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바로 저예요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좋았다. 편하기야 했지만, 답답한 걸 워낙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기분 좋을 이유는 여럿 있었다. 둘째의 심장 초음파 검사 결과가 양호했다. 오래간만에 품에 안긴 첫째는 엄마 사랑한다고 속삭이다 내 손을 꼭 잡고 잠에 들었다. 물론 신생아 덕분에 밤은 꼴딱 새웠지만, 첫째 육아 경험 덕인지 어쩐지 스트레스가 덜 했다. 아기 낳고 배가 좀 들어가서 몸도 가벼웠다. 출산이라는 큰 산을 넘었으니 아이들만 잘 돌보면 되고, 조금씩 컨디션도 회복 중이니 순조롭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기분이 좋았다. 그게 탓이었다.
이참에 개운하게 씻어야겠다!
첫째는 어린이집에 가고, 둘째는 산후관리사가 맡아주시는 동안 나는 샤워를 시작했다. 이제 날씨가 선선해졌으니 첫째랑은 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다니면 좋겠다. 귀여운 둘째는 힘닿는 만큼 모유를 줘야지. 그런 한가로운 생각을 하다가, 순간 욕조의 미끌함이 느껴졌다. 꽝. 나는 넘어지며 딱딱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엄청난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엉덩이 전체에 불이 난 것 같았다.
마침 출산휴가로 집에 있던 남편이 달려왔다. 나는 "너무 아파', '넘어졌어', 겨우 몇 마디를 뱉다가 정신을 잃을 듯한 통증에 흐느끼기만 했다. 그걸로도 남편이 상황 파악을 하기엔 충분했다. 욕실 낙상. 응급실 의사인 그에겐 무척 익숙한 상황이다. 물기를 대충 닦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자 업어서 욕실 밖으로 끌어냈다.
남편이 나를 침대에 눕혀주려고 했는데, 나는 침대조차 스스로 올라가지 못했다. 남편이 팔을 잡고 끌어당겨서 겨우 엎드린 자세로 누울 수 있었다. 그가 상황을 파악해 보려고 여기저기 만졌다. 고관절 골절일까? 아니면 꼬리뼈? 흔히 부러지는 부위는 괜찮아 보였지만, 나는 통증이 극심해서 도저히 움직이지 못했다. 남편에게 업혀서 주차장까지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119를 통해 들것에 실려 병원에 가게 되었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애를 보니 다시 눈물이 터졌다. 나는 침대에 엉망진창으로 엎어진 채로 첫째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네 살배기 아이는 구급대를 눈앞에서 봤다는 것이 너무나 신나서... 마냥 좋아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 상태가 단순한 타박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불과 어젯밤만 해도 이 손을 쥐고 아이를 재워줬는데, 나의 빌어먹을 멍청함 때문에 또 떨어져야 한다.
다쳐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 중에, 나 같은 욕실 낙상은 아주 흔하다.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것은 불운한 것이지 멍청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미친 듯이 한심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낙상 고위험군이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만성적인 골반 관절 질환이 있는 탓에 체중 지지가 불안정했다. 게다가 배 나온 임부는 균형을 잘 잡지 못해 넘어지기 쉽다. 임신부터 모유 수유기에 골밀도가 떨어져서 뼈가 약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목욕탕용 의자를 구비해 두고 언제나 앉아서 씻었다. 뼈가 약해질 것을 고려해서 칼슘과 비타민D도 열심히 먹었다. 나는 내가 넘어지기 쉬운 상태이고, 만약 넘어진다면 크게 다치기도 쉽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만 목욕 의자를 쓰지 않고 무심하게 서서 씻었다. 자전거니 모유니 그런 한가로운 딴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딱 한번 방심한 탓에 이런 사고가 생긴 것이다. 도저히 불운으로만 치부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CT를 찍자 한눈에 골절이 너무 잘 보였다. 척추의 일부분인 천골이 부러져 있었다.
남편마저도 당황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고 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부러진다고 해서 척추가 골절되는 것은 더 드물다. 낭패였다. 입원을 하고 치료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뼈가 붙는 것에 6주 정도 걸릴 것이다. 그 사이에는 누워서 회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몇 주 지나면 걷는 것은 기대해 볼 수 있지만, 앉아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적어도 수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