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프렌들리 존과 재생산 소수자 사회
출산 전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20대 시절에는 체력도 넉넉하니 장기간 배낭 여행도 문제 없었다. 스쿠버다이빙이나 패러글라이딩처럼 모험적인 도전을 선호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와 문화는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오히려 더 좋았다. 하지만 아기를 낳은 이후로는 모든 기준이 바뀌었다. 나는 최대한 안전한 선택을 하고 싶었고, 아주 사소한 것도 미리 대비를 하고 싶었다. 하루종일 부산스러운 어린 아기와, 그 작은 사람에게 필요한 수많은 물건과, 그보다 무거운 부모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진 채로 변수를 만들기는 싫었다. 아이를 낳은 후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 위해 남편과 협의를 했다. 첫째. 가까운 곳으로 짧게 갔다온다. 둘째. 아기와 가기 좋은 숙소를 정한다. 셋째. 웬만하면 그 숙소 안에서만 있는다. 10년 전 25살이었던 내가 나타나 지금의 나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고 이 한심한 아줌마야. 3년만의 휴가를 겨우 그런 식으로 시시하고 지루하게 보내겠다는 거야?"
내가 이를 갈며 과거의 나에게 응수했다.
"니가 애 낳아봐라! 나도 젊었을 땐 말이지..."
그렇게 정하게 된 강원도의 한 호텔은 '키즈 프렌들리'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도착해보니 정말이었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널찍한 키즈 카페와 정원이 잘 갖춰져 있었다. 아이동반 객실엔 아기가 좋아할 만한 텐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화장실엔 아이용 발받침이 있었고, 그 밖에 온갖 아이용 비품이 있었다. 아침 식사도 아이가 먹기 좋은 미역국이 있었고, 아이용 식기가 따로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집도 이 정도로 세심하지는 않다.) 아아. 이곳은 정녕 아기의 천국이로구나. 마케팅 대상을 확실하게 저격한 그 호텔은 아이와 그 부모들을 위한 온갖 '편리함'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 것은 따로 있었다. 아기와 함께 있는 우리의 모습이 이 곳에서만큼은 정말로 평범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젊은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은 숙소인 만큼, 숙박객의 대부분이 아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여행객이었다. 식사를 할 때면 테이블마다 적어도 하나의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작은 칭얼거림은 다른 아이들의 소리에 어물쩍 묻어갈 수 있었다. 애가 그릇을 달그락거린다고 과하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천지분간 못하는 18개월 아들놈은 아무데서나 기거나 드러누웠는데, 다행히 우리 아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아기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여러 아이들이 야외 정원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자, 우리 아기도 덩달아 내달렸다. 도심의 거주 지역에서 이렇게 어린 아기는 무슨 행동을 하던 눈에 확 튀는 존재다. 하지만 사방 팔방이 온통 아이들인 이 곳에선 아니었다.
"애들이 워낙 많아서 좋네, 그지?"
"이래서 다들 키즈 호텔을 가야 한다고 하나봐."
나는 남편과 속삭이면서 안도하면서도, 참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원해서 여행을 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만족의 근원이 고작 평범함이라니 말이다.
아이를 가진 젊은 부부의 모습은 굳이 '키즈 프렌들리 호텔'까지 찾아가야만 비로소 평범하게 보이는 것일까?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통계 자료가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83년생, 88년생의 인구동태 코호트 분석이다. 88년생인 만 35세 여성의 59.5%만이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한 사람 중 76.9%는 자녀가 있다. 물론 혼인율과 출산율은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 우리 나라에서 혼외 출산은 비중이 지극히 적으므로 이를 무시하고 계산한다면, 내 나이 여성 중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한 사람의 비율은 고작 45.8%이다. 채 절반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동년배 남성은 기혼율이 더 낮으므로, 더 적은 사람만이 자녀를 가진 삶을 살고 있다. 이 자료를 접하기 전에는 만 35세쯤 되면 결혼도 하고 애 하나 정도 있는 것이 평균적인 삶일 것이라고 무심코 지레짐작했는데,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며, 결혼을 했어도 아기를 낳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내가 외동이라는 이유로 특이한 취급을 받았는데, 불과 한 세대만에 상황이 반전되어서 이제는 아이를 둘 넘게 낳는 것이 특이한 일이 되었다. 아마 앞으로는 이 추세가 더하면 더할 것이다. 이제 재생산이란 것은 상대적으로 희귀한 경험이 되었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이며 아기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에 재생산이라는 경험에 주목한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재생산의 결과인 출산율과 그 저하의 원인에 대해서 토론한다. 요즘 사람들이 애 못낳는 원인, 그 첫번째로 꼽히는 것이 집값이다. 실제로 국토연구원에서 조사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분석에도 주택 가격이 주요 원인으로 등장한다. 사교육비, 여성경제활동, 소득, 실업, 경제성장률 등 분석으로 드러난 다양한 경제적 지표는 누구나 저출산의 범인으로 짚어낼 만한 원인들이다. 그런데 이 표를 잘 들여다 보자. 뭐가 하나 더 있다. '애 낳을 결심'에 집값만큼 중요한 것이 전년도 출산율이다. 과거 출산율이 향후 출산율을 결정한다. 아이를 낳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뒤집어서 사회에 갓 태어난 아기들이 아주 적다는 것은, 앞으로도 새로운 아기들이 태어나기 어려운 환경으로 작용한다. 단적인 예로 아이들이 적어서 어린이집이 망하면, 그 부족해진 인프라 때문에 아이 키우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이제 상대적 소수가 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키즈 프렌들리'한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보통 마트에는 아기 용품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쿠팡 와우 회원이 되어야 아기 용품을 시시각각 조달할 수 있다. 평범한 식당에는 아기 의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미리 확인하고 '키즈 웰컴' 식당을 찾아가야 한다. 고급스럽고 조용한 호텔에 아기를 데려가는 것은 실례다. '키즈 호텔'로 휴가를 가야 한다. 아기가 좀 더 크면 해외여행도 같이 가보고 싶은데, 애랑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 애가 울면 어쩌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 어쩌나? 혹시 아무 항공사에서라도 '키즈 전용 항공편'을 출시해 준다면, 나는 무리해서라도 꼭 그 비행기를 타겠다. 제발!
'키즈 프렌들리'라는 특수한 공간은 의도는 좋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고립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그 대상의 수가 적다면, 별도 영역에 분리해두기 참으로 편리하다. 소수화와 특수화는 서로를 강화하는 상승 효과를 지닌다. 이제 사회에 한 줌밖에 안되는 어린아이들은 '키즈 프렌들리'한 곳에 몰아넣으면, 아이와 상관없는 나머지 어른들은 쾌적하고 세련된 어른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적다는 것은, 아이의 부모도 상대적 소수자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재생산 경험자들과 재생산 담론은 점점 더 설 곳이 좁아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쩌면 아이의 존재가 허용되는 특별한 공간이 생겨나는 것보다, 그저 사회에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