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삶의 표면 아래 숨은 불안

-메리 헤론 감독의 <아메리칸 사이코>(2000)

by 심우일

메리 헤론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는 한 남자의 아침으로 시작한다. 패트릭 베이트먼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샤워를 마친 뒤 피부 관리를 하고,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채 회사로 향한다. 그의 아파트는 깔끔하고 실용적인 가구들로 정돈돼 있고, 삶의 동선은 군더더기 없이 정교하다.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고, 저녁이면 동료들과 어울려 세련된 취향과 성공한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면 누구나 선망할 도시 엘리트의 일상이다.


그러나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완벽한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이미 새겨져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패트릭은 같은 회사 동료인 폴 알렌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그의 사무실은 번듯하지만 정작 그 안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공허하다. 전화벨은 좀처럼 울리지 않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면서도 그는 고립되어 있다.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이는 남자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점에서 영화의 불안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 속에서 패트릭은 이유 없이 노숙자를 죽이고, 거리나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을 집으로 데려와 잔혹하게 살해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은 그가 저질렀다고 믿었던 살인이 실제 사건이 아니라 망상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거리를 방황하며 경찰에게 쫓기던 패트릭은 변호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살인을 자백하지만, 다음 날에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같이 돌아간다.


이때 <아메리칸 사이코>의 핵심은 살인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라, 패트릭이라는 인물이 왜 그런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는가에 있음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패트릭의 내면을 움직이는 가장 큰 감정은 열등감이다. 패트릭은 폴 알렌을 의식하고, 그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불안은 특정 인물 하나가 사라진다고 끝나지 않는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루이스 카루더스가 자신과 같은 직급으로 승진하자, 그는 또다시 위기감을 느낀다. 비교의 대상만 바뀔 뿐, 불안의 구조는 그대로 반복된다. 결국 패트릭을 병들게 하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견주게 만드는 경쟁의 질서다.


그래서 그의 살인이 단순한 범죄 충동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기는 대상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무너진 자존감을 보상받으려 한다. 노숙자와 여성들이 바로 그 대상들이다. 또한 성관계조차 교감의 행위가 아니라 지배와 과시의 수단으로 바뀌어 있다.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한 도구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 모습을 통해 패트릭이 얼마나 철저히 왜곡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이러한 패트릭의 불안을 과장된 공포의 형식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패트릭을 둘러싼 세계는 지나칠 만큼 깨끗하고 세련되어 있다. 화려한 도시의 빌딩 숲, 눈부신 조명, 무균실처럼 정돈된 실내 공간은 현대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이상적 삶의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패트릭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근사한 말들을 늘어놓지만, 그의 삶은 열등감과 공허, 불안과 환락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순이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는 결국 한 개인의 광기를 다룬 영화이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패트릭 베이트먼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극단적 인물이다. 메리 헤론은 그를 통해 성공, 취향, 소비, 경쟁으로 포장된 현대 도시인의 삶이 얼마나 쉽게 불안과 공허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에게 남는 것은 연쇄살인마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역시 비슷한 불안의 구조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 이 글은 <서울경제TV>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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