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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난포 May 10. 2024

출산, 죽을 수도 있는 일

인간의 몸은 어느 시기에 취약한가?

한국일보에서 우리나라의 모성사망(임신과 관련한 사망)과 출산 인프라 붕괴를 다룬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이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 일독을 권합니다. 산모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성실하게 다뤄주었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0202480002162




살면서 죽음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할 일이 없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생애 주기에 따라 반드시 죽음, 혹은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취약한 상태를 맞이한다.


죽음과 질병에 가장 가까운 시기는 노년기일 것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건강 문제가 하나둘씩 생긴다. 젊고 건강하던 사람도 급작스럽게 불행을 맞을 수 있지만, 이럴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나 상대적으로 드문 질병이 해당된다. 반면 노령기에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공격을 받는다.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살던 자들마저, 온갖 의료와 기술의 혜택을 누리던 자들마저, 종국에는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죽음과 가까운 시기는, 의외로 아주 어린 아기 시기이다. 보건, 위생, 생활 수준 향상, 재해와 전쟁이 상대적으로 드문 시대를 살면서 이제는 아기가 죽는 일을 좀처럼 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길게 잡아도 불과 이백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조선 시대만 해도 호랑이에게 아기가 물려가거나 우물에 빠져 죽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돌발성 사건만 아기에게 위험한 것이 아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라면 외부 환경과 사소한 질병에도 지극히 민감하다. 아기는 온갖 위험에 취약하고, 정말로 쉽게 죽을 수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1800년 즈음까지는 5세 미만 아동의 1/3이 사망했다는 자료가 있다. [1]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세 번째, 인간이 죽음과 가까운 시기는 출산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 죽음과 맞닿아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기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고 우물에 빠져 죽던 바로 그 시절, 산모가 애 낳다가 죽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조선 양반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출산으로 사망할 확률이 무려 13%였다는 문헌이 있다. [2] 다행스럽게도 현대 의학이 태동하면서 이러한 모성 사망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너무 많이 줄어들어서, 현대인인 우리들이 '애 낳다가 죽는 일'을 막연히 관념적으로만 생각할 정도로 드문 일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나 나오는 일처럼.


국가에서 공짜 접종을 맞춰준다는 것 = 취약자라는 뜻이다.


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다. 죽은 아기들이 말이 없는 것처럼, 죽은 산모도 입이 없다. 게다가 현대에는 모성 사망이 아주 드문 일로 바뀌었다. 대단히 기쁜 일이고, 산부인과 의사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산모의 죽음에 대한 언어를 잃어버렸다. 거의 모든 산모가 무사히 출산하는 마당에 굳이 평범한 산모들에게 겁을 주거나 저주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잘 모른다. 애 낳는 것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제왕절개 수술 동의서의 한편에는 '... 사망 등의 합병증...'이 적혀 있겠으나, 보험 약관에 동의하듯이 기계적으로 서명할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가항력으로 일어나는 죽음이 드물게 존재한다. 인간의 출산은 참으로 오묘하고 복잡한 것이라서, 멀쩡하던 산모도 갑자기 예기치 못한 합병증이 생기기도 하고, 의료진이 제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나쁜 경우가 생긴다. 그간은 매우 드문 일이기에 극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멀지 않은 미래에 보다 많은 이들에게 출산의 위험이 가시적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임산부 연령이 높아지면서 고위험 산모가 급증했다. 출산 관련 의료 인프라가 붕괴하며 빠른 의료 처치를 받지 못하는 지역이 늘어났다.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는 씨가 말라가는데... 나도 분만 진료를 하지 않고 있는 입장에서 할 말이 없다.)


이런 시점에서 신문의 모성 사망 특집이 더 반갑다. 특히 인터랙티브 기사는 유명을 달리한 산모의 사연을 보여주는데, 독자가 직접 클릭해서 망자의 면면을 들춰볼 수 있다. 여기엔 모성 사망을 다루는 언어를 회복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인식하게 하는 의의가 있다. 모성 사망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출산을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를 제대로 직시하는 일이다. 고령층에게 많은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어른들이 아기들을 잘 돌봐야 하는 것처럼, 산모의 건강은 우선적 관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애 낳는 일은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최대한 죽지 않게끔 나서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집중 치료가 가능한 지역 거점 분만 병원, 인적 지원과 시설 확보, 원활한 협진 연계 시스템, 사고에 대비한 합리적인 구제 방안... 오늘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누군가는 죽는다.


[1] Hannah Ritchie. How child mortality has declined in the last two centuries. Published online at OurWorldInData.org. 2018.
Retrieved from: 'https://ourworldindata.org/child-mortality-global-overview'

[2] 김두얼. 행장류 자료를 통해 본 조선시대 양반의 출산과 인구변동. 경제사학.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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