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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Nov 01. 2020

제 취향은 존중해주시죠.

  “미쳤다고 먹지도 않을 커피를 300잔이나 시켜먹고 요즘 애들 정말 이상한 거 같아.”


  지난 여름 스타벅스 여의도점에서 이벤트로 출시된 스타벅스 서머레디백을 받기 위해 300잔의 커피를 주문하고 커피는 마시지 않은 채 사은품으로 증정된 서머레디백만 가지고 사라졌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부모님은 그 기사를 보며 ‘요즘 젊은 것’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혀를 차셨다. 부모님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SNS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고, 뉴스에까지 보도되었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커피 한 잔에 5,000원이었다면 150만원, 10,000원이었다면 300만원을 주고 서머레디백을 산 셈이다. 그 사람을 비난하는,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돈 낭비로 보일 것이다. 나 역시도 300잔을 먹지도 않고 버리면서까지 스타벅스 서머레디백을 갖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고,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알 것 같았다. 어릴 때 원하는 포켓몬스터 씰을 모으기 위해 빵을 사서 먹지도 않고 친구를 주고 스티커만 챙겼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500원 짜리 빵과 300만원이라는 커피 값을 비교하면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17잔의 커피만 마시면 서머레디백 1개를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저렴한 메뉴 조합으로 계산하면 6만 8400원이면 1개의 서머레디백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300잔을 시킨 사람은 17개의 서머레디백을 가지고 갔던 것이다.


  부모님께 아무리 팩트를 설명해드려도 17개씩이나 쓸데없이 뭐 하러 받냐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17개 중 15,6개는 중고나라 매물로 나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의도 증권가의 한 직원이 VIP 고객을 위한 선물용으로 사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서머레디백이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명 스타벅스 재테크, 스타벅스 창조경제다. 이미 오래전부터 ‘스타벅스 xxx’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매장에 재고가 없어서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 주변에도 크리스마스 시즌 다이어리 등 스타벅스에서 이벤트를 할 때마다 열심히 커피를 마시며 이벤트 제품들을 받아 챙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처 매장에서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중고나라에서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10개의 서머레디백을 1만원씩만 웃돈을 주고 팔아도 10만원이 남는 장사인 것이다. 웃돈을 주고서도 구할 수 없는 서머레디백을 선물로 받은 고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아마 부모님의 눈에는 17잔의 커피를 마시고 서머레디백을 받는 사람들만큼이나 웃돈을 주고 서머레디백을 사려는 사람들도 이상해 보일 것이다. 이해는 한다. 부모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부엌에서 밥솥의 밥을 긁어먹다가 밥주걱으로 맞았을 만큼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부모님께는 절약이 최고의 미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분들은 눈앞의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브랜드 컨셉이니 가치니 하는 것들을 고민할 여력이 없었으니까.


  재미있는 것은 부모님이야 세대가 다르니까 스타벅스에 열광하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치더라도 ‘요즘 젊은 것’들에 가까운 나 역시도 스타벅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보다는 톡 쏘는 콜라 한 잔이 좋고, 어쩌다 카페를 가더라도 아메리카노보다는 달달한 핫초코가 더 좋아하는 내게 카페는 그저 ‘노트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 혹은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스타벅스뿐만은 아니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줄줄 외우고 있는 아이돌에도, 최신 음악에도, 예능에도 관심이 없었다. 현대극보단 사극을, 축구보다는 야구를, 바다 여행보다는 등산을, 유럽 여행보다는 오지 여행을 좋아했다. 내 스스로 뇌 구조가 다르다고 말할 만큼 꽤나 별난 취향을 갖고 있었다. 어쩌다 내 취향을 얘기할라치면 ‘아재 같다.’는 핀잔만 듣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취향을 굳이 밝히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동아리 2개를 비롯해 이모임, 저 모임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음에도 혼자 여행가고, 혼자 타과 수업을 듣고,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이 길었던 이유였다.

  혼자였던 시간도 익숙하고 취향이 남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공감 받고 싶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일종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비싼 돈을 들이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크리에이터 클럽이니 트레바리니 하는 모임들에 사람들이 참석하는 이유였다.


