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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n 03. 2018

푸른 그리움의 빛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가족’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은 대부분 가족 내부에 일어난 소소한 일상에 대한 관찰을 특징으로 한다. 대상에 대한 카메라의 거리두기와 의미 없는 시퀀스들의 삽입을 통해 시퀀스 사이에 인과적 연결 대신에 여백을 도입한다. 어쩌면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포착으로도 보이는데 그의 이러한 수법은 일본 가족 영화의 거장 오즈야스 지로의 영향으로 설명되고는 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 같은 사실들은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거나, 그의 이력에서 그의 지난 영화들의 특징을 연결하는 작업이 그가 만든 이미지들의 힘을 밝히는데 쓸모가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의 이미지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앞서 설명 방식들은 그의 영화가 지닌 이미지의 잠재성을 창작자인 감독의 이력이나 과거의 고전 작품들의 영향 아래에 가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란 관객에게 분명한 강도로 어떤 감정들을 생산하고 스스로 이것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영화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고 그것에 대해 직관적으로 반응하지만 분명한 언어로 발화하지 못하는 감정들에 대한 표현을 관객 스스로 사유하도록 이끄는 감각을 창조한다. 이미지는 지각된다는 점에서 물질적이지만 동시에 명료한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잉여를 지닌다는 점에서 언어-기호가 아니다. 이 둘 사이를 횡단하며 운동하는 힘에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에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 네 자매의 우애와 사랑이라는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연결고리로 서로 다른 개체인 네 자매가 서로의 존재를 감각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세 자매를 두고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의 감정을 그리고 스즈의 경우에는 세 자매를 향해 가지는 애정과 이복동생이라는 처지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비애를 카메라는 담고자 한다.

  즉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사치, 요시노, 치카, 스즈라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아버지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바닷가 마을의 풍경 속에서 적절한 색채와 함께 녹여내는 것이다. 카메라가 구도를 잡고 풍경들을 잡아내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인물들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이미지들의 변화가 카메라를 통해 대상에 대한 감독의 사유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예술에 있어서 감각은 논리적이다.

 

  예컨대 스즈가 축구를 하고 비오는 날 집에 돌아와 마루에 앉아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과 같은 것들이다. 이때 스즈가 느끼는 감정들은 무엇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평안인가, 아니면 그리움의 감정인가. 이미지들의 연속적인 움직임들이 만들어내는 대상에 대해 카메라가 감각하는 방식은 그 시퀀스의 청각적 이미지와 구도 및 색채 등에 의해 복합적 정서를 관객에게 표현한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감정과 정서적 흐름을 자연 풍경들의 시각적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역동에 맡겨둔다. 바닷가 마을이 주는 서정적인 분위기 그 자체가 네 자매의 마음을 고백하고 정서적인 연결을 구성한다.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자매와 스즈가 서로의 속마음을 알기 위한 탐색의 대화가 거의 없다. 소소한 자신들의 유년의 기억들을 연결하고 나열할 뿐이다. 대화라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존재 이력을 고백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스즈와 세 자매 사이의 공통 기억이라고는 아버지라는 존재 밖에 없지 않나.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말하고 듣는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신호가 더 부각된다.

  언어가 아니라 그들이 서로의 정서를 연결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함께 바닷가 마을의 어느 한곳에 시선을 던지며 함께 바라보는 행위들을 통해서 이다. 그들의 시선이 허공의 풍경을 향할 때 그들의 정적 행위를 강하게 동적으로 연결시키는 내적 감정들에 대해 관객들은 짐작한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표면에서 존재의 내면으로 침잠할 때 네 자매를 아우르는 정서는 살아있는 것으로 우리 몸의 신경체에 연결되어 운동한다.  

  

  사치가 과거 아버지가 좋아했다는 바닷가의 풍경을 스즈와 함께 올라가 바라보며 아버지에 대한 자신들의 그리움과 원망을 고백할 때 이 시퀀스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마주보고 서 있는 바다의 침묵이다. 화면 속의 바다는 죽은 아버지를 대리하는 상징일수도 있고, 사치의 회한의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으며, 스즈의 원망에 대한 은유로 하나의 응어리일수도 있다. 이 시퀀스를 구성하는 것은 침묵하는 바다와 마주한 두 자매의 목소리인데 그것이 다양한 감정의 변화들을 상상하도록 요구한다.

  이 작품의 주된 정조를 생산하는 것은 네 자매를 둘러싼 바닷가라는 장소일 것이다. 이러한 배치는 우연이 아니다. 바다는 이 작품 속에서 네 자매가 공유하고 있는 아버지를 대리하는 장소인데, 그들의 일상이 바닷가 마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재하는 아버지의 시선 내부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반전은 네 자매를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시선은 부재하는 아버지, 즉 죽은 유령에 의해 이끌린다는 점이다. 영화는 죽은 자의 시선에서 네 자매를 바라보는 일, 자신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는 네 자매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감정들을 자기 내부에 수용하고 물결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 감정들을 흩어버리는 정서적 운동을 담아낸다.

  필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바로 가족을 키워드로 하는 서사가 아니라 침묵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연하면 영화는 일상적 가족의 모습과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조심스럽게 침묵한다. 이러한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떤 정서적 깊이 매몰되는데 이때 카메라는 그들이 침묵 속에서 감각하는 정서들을 카메라 속에 담아내려고 한다. 각각의 시퀀스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이러한 인물들의 내적인 정서의 흐름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진짜 주연은 일상에 감춰진 감정들의 운동하는 힘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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