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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lie Jan 11. 2024

[하루] 예민한 아이

2023. 11. 22

  첫째는 무난한 아이였다.

  육아 난이도가 下에 해당할 정도로 키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밥을 아주 느리게 먹었고, 아토피 피부가 있었고, 가끔 똥고집을 부리기도 했으며, 자야 할 때를 놓치면 잠투정이 매우 심했다는 정도. 매우 느긋한 아이라, 출산일이 하루가 지나도 세상 밖으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유도분만으로 겨우 끄집어냈어야 했던 아이였다. 그렇게 매사가 느긋하고, 조용하고, 집순이 성향이 있는 첫째는 나와 많은 부분이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둘째는 첫째와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육아 난이도 최상인 예민한 아이가 바로 둘째였다. 둘째는 어려서부터 뭐든 빨랐다. 출산일도 2주나 빨랐고, 돌도 되지 않아 말을 하고 걸었다. 첫째는 다섯 살부터 보낸 어린이집을 둘째는 두 돌이 지나자마자 보내야 했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나가는 것을 좋아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아주 날아다녔다. 집 앞 놀이터에서 둘째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붙임성 있게 얻어먹으며, 여기저기 형 누나 가리지 않고 껴서 놀았다. 그 덕에 동네 아줌마들과 아이들과 안면을 트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보이는 성격과 상반되게 사실 둘째는 겁도 많고 아주 예민한 아이였다. 집에 들어서면서 냄새로 그날 저녁 메뉴를 맞힌다든가, 비가 오기 전에 비 냄새를 맡는다든가, 어른들도 느끼지 못하는 맛의 미묘한 차이까지 알아차리는 예민한 아이.


  하지만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저 까다롭고 고집이 세서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어린이집 앞에 거의 다 와서는 갑자기 가기 싫다며 40분 넘게 버틸 때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울어재낄 때도 그냥 별나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때마다 어르고 달래거나, 윽박도 지르고, 혼도 냈지만 소용없었다. 자기가 스스로 분이 풀려서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러다 방송에서 육아 전문가가 말해준 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는 아이의 성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둘째는 모든 항목에 해당되는 예민한 아이였다. 시각이 예민해서 변화에 대한 반응과 습득이 빠른 대신, 어둠을 무서워했다. 청각이 예민해서 음악을 듣거나 따라 부르는 걸 잘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두려워했다. 미각이 예민해서 맛을 잘 아는 대신, 낯선 맛과 식감을 거부했다. 촉각이 예민해서 잠들 때마다 내 소매의 깃을 만져야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유별나게 이러고 저러는지 둘째를 채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둘째는 태어난 성향대로 자라고 살아가고 있는 거였다. 문득 둘째에게 미안해졌다. 미리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까탈스럽다고 원망했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예민하기에 모든 자극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울고 거부하며 오히려 과장된 반응을 보였던 건데, 그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반응과 행동에 대해서만 제지하고 혼을 냈다는 사실에.


  그걸 알게 된 건, 유치원 졸업을 앞둘 때였다. 졸업식 때 아이에게 부모가 편지를 써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런 마음을 표현했었다. 너무 늦게 알아줘서 미안하다고, 예민한 성향 탓에 두렵고 무서웠을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혼만 내서 미안했다고. 그날 둘째가 집에 와서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편지를 읽고 눈물이 났다면서,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지금이라도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줘서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첫째가 어렸을 때 종이를 접어 자신만의 책을 만들곤 했었다. 그걸 보고 배웠는지 둘째도 자신만의 도감이나 이야기 책을 즐겨 만들었었다. 시리즈를 만들기도 해서 제법 궁금증을 유발하며 읽었었다. 둘 다 세상에 더 재밌는 책이 많다는 걸 깨달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만의 책을 만들거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둘째는 사소한 말투과 냉담한 표정에도 상처를 받았다. 상처는 쉽게 받았지만 회복은 어려워했고 더뎠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고 알려주기 위해 부단히 애썼지만 어딘가 조금씩 부족하고 덜 와닿았던 것 같았다. 그때마다 둘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종이에 써서 방문 앞에 붙여놓고 한참을 혼자 있다가 마음이 풀리면 나오곤 했다. 혼자 뭘 하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스스로 나오기 전까진 방문을 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둘째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울다가 바닥에 잠든 둘째의 책상에 공책 하나가 놓여있는 걸 정리하다가 펼쳐보게 되었는데, 첫 장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지막장부터 거꾸로 적어놓은 마음의 일기가 쓰여있었다. 속상했던 마음, 아무도 몰라주는 억울함,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걸까 하는 고민의 흔적들이 좁은 칸에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그때 알았다. 둘째는 나를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난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난한 아이였다. 그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둘째처럼 오감이 예민한 건 아니지만, 다른 감각에 비해 감수성이 쓸데없이 넘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사소한 것에 대한 걱정이 금세 불안으로 다가온 적도 많았다. 그걸 진작에 알아차린 건 남편이었다. 항상 둘째가 날 닮았다고 하기에 농담을 하는 줄 알았는데 눈치 빠른 남편은 느꼈었나 보다. 눈치와 시각과 청각과 촉각의 예민함을 둘째에게 물려준 장본인이었다. 아마 그 외의 예민함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어찌 되었든 둘째는 우리의 예민함을 모조리 물려받은 아이가 분명했다. 그리고 난 감성코칭, 마음 읽기, 그랬구나 등 섬세한 요즘 육아와 다른 그 옛날에 알아서 큰다는 삼 남매의 맏이였다. 내 마음의 이유 없는 슬픔이나 예민한 감정, 어쩔 수 없는 불안은 알아주길 바라거나 말로 꺼내놓을 수도 없이 당장의 먹고살기가 급급했던 부모의 뒤통수만 보고 자라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자라면서 나의 예민함은 그 모서리가 깎이고 닳으면서 점점 무뎌지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 후 인터넷에 나오는 심리 자가 검사를 재미 삼아할 때마다 나는 극도로 예민한 성격이라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백 퍼센트 신뢰할 순 없지만, 백 퍼센트 무시할 순 없는 결과였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의 성격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무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니, 무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내 안의 근본 없는 우울과 불안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하고 평범한 보통의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절대 위태롭거나 우울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내 성향은 바뀌지 않을 테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난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가끔 예고도 없이 휘몰아치는 슬픔에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던 것을, 너무 서글퍼서 무작정 떠나기도 했던 것을, 늘 이쪽과 저쪽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헤매며 불안해했던 것을. 내 안의 작은 폭풍우들이 만들어 냈던 수많은 방황의 이유를, 아주 조금은. 그리고 둘째에게 썼던 편지처럼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불안 속의 나에게. 예민한 감성과 성격에 불안하고 두려웠을 모든 순간들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나약하다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채찍질하며 아프게 해서 후회된다고.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아이와 함께 나도 자라고 있다. 순간마다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의 모든 순간에 그 시절을 지나 온 나의 모든 순간이 더해져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난 아직 아홉 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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