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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인 folin Jun 07. 2019

좋은 창업가는 누구인가

알토스벤처스 대표 한 킴이 생각하는 스타트업, 그리고 창업가 

스타트업계에선 누구든 스펙을 다 떼고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 투자자의 자본을 얻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는 거잖아요. 제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건 이 일을 통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성장 자체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할까요?


 

한 킴을 만나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2011년 10월 5일,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한국의 미디어 역시 일제히 헤드라인으로 그의 죽음을 다뤘고, 그달 24일 출간된 전기 <스티브 잡스>는 각종 인터넷서점에서 역대 최고 일일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기업가의 한 사람일 뿐인 그의 죽음을 추모할까요?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남긴 기록을 읽고, 그가 나온 영상을 봅니다. 애플의 제품을 좋아하건 아니 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아름다움에 이끌리듯 탁월함에 이끌리는 건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벤처캐피탈리스트(VC) 한 킴에 주목한 건 그래서였습니다.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벤처캐피탈 알토스벤처스를 이끄는 한 킴 대표는 ‘유니콘 감별사’로 불립니다. 이미 유니콘으로 꼽히는 블루홀·쿠팡·배달의민족에서부터 넥스트 유니콘으로 불리는 토스·직방·하이퍼커넥트까지 모두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았습니다. 한 킴 대표에겐 탁월함을 알아채는, 좋은 창업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겁니다.



좋은 창업가는, 탁월함을 만드는 사람은 뭐가 다를까요?



이 질문에 한 킴 대표는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다려야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알토스벤처스는 장기 투자로 유명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비스 중심의 스타트업은 VC로부터 투자 받기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렵게 투자를 받아도 투자자의 수익 실현을 위해 더 큰 회사에 인수되거나 기업공개(IPO)를 서둘러야 했습니다. 투자자가 곧 엑시트 할 수 있는 정도의 단계가 아니면 투자받기 어려웠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하지만 알토스벤처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이라면 창업가가 엑시트 하길 원해도 “더 투자할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성장에 집중하라”고 요구합니다. 당장 돈을 벌기보다 회사가 더 크게 성장하길 원한다는 점에서는 창업가와 이해가 일치합니다. 창업가들이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건 그래서죠.


“회사가 크게 성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당장 수익화했을 때의 수익과 비교할 수 없어요. 작은 바퀴를 굴려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그 바퀴의 지름이 조금만 커져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리는 지름의 커진 것의 몇 배 이상 길어지죠. 실리콘밸리 VC는 경험적으로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투자를 합니다.”


 

한 킴 대표가 알토스벤처스의 연례회의(annual meeting)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알토스벤처스]




알토스벤처스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담보나 CEO의 보증을 요구하거나 자급 집행 내역을 관리하는 등의 창업가들이 VC 업계 ‘갑질’로 꼽는 조건을 내걸지도 않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폐업한 스타트업이 밀린 임직원 급여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4억 원을 추가로 지원해준 적도 있습니다. 2016년 청산한 스타트업 리모택시 얘깁니다. 그는 “유니콘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 실패나 손실은 당연한 것”이라며 “유니콘 기업을 만들면 그런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는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 창업가와 함께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파트너. 8번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한 킴 대표가 창업가를 도와 탁월함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창업가를 본다


알토스벤처스는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기투자 원칙을 지키기 위해 ‘좋은 창업가’를 찾는 데 집중합니다. 창업가가 실현하려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한 킴 대표는 “우리가 좋아하는 창업가 유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업 아이템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창업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자를 주저합니다. 반대로 창업가가 마음에 드는데 사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기억해뒀다가 그 창업가가 다른 사업 아이템으로 다시 도전할 때 투자하기도 합니다.


“창업가가 중요하다”는 말을 주로 하는 건 엔젤투자자입니다. 서비스 아이디어가 얼마나 시장성이 있는지 즉,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Fit)을 찾기 전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창업가와 창업팀을 볼 수밖에 없죠. 이 단계에선 사업 아이디어가 바뀌는 일도 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토스벤처스가 주로 투자하는 시리즈A 단계는 스타트업이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아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들어섰을 때인 만큼 실제 성장하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지표를 중요하게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 킴 대표와의 8번의 만남에서 지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창업가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창업가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기로 한 건 그래서입니다.


그가 ‘더 좋은 창업가’를 강조하는 건 현재의 제품·시장 적합성을 증명할 지표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짧게 투자하고 적당히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길게 투자해 유니콘을 키우고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을 만들려 하기 때문에 그는 ‘창업가’에 집착한다는 얘깁니다.


그렇다고 그가 오로지 압도할만한 수익을 내기 위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는 다양합니다. 주식에 투자해도 되고,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겠죠. 비행기나 선박을 사서 항공사나 해운사에 대여해주고 수익을 내는 투자 모델도 있습니다. 그 많은 투자 시장 중 스타트업에 인생을 거는 건 이 일이 그의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부정적이랄까요, 비관적이랄까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자신의 한계를 긋는 사람들이죠. 나는 학벌이 이래서, 외모가 이래서, 가정환경이 이래서 같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삶을 제한해버립니다. 그런데 스타트업계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이 바닥에선 누구든 그런 스펙을 다 떼고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 투자자의 자본을 얻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는 거잖아요. 경제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요. 제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건 이 일을 통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성장 자체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할까요?


