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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Apr 29. 2018

우연과 사건의 모나드 우주

-시미즈 준지 감독의  <마징가 Z :  인피니티> (2018)

애니메이션 <마징가 Z : 인피니티>는 겉으로 보기에 ‘마징가 Z’와 ‘닥터 헬’의 전투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잠재적 가능 세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예컨대 우리가 신이 되어서 우주의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면 현재 세계의 질서는 긍정될 수 있는지 물어보자. 난감한 질문이다. 분명 세계는 완벽하지 않지만 때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질문에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신의 최선에 의해 현실 세계는 만들어졌다고 답하였다. 라이프니츠의 대답에는 현실 세계에 대한 긍정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는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이성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최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 속에서 고통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닥터 헬의 진단에 의하면 복잡하고 다양한 존재자들이 타인에게 자기주장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일화된 전체의 목소리로 통합되지 못하는 분열된 목소리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닥터 헬의 진단은 현실 민주주의 사회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을 지니지만 분열과 갈등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다양하고 복잡한 가치를 지닌 존재자들을 하나의 절대적 원리로 동일화할 수 있다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닥터 헬은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 세상을 동일성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그의 현실 세계에 대한 진단은 동의하지만 해결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존재의 고유성은 어디에서 찾아져야 하는 것인지 대답할 수가 없다. 인간이 지닌 존재의 고유성은 동일성의 재인이 아니라 타자의 부정성 속에서 찾아진다. 나와 타자가 다르다는 부정성 속에서 내 존재의 고유성이라는 범주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닥터 헬이 ‘인피니티’라는 무기를 사용해 자신의 이상 세계를 건설하고자 할 때 마징가 Z는 이를 막고자 한다. 닥터 헬이 모든 시공간을 태초의 세계로 무화시키는 ‘인피니티’를 작동시킬 때 무수한 모나드들로 가득한 우주적 평면이 등장한다.


  만약 세계를 무한하게 쪼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최종적으로 세계는 쪼그라들다가 마지막에는 보이지 않는 무한의 분열 운동을 하고 있는 단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이때 분할되어 남겨진 단자들을 우리는 모나드라고 하는데 각각의 모나드는 다른 보편의 원리로 동일화할 수 없는 고유의 존재성을 지닌다.

  즉 인피니티가 펼쳐내는 태초의 우주적 공간의 모습은 무수한 모나드들이 각각의 차이를 지니고 존재하는 차이의 세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 세계의 질서란 각각의 모나드들이 우연적으로 뒤섞인 결과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모나드들이 펼쳐진 평면에서는 어떠한 필연도 없이 우연적인 사건들이 잠재되어 있다가 어떠한 계기에 의해 현실화되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현실화되는 사건들을 지성을 통해 하나의 인과적 질서로 이해하고 규정짓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닥터 헬의 이상은 애초에 실현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 또한 인피니티에 의하면 하나의 우연적인 가능세계일 뿐이지 필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 애니메이션 <마징가 Z : 인피니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존재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개체가 일종의 모나드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존재의 고유성을 지닌다면, 각각의 모나드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현실 세계는 최종적이고 변화 불가능한 공간이 아닐 것이다. 라이프니츠 말처럼 최선의 현재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세계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기성의 획일화된 질서를 강요하는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존재의 고유성을 창조해야 하며, 자기 내재성에 대한 성찰 자체가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특이성으로 자리해야 한다. 동일화되고 누적적인 반복만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탈주하고 차이 그 자체를 생산해야 한다. 끊임없는 유목과 창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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