈는 국제 분쟁의 성격을 지닌 갈등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비브라늄이라는 자원을 둘러싼 서구 열강들의 개입과 전쟁이라는 서사는 비록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가상이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정치적 문제라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이 작품은 새로운 블랙 팬서의 탄생을 다루는 히어로물이지만, 현실적으로 국제 정치 문제를 서구 유럽의 식민주의 정책의 연장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을 지닌다. 특히 영화에서 네이머가 처음 고향에 돌아와 목격한 사건이 고향 원주민을 노예로 학대하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모습이라는 점은 이 작품에 내재한 정치적 관점을 심화한다. 


  과연 블랙 팬서와 네이머는 서구 열강들의 식민주의 욕망에 맞서 와칸다와 탈로칸을 지켜내고 자신들의 생활양식과 문명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영화는 두 국가를 초강대국으로 그리고 그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전망은 밝은 편이다. 하지만 영화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에 등장하는 와칸다와 탈로칸과 달리 우리의 실제 삶은 국제 분쟁과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치적 일상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롤링스톤코리아>에 게재 예정된 글입니다. 무단 공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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