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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Feb 24. 2016

문화적 관습의 코드화, '스타워즈'

- J . J 에이브럼스 감독의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2015)

   최근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2015)가 개봉했다. <스타워즈>는 총9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로 이번에 개봉한 작품은 일곱 번째 에피소드에 해당한다. 익히 알려진 바 있지만 1977년 조지 루카스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던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은 시간적 순서상 네 번째 에피소드에 해당한다. 당시 영화 특수효과와 제작여건의 어려움으로 인해 에피소드들은 순차적으로 제작되지 못했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위험’은 1999년에 이르러서야 제작되었다. 1977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스타워즈>의 인기는 대단하다. 특히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은 역대 할리우드 흥행 순위 3위에 랭크되는 작품으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 시장에 대형 기획의 작품들이 제작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특수효과 부문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처럼 <스타워즈>는 미국 내에서 높은 인기와 더불어 영화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시리즈이다.   

   <스타워즈>는 SF장르의 문법을 모두 보여준다. 미래세계의 모습(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우주적 공간의 재현, 외계인과의 조우 등등 SF영화 장르의 관습을 만들고 활용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포스의 양면성으로 상징되는 선과 악의 대립과 조화)을 창조해왔다. 일반적으로 SF장르의 영화는 상상했던 것이 눈앞에서 재현될 때의 스펙터클이 주는 시각적 쾌감을 향유하는 것에 기초한다. 그래서 SF영화가 제공하는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때로 낯선 세계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즉 SF영화 장르의 성공은 낯선 것들을 어떻게 보편적으로 코드화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맥락에서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유독 흥행에 실패했던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다. 끊임없이 별과 별 사이를 이주하며, 한 술집에서 재즈음악을 듣는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향락을 소비하고,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인물들의 등장은 분명 과거 한국의 현실에서 낯선 풍경이었다. 반면 미국에서 지속되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흥행은 자신들의 문화적 관습 내에서 충분히 영화적 맥락이 코드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양국의 대조적인 반응을 통해 대중예술의 소비에 있어서 문화적 관습의 번역이란 문제가 개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컨대 <스타워즈>는 우주선을 타고 모험을 떠나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동료들의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들은 낯선 행성으로 이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정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별들을 향해 끊임없는 이동하며 모험을 즐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피로감은 사라져있다. 이것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이에 대한 단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 과정을 떠올려보면 찾을 수 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미국의 역사는 개척과 이주의 과정 그 자체이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와 황무지를 개척하고, 도시를 건설하며, 동시에 철도를 잇는 과정이 미국의 역사라는 것을 고려하면, <스타워즈>에서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별로 이동하고 모험을 즐기는 모습은 미국적인 개척과 이주의 관념이 은유적으로 코드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스타워즈>의 오프닝은 항상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로 시작되는데, 한국식으로 코드 전환을 하면 “옛날 옛적의 어느 마을에” 정도의 의미이다. 이러한 오프닝은 <스타워즈>가 일종의 SF영화 장르의 문법을 활용한 미국적인 신화 혹은 동화적 판타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인들에게 영화 <스타워즈>는 떠났던 영웅이 귀환하여 사라진 공화국을 재건한다는 서사적 매혹을 불러일으키며 일종의 건국 신화적 판타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미국사회 내부의 유색 인종이나 독특한 문화적 관습을 지닌 이주민에 대한 알레고리로 디코딩(decoding)해볼 수 있다. <스타워즈>에서 재현되는 외계인들은 사채업자이거나 부를 탐하며 재즈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향락을 즐기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외계인들은 그로테스크한 외모를 지니고 있거나 우스꽝스럽고 수다스러우며 무엇보다 언어적 제약을 지닌다. 외계인들이 주로 자신들을 주장하지 못하는 봉인된 존재들임에 반해 영화 속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포스에 의해 ‘선택된 자’이며 고결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구원자로 묘사된다. 이러한 설정은 악의 세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의 재림을 상징화하는 신학적 코드로 읽어낼 수도 있지만 외계인으로 묘사되는 이방인들을 타자화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처럼 한국인들에게 <스타워즈>는 낯선 SF영화일 뿐이지만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대변하는 작품으로 자리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대중문화가 그 나라의 역사나 현실과 연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양태가 고정적이거나 정태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복잡한 정치 ․경제 ․ 사회적 원인들에 의해 유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징후를 <스타워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작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전통적인 <스타워즈> 시리즈와 달리 뚜렷한 세계관의 변화와 진전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루크 스카이워커로 대변되는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모험의 세계를 다루었다면, 이번 에피소드는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우주의 풍경을 보여준다. 레이라는 여성이 우주의 구원자로 제시되며, 그녀의 조력자로 핀이라는 흑인 남성이 등장한다. 전편의 히어로이자 루크의 조력자 한 솔로는 죽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한 솔로와 레아 공주의 아들 카일로 렌은 제2의 다스베이더가 되어 악의 세력에 협력한다. 이러한 관점의 뚜렷한 변화는 문화적 텍스트라는 것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당대의 현실 및 문화적 지형도와 연루되어 생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스타워즈>라는 작품에 나타나는 관점들의 이동과 변화를 통해 영화적 이미지 뒤에 숨겨진 역사라는 관념의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은 2016년 2월 4일 목요일, LH사보 <인문학 칵테일>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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