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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Feb 25. 2016

KBS드라마 <정도전>을 말하다

   최근 TV 드라마 〈정도전〉(2014)이 종영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정도전>은 정도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공동체 내부의 대의에 관해 지속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TV는 관객들의 시청권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 또한 IPTV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굳이 본방송 시간에 드라마를 시청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방송가에서는 시청률 20%가 넘으면 속칭 ‘대박’ 드라마라고 말한다. 드라마 <정도전>은 최근까지 18.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20%에 육박하고 있다.
   KBS에서 드라마 <정도전>을 제작하기 전에 방영했던 다양한 대하드라마들이 실패한 이유는 영웅적 개인의 일대기라는 상투성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웅이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왕이 된다는 이야기의 상투성은 손쉬운 이야기의 전개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가 취약하고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여 그들의 운명이 예견된다는 점에서 인물들의 입체성이 떨어진다. 이것은 복잡한 삶의 현장에 놓인 시청자들의 감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보이는 사건도 속내를 계산하고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KBS 대하사극들이 추구해온 작품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영웅전기에 해당하고 현실의 삶과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 MBC에서 제작된 일련의 역사드라마들은 다른 방식의 드라마 문법을 보여준다. 에피소드식 사건 전개와 정사에서 소외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당대를 조명하며 단조로운 역사드라마의 문법을 탈피하려 시도한다. 바로 MBC 드라마 <대장금>(2003) , <이산>(2007), <동이>(2010), <마의>(2012) 등의 작품들의 특징이다. 수라간, 도화서, 혜민서, 마방 등의 새로운 공간에 천민 혹은 중인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하고,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간적인 시기와 질투 속에서 미시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며 위기를 극복한 주인공이 그 시대의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한다. 일상사에 가까운 이야기이기에 쉽게 시청자들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지만 앞서의 작품들은 시대적 현실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악인들이 판치는 불합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소신과 정의를 지키는 개인이 성공한다는 소박한 가치로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려 할 뿐이다. 이러한 정도로 현대인들의 복잡한 삶을 대변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워 보인다.

  드라마 <정도전>은 최근까지 방영되었던 기존의 역사드라마들과 상당히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속칭 퓨전사극이라고 불리는 역사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고 적당히 무협과 로맨스를 뒤섞어놓는다. 아니면 MBC의 <해를 품은 달>의 경우처럼 실제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시공간을 조선사에 끼워 넣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드라마 <정도전>은 앞서의 역사드라마들과 달리 우선 1차 자료에 충실하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거스르지 않는다. 대신 당시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대의와 대립을 세밀하게 조명한다. 드라마 <정도전>은 등장인물들을 손쉽게 악인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인물들의 주장과 행위에 설득력을 더하려 노력한다.

   드라마 초반 정도전의 정적으로 등장하는 이인임이라는 인물조차 권력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과격한 독단을 내세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도당 내부에서의 정치적 절차와 협의를 통해서 자신의 권력 욕망을 관철해나간다. 이인임은 개인적 권력욕을 지니고 있지만 고려에 대한 충심은 진심이다. 이처럼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의 정적인 이인임이라는 인물조차도 손쉽게 악인이라고 낙인찍을 수 없는 입체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최영이나 정몽주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은 한때 정도전과 이성계의 정치적 우군이었지만 당시 고려를 둘러싼 내외의 정치적 정세와 지형도의 변화에 따라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서로의 목숨을 취해야 하는 정적이 되는 과정은 정치의 역동성과 복잡성 그리고 고단함을 암시한다.

   또한 드라마 <정도전>은 기존의 KBS 사극과 달리 상투적인 영웅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드라마 <정도전> 속의 이성계는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많다. 백전불패의 명민한 절대적인 영웅의 모습보다는 가끔은 황당할 정도로 미숙하고 어리숙하다. 정도전이나 정몽주의 도움이 없이는 정치적으로 손해만 보는 인물이다. 그는 백성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우직한 신념하나만 자신의 대의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KBS 대하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기존의 영웅들과 그 자질이 다르다. 주인공 정도전은 민본주의를 대의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방법과 실천에 있어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이인임을 닮아간다. 점차 자신의 동료들에게 신임을 잃으며 권모술수를 부리는 책사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정도전의 모습은 시청자로 하여금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다음으로 MBC 역사드라마들이 미시적인 에피소드적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드라마 <정도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고려의 내부와 외부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보다 총체적이다. 단순히 영웅적 주인공의 능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일시적 부정이 아니라 사회의 내부를 병들게 하고 있는 고려 사회의 구조적 폐단과 명나라에 의해 원나라가 패퇴하면서 벌어지는 외부의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필연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드라마 <정도전> 속의 인물들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하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우군이었던 인물들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손쉽게 한 개인을 비난할 수 없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한 인물을 둘러싼 복잡한 내외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의 연결고리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정도전>이 지금 던져주고 있는 시사적인 의미는 사라진 대의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영웅들에 대한 찬양도 고단한 일상에 대한 위로도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드라마의 본질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당대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드라마 <정도전>은 이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부정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위로만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은 봉합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논리야 말로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전형적인 환상이 아닐까?

   환상은 물고기가 노니는 수조와 같다. 투명한 수조 속의 물고기는 자신이 그 안에 갇혀있지 않다는 환상을 지니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물고기의 믿음과 상관없이 삶을 규정하는 절대적 근거는 바로 그 투명한 수조라는 점이다. 누구나 브라운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거짓으로 봉합된 현실의 가면을 뚫고 그 실재를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드라마 <정도전>은 바로 우리 사회의 알레고리이며 현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가면이며 계기이다.

   드라마 <정도전>은 문제를 봉합하지 않고 열어둔다.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판단하고 생각하는 일은 시청자의 몫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실천을 통해 대중들의 동의를 얻어낼 때 대의라고 부른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대의를 잃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를 생산하고 상상하는 힘을 잃었다. 드라마 <정도전>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와 질서를 창조하려는 인물들의 대립과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우리 사회에 대의가 상실되어 있음을 역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바로 드라마 <정도전>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는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드라마 <정도전>이 내세우는 가장 기초적인 국가이념인 민본주의가 과거 조선의 고리타분한 정치적 신념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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