 

한 킴은 누구인가


한 킴 대표의 이력은 여느 창업가 못지 않게 화려합니다. 1976년 초등학생이던 한 킴 대표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갑니다. 그리고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습니다. 한국인이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의 입학 소식이 한인 교포 신문에 실렸을 정도죠. 하지만 졸업 후 군인으로 살면서 “위계적이고 꽉 짜인 조직이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안 그는 전역을 결심합니다. 



“미국에 가서 가장 놀라웠던 게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였어요. 아시다시피 제가 미국에 갔을 무렵 한국은 반공 의식이 철저해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게 어려웠잖아요. 민주주의는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요. 공산주의가 없어졌으니 더 군에 남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군대를 떠났지만, 그는 군대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리더십입니다.



“소대장은 가장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 입장에선 지휘자를 제거하면 체계가 무너지니까요. 훈련할 때 감독하는 사람들이 소대장한테 말해요. ‘자, 너는 지금 죽었어’라고요. 그러면 그때부터 소대장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소대원들이 전투를 수행해요. 그리고 그 결과가 소대장의 성과죠. 리더십의 핵심은 리더가 없어도 중요한 결정이 일어나고 조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정말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하고, 그 사람의 역량을 키우고, 스스로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도 줘야 합니다.


 

웨스트포인트 재학 시절의 한 킴 대표.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한 킴 대표다.  ⓒ한 킴




전역 후 한 킴 대표는 스탠퍼드 MBA에 진학합니다. 공산주의는 사라졌지만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건 인간의 욕망에 기반을 둔 경제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비즈니스업계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정보기술(IT) 산업과 창업계에 가깝고 진취적인 학풍을 가진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한 덕에 자연스럽게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됐고요. 구체적으로는 교수님 소개로 벤처 투자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을 만나면서 1996년 알토스벤처스를 창업합니다.



1996년 창업한 덕에 한 킴 대표는 닷컴 호황뿐 아니라 닷컴 버블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킴 대표는 “조정기에 경쟁자가 정리되면서 구글과 아마존 같이 살아남은 기업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탁월한 회사와 창업가를 발굴해 장기 투자하는 알토스벤처스의 투자 스타일은 바로 이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탁월한 사람을 키우는 사람, 한 킴



한 킴 대표는 인터뷰 내내 “한국의 VC와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은 닷컴 버블 붕괴 후 네이버 같은 몇몇 포털 기업의 독과점 시장이 펼쳐졌고, 버블 붕괴기를 버텨낸 벤처기업 역시 오래 생존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국의 VC가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공한 경험이 없는 게 당연했죠. 하드웨어 기반의 벤처기업 투자가 주류였던 이유입니다. 

반면 한 킴 대표와 알토스벤처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아마존과 구글 같은 성공 사례를 보았기 때문에 모바일 시장이 열렸을 때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 킴 대표의 성공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좋은 창업가를 발견해 더 좋은 창업가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킴 대표는 ‘25개 도시론’을 늘 말합니다. 미국 내 인구수 상위 25개 도시와 국내 상위 25개 도시를 비교해보면 비슷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국내 인구수 상위 25개 도시의 인구 합은 약 3600만 명으로, 미국 내 인구수 상위 25개 도시 인구(약 3790만 명)와 비슷합니다. 

주목해야 할 건 인구밀도입니다. 이 25개 도시가 한국과 미국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6%, 0.2%지만, 여기 사는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0.2%, 11.6%입니다. 한국의 인구수 상위 25개 도시의 인구 밀도가 더 높다는 얘기죠. 실제로 이들 도시의 면적과 합산 인구로 뽑은 밀도를 보면, 미국은 1㎢당 약 1960명이지만 한국은 약 2600명입니다. 

한 킴 대표는 말하죠. “미국에서 태어난 글로벌 서비스 중 인구 상위 25개 도시에서 모두 히트한 서비스는 없다”라고요. 10개 도시 정도에서 히트하면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한국의 주요 도시에서 성공했다면 글로벌 서비스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 킴 대표가 “한국 시장이 절대 작지 않다”고 말하는 근거입니다.

한 킴 대표는 이 ‘25개 도시론’을 근거로 창업가들을 독려합니다. 유니콘 기업을 만들자고요. 당장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더 투자할 테니 소비자를 더 모아서 서비스 규모를 키우자고 말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미국식 장기 투자 전략을 펴면서 유니콘을 만들어냄으로써 그의 ‘25개 도시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창업가를 글로벌 수준의 창업가로 만들고 있고요.

처음 한 킴 대표를 만났을 때 우리는 ‘탁월한 사람’을 알아채는 한 킴 대표만의 안목을 통해 탁월한 창업가들은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한 킴 대표를 만나면서 우리는 그 스스로가 탁월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 폴인이 준비한 창업과 스타트업에 관한 이야기들


쿠팡은 이름 그 자체로 '핫'한 기업입니다. 쿠팡을 두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죠. 한 킴이 만난 김범석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브랜딩은 비단 스타트업만의 것은 아닙니다. 세월을 갖춘 빵집, 태극당이 폰트를 만들고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를 진행했습니다. 태극당의 리브랜딩 스토리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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