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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16. 2020

나를 믿게 되었다.

(feat. 골든마이크 & 이그나이트 청춘)

   1타 강사로 유명한 스카이 에듀의 이지영 강사는 스스로가 수능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영역을 가르치지만 전국에서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신 있고, 잘했던 것은 논술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그녀가 글짓기 대회와 논술 경시대회로 상이란 상은 다 쓸어 담으면서 받은 상장과 상패만 방 한 칸을 가득 채울 정도라는 것이다. 그중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주최한 전국 국어논술 경시대회에서 받았던 금상도 있다고 하니, 그녀 표현처럼 그야말로 논술로 전국을 씹어 먹은 수준이다.


   ‘스타 강사’는 단순히 많이 안다고 해서 혹은 시험에 나올 문제를 족집게처럼 집어낸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많이 아는 것은 충분조건에 불과하다. 자기가 아는 것, 생각하는 것, 배운 것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한 사람만이 진짜 스타 강사가 될 수 있다. 이지영 강사 본인 스스로도 말했지만 글과 말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나름 재능이 있었으니 그녀가 스타 강사 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지영 강사뿐만이 아니다. 소위 글 좀 쓴다는 사람들, 말 좀 한다는 사람들 혹은 더 넓게 봤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는 사람들치고 어릴 적에 상 한 두 개 안 받아 본 사람은 정말 드물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듯이 숨기려 해도 그 재능은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 자신을 믿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글쓰기, 논술로 이렇다 할 실적을 거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관심이 없던 수학은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왕수학 전국대회도 나가보고, 고등학교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치른 시험에서 입상도 해봤었다. 반면 교내 백일장이니 논술 경시대회 혹은 만년필 회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등에도 여러 차례 도전해봤음에도 번번이 고배만 마셨다. 기껏 해야 귀찮아서 아무도 손들지 않는 교지 편집에 두 번 참여해본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생 때 수능 공부하면서 다루는 문학 지문들을 이미 초등학생 시절에 달달달 외울 만큼 많은 책을 읽었고, 방학과제물로 일기뿐만 아니라 독후감과 NIE 학습법 후기, 여행 답사기 따위의 글을 나름 꾸준히 썼던 나로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내 재능으로는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없겠다는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제라스를 다니면서 스피치 수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즉석에서 그럴듯하게 스피치를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신선한 사례를 가져와도, 잘한다는 칭찬은 있었으나, 그게 끝이었다. 여전히 면접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의 스피치 영상은 우수 영상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 페이스북에 올라갔지만 내 영상은 올라가지 않았다.


   내가 봐도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 내 스피치가 페이스북에 올라가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난 재능이 없구나.’는 생각에 다시 한번 좌절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30년을 살아왔다. 사물함에는 교과서 대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가득 찰 만큼 활자 중독 수준으로 책을 읽어왔다. 단순 반복되는 일보다는 레고나 퍼즐처럼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원했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대학교 때는 신문사 동아리도 하고, 팀 프로젝트 보고서는 내가 도맡아서 썼었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작가의 꿈도, 기자의 꿈도 포기했을 뿐이다.


   입사 후 8개월 만에 퇴사를 하면서 글쓰기에 올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변변한 경력도 없는 나이 서른이 넘은 신입사원이 재취업을 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5년 차 대리, 과장과 동갑인 현실 속에서 다시 막내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도 덜 받고,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다고 말하지만 2018년까지는 아니었다. 이렇다 할 입상 실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판한 경험도 없으며, 그나마 대학교 단과대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었지만 그때도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19일, ‘동행이라 다행이야’라는 주제로 2019 이그나이트 청춘에 참가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백수처럼 집에만 있지만 마냥 노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가 잘했다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함께 참가했던 윤희라는 친구가 ‘제 친구가 진짜 혼자가 아닌 걸 깨달은 사람 같다면서 길호님 발표가 제일 좋았대요.’라고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 16일에 열리는 골든마이크 시즌 8에도 지원했다. 어차피 글쓰기 강사를 하려면 전달력도 중요하니까 연습 삼아서 나가보기로 했다. 때마침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여운이 남아 있었고, 2019 이그나이트 청춘을 기점으로 내 스스로도, 부모님도 많이 변화했기 때문에 ‘미운 오리 새끼도 날 수 있어요’라는 좋은 이야기가 준비되었고.


   아쉽게도 우승은 못 했다. 와줬던 친구들과 부모님의 증언에 따르면 다리가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엄청 떨었다고 했다. 실수로 PPT 장표를 3,4번 정도 잘못 넘겼었는데 발표가 끝났을 때 마이크를 잡은 손이 땀으로 흥건했던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엄청 긴장한 모양이었다.


   우승도 못하고 엄청 떨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골든마이크 시즌 8은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애초에 골든마이크 시즌 8에 도전한 이유 자체가 서울대를 못 가고, 대기업을 못 간 미운 오리였던 내가 글쓰기 강사라는 새로운 꿈을 응원하기 위한, 내 스스로에 대한 다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제 자신을 믿고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이유였다.


   무엇보다도 지난 2019 이그나이트 청춘의 발표 주제인 ‘동행이라 다행이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큰 임팩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중 평가단의 소감 발표를 묻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길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사라져 버린 길을 가라고 아이에게 강요한 건 아닐까. 아니면 조금 있다가 사라져 버릴 길을 아이에게 가라고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 때문에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 때문에 젊은 분들이 더 방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주셨기 때문이다.


   32년 동안, 공허한 메아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외쳐도 바뀌지 않는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잘못되었나? 내가 의지가 부족한가? 주변에서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패배자의 비겁한 변명인가?’라는 자괴감이 내 목을 졸라왔다.


   드디어 부모님께 인정받았다.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서울대를 졸업하지도, 대기업에서 근무하지도 못했다. 국문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글쓰기와 관련해 수상 실적이나 출판 경험 또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도 조금은 상대방에게 진솔한 마음을 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머니가 2019 이그나이트 청춘이 끝나고 하신 말이 있다. ‘넌 그런 작가의 말 같은걸 어디서 찾았어?’ ‘드라마에 나온 대사가 맘에 들었는데 찾아보니 그 대사의 원본이 루쉰 작가의 글이라고 하길래 기억하고 있었지’ ‘네가 맨날 유튜브만 보고 노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너한텐 도움되는 일이었구나.’


   만일, 지난날 내가 드라마 다모를 몇십 번씩 돌려보지 않았다면, 루쉰의 희망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다면, 히말라야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동행이라 다행이야’는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뜬구름만 쫓는 못난 아들이었을 것이다. 토익 공부하고, 자격증 준비하고, 자소서 쓰는 일이 아닌, 아버지가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던 일들이었지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2019 이그나이트 청춘과 골든마이크 시즌 8을 거치면서 가장 큰 수확은 내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든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진 못해도 단 몇 명에게만이라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고, 조급한 마음도 들지만 계속, 걸어가 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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