  올해 5월부터 시작한 트레바리 같은 경우에는 공통의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읽고 만나서 토론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미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모임인데 관심만 두고 신청은 안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책을 안 읽는 편은 아니라서 굳이 돈까지 내고 읽어야 하나?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약간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차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 ‘사진을 읽다.’ 모임에 신청했고 2시즌 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매번 모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그 분위기 그대로 뒷풀이까지 이어지고 있다. 멤버들의 구성만 놓고 보면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부터 학생까지 꽤나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사진’이라는 공통 주제가 주어지니 나이, 직업 등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매 모임마다 대구에서 올라오시는 K 어르신은 두 번째 모임 때 뒷풀이 비용을 쏘기도 하셨다. 만난 지 2번 밖에 되지 않아 이제 겨우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는 정도였기에 다소 의아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나 직업을 떠나 같은 취미 생활에 대해서 열정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가 고프셨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아졌어도 아무래도 어르신 연배에서 사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활동에 가깝다. 당연히 친구 분들 중에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만한 분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사진 동호회 같은 곳은 나이 많은 사람은 잘 안 받아주려고 한다. 직장 내에서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관계가 관계다보니 서로 불편하니 깊은 대화를 나누기 애매할 수밖에 없다. 반면 트레바리는 다르다. 나이니 직업이니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게 얼마든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 사실 자체가 너무 좋으셨던 것이 아닐까?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크리에이터 클럽은 더 신기한 모임이다. 3개월 동안 정해진 주제로 글을 써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모임이 진행된다. 대부분 퇴근하고 멀리서 오는데도 대화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모임 시간을 넘겨 뒷풀이에서까지 밤새 이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크리에이터 클럽의 백미는 ‘크클링’이다. 일종의 소모임인데 크리에이터 클럽 회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소모임을 개최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참석했던 크클링은 등산이었다. 평소에 등산가자고 하면 주변에서는 ‘어차피 올라올 거 뭐 하러 올라 가냐?’는 핀잔과 아재 같다는 소리만 들었지 함께 가자는 사람은 없었기에 너무도 반가웠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기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최근에 사진에 관한 크클링에 참석했을 때도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S와 방향이 같아 지하철을 함께 탔었는데 단 0.1초의 침묵조차 없이 이야기가 끝나질 않았다. 처음 본 사이였음에도 사진이라는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가 너무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대부분의 모임에서는 어색어색 하게 각자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헤어졌을 테니까.


  크클링에는 등산이나 사진 같은 활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애 문제, 진로 문제, 우울증 같은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문자 그대로 특정 음식, 향수, 영화 등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같은 취미, 고민, 같은 취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강남점의 경우 매일 정기모임과 크클링을 합쳐 10개 이상의 모임이 열리는데 거의 매일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사람들이 모여든다. 특별히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인정하는 무슨 자격증을 따는 것도 아니고, 배우는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그냥 이야기만 하는 시간인데 사람들이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돈까지 내면서 이 모임을 찾는 이유는 나와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을 찾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 동안 살면서 맺어온 관계들은 대부분 물리적인 공통분모였다. 부모형제와는 같은 피를 가졌고,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취향이 정말 잘 맞는, 정신적인 공통분모를 가진 경우도 있지만 정말 상극인 경우도 꽤나 많다. 부모형제와도 내 취향이 전혀 다른데 하물며 180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취향이 다를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친구 사이든, 직장 동료 사이든 공통분모가 매우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대화를 해도 끼어들 수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다. 친구 관계라면 겉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심한 경우 ‘왜 쟤들은 나와 놀아주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는 기계처럼 일만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아무래도 가치관이나 취향이 서로 달라 오해를 사거나 오해해서 생기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왕이면 같은 취향을 가졌으면 좋겠지만 취향이 다를 확률이 높은 만큼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한다거나, 비난한다거나,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든, 다방에서 쌍화차를 마시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것이 옳고, 옳지 않다고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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