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천상 이야기꾼의 영화 같은 소설

고래 / 천명관

by folie

새로운 걸 한번 읽어봐, 스치듯 지나치며 건넨 한마디로 읽게 된 책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만 파고들고 새롭거나 낯선 스타일의 이야기는 좀처럼 읽지 못하는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다. 어쩌다 마음에 맞는 좋은 작가를 알게 되면 그 작가가 출간한 모든 책들을 읽는 식이었다. 어쩌다 알게 되는 것도 기존에 좋아하는 작가가 언급하거나, 연결된 고리를 따라 만나게 되는 익숙한 것들의 향연이랄까.


그런데 이 책은 그 어떤 연결고리나 익숙함 없이 서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책을 집어 들고 도망치듯 구매한 첫 번째 책이었다. 아마 그 시기에 부커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집에 와서 마치 내외하듯 며칠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채 거리를 두고 차츰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드디어 책 표지를 넘기며 이 책이 출간된 지 거의 20년이 된, 그다지 새로운 책도 아니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해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좀처럼 쉬이 가라앉질 못했다. 매일 흰 우유만 먹던 위장에 처음으로 탄산이 들어갔던 순간처럼, 새롭고 짜릿하지만 왠지 모를 죄의식이 몰려왔다.


천상 이야기꾼. 작가에 대한 느낌이었다. 읍내 장터에 둘러앉아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실감 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가끔 글 속에서 튀어나와 독자의 이해를 구하거나 말을 건네는 순간이 그래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4D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장면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고, 글 속에서 다채로운 색감과 질감, 그 순간의 공기마저 매캐하게 맡아지는 것 같았다. 그건 분명 작가만이 가진 능력일 것이다. 이 글자들이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읽히고,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상상 속에 떠오를 이미지까지 설계했다고 여긴다면 곡해일까. 물론 그것이 얼마나 장엄한 스케일이 되어 펼쳐질지는 읽는 이들의 몰입과 상상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영화감독을 꿈꾸다 입봉에 실패한 후, 마흔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생애는 그의 작품을 처음 읽어본 나로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 소설은 산골처녀였던 금복이 모진 풍파를 헤치다 딸 춘희를 낳아 평대에 정착하며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대를 거쳐 이어진다. 하지만 이건 금복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춘희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존재감을 뽐내며 산화하지만 결국 벽돌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남았을 뿐이다.


박색의 노처녀였던 국밥집 노파와 그녀의 딸 애꾸. 여자의 몸으로 대장부가 된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 노파와 금복은 스스로의 삶을 억척스럽게 개척해 나가며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때로는 살인도 불사한다. 그런 그녀들의 피나는 노력과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생에 덫처럼 뿌려진 불운이 결국 그녀들의 발목을 붙잡고, 기어코 목숨까지 끊어 놓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운이 저주처럼 대물림되어 애꾸와 춘희의 삶에까지 들이닥쳤던 고난은 그저 고약한 운명의 장난으로만 여기기엔 너무도 비참하고 처절하다.


천명관-고래3.jpg 여섯 페이지에 걸쳐 긴 여백을 둔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정말로 몇 년이 흐른 것만 같다.


읽다 보면, 이 책에서 주인공은 금복도 춘희도 하물며 고래도 벽돌도 아닌, 저주와도 같은 ‘운명’이 아닐까 착각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주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역경은 등장인물들을 넘어뜨리고 좌절하게 하는데, 그럼에도 다시 살아내고야 만다. 엄마인 노파로부터 한쪽 눈을 잃고, 한쪽 팔마저 잃게 된 애꾸와 부모를 잃고 삶의 터전인 벽돌 공장까지 잃게 된 것도 모자라 대극장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온갖 고초를 겪게 되는 춘희도 기어코 살아간다. 아이러니한 것은 노파와 금복이 어떤 이유에서건 욕심과 또렷한 목표를 가지고 삶의 역경을 헤쳐나갔던 것에 반해, 그녀들의 딸인 애꾸와 춘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버티고 살아갔다는 것밖에.


물론 그런 것들을 생각할 새도 없이 이들의 삶을 관통하여 유유히 흐르는 운명을 타고 이야기는 휘몰아친다. 반편이와 노파 그리고 애꾸의 이야기는 스릴러이자 복수극이 되고, 금복과 생선장수의 이야기는 성장물이 되며, 금복과 걱정 그리고 칼자국의 이야기는 멜로 영화가 된다. 춘희와 점보의 이야기는 환상 동화에, 춘희의 감옥살이는 액션 영화, 춘희와 트럭 운전사의 이야기는 비극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새드 영화가 된다. 이야기들은 서로 맞물려 요동치고 이러한 이야기의 파도 속에 거대한 고래가 헤엄친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발버둥 치고 빠져나가려 애쓰지 않는다. 춘희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저 그 운명의 파도 속에 몸을 맡긴 채 읽어나가는 수밖에.


이 책이 맞지 않는다면, 읽다가 덮어버리려고 했다. 분명, 새롭고 무자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허둥대는 내가 낯설어서 멈추고 싶기도 했지만 도무지 덮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힘이 내 팔을 잡았고, 작가의 유려한 입담에 내 정신이 벌써 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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