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태 감독의 영화 <대외비> (2023)
영화 <대외비>는 정치극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한 인간의 인정투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정치극이었다면 여당의 버려진 국회의원 후보 해웅이 자신을 공천 탈락시켰던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목숨을 건 투쟁에서 승리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악의 처단 따위는 없다. 끝없는 거래를 통한 타협이 있을 뿐이다.
이 작품과 비슷한 결을 지닌 작품으로는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이 있다. 영화 <내부자들>은 조직폭력배 안상구와 정의로운 검사 우장훈이 손을 잡고 부패한 정치 · 경제 · 언론의 카르텔을 무너뜨린다는 내용을 다룬다. 이 작품에 대중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두 주인공이 부패한 현실의 카르텔을 무너뜨린다는 서사가 주는 심리적 만족에 있다. 반면 영화 <대외비>는 <내부자들>의 세계관에 비해 더 냉소적이다. <내부자들>이 부패한 현실을 가로질러서 관객들이 바라는 복수극을 완성한다면, <대외비>는 부패한 현실을 가로질러 문제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서 두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그 운동의 방향성이 다르다.
영화는 초반 부산의 정치와 경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권순태에게 해웅은 버려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왜 권순태가 유력한 국회의원 후보인 해웅을 버렸는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버려진 해웅은 복수를 위해 사채업자 김필도와 손을 잡고 권순태에게 대항해 간다. 해웅은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당선되면 해운대 사업권을 김필도 무리에게 나눠주기로 약속하고 부족한 선거비 조달을 위해 정한모라는 사채업자까지 끌어들인다. 하지만 선거에서 해웅이 낙선하면서 모든 계획은 틀어진다. 해웅의 낙선으로 자금에 손해를 본 정한모가 대웅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해웅은 김필도와 함께 정한모를 살해한다.
이처럼 영화 <대외비>의 초점은 순수했던 정치인 해웅이 권순태와 싸우는 과정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게 되는 과정에 있다. 해웅이 점차 권모술수에 능해지고, 살인까지 묵인하자 김필도가 해웅에게 이제야 좀 정치인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에 정한모가 살해되는 과정에서 계단에 앉아 고뇌하던 해웅이 어떤 결심을 했는지 계단에서 일어서는 장면은 그의 심리적 변화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권순태의 권모술수를 피해 위기를 넘기며 대외비 문서를 입수한 해웅이 권순태를 협박하지만, 결말에 권순태가 정한모 사장의 살해를 해웅이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히겠다고 맞불을 놓으면서 둘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시 손을 잡는 것으로 끝난다. 해웅과 대결하던 권순태가 정치를 하려면 악마와 거래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정치의 속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바로 정치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두고 하는 거래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영화 <대외비>는 정치 드라마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상실한 주인공의 인정투쟁 드라마라고 보아야 한다. 이 작품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들(해웅)이 아버지(권순태)에게 진정한 자식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권순태의 적자가 된 해웅은 드디어 자신이 꿈에 그리던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청와대를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결말에 한 국회의원이 “구라를 너무 많이 쳐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그것까지 우리가 신경써야 하느냐.”는 대답과 함께 창밖으로 보이는 청와대는 한국 정치란 근본적으로 쇼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