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운 Nov 01. 2020

성공한 덕후의 시대

  

  매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경기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재호 엄마’로 통하는 오츠카 시게코 씨다. 그녀가 두산 베어스와 김재호 선수에게 푹 빠지게 된 건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배용준을 좋아해 한글을 공부할 정도로 한류 문화에 관심이 많던 오츠카씨는 우연히 전지훈련차 일본 쓰쿠미를 찾은 두산 베어스 경기를 보게 되고, 김재호 선수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잠실 주말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의 매주 한국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종종 일정이 맞을 때면 부산 원정 경기도 찾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의 열정에 감탄한 두산 베어스 관계자들이 그녀에게 ‘재호 엄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김재호 선수도 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가끔 식사도 할 정도였다.


  오츠카 씨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아이돌 가수, 배우를 위해 직접 경기나 공연을 보러 가고, 팬 사인회에 참석한다. 생일이나 기념일마다 선물을 챙겨주고, 그들을 위한 광고가 걸리며 심지어는 항공 스케줄에 맞춰 해외까지 따라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덕후의 시대’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덕후’라는 표현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음침하고, 부정적인 단어였다. 대인관계에 서툴고, 주로 온라인상으로 특정 분야에 파고드는,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덕후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초기에 덕후라고 소개된 사람들 대부분이 일반 대중들이 공감하기 힘든 취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10년 전 화성인 바이러스에 나왔던 한 출연자는 2D 캐릭터에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겠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최근에도 취미 활동과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많은 돈을 투자하거나, 시간을 쓰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더더욱 ‘만화 캐릭터와 결혼하겠다.’ 같은 주장을 이해하는 것이 당연히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에는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갖고 한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덕후’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외톨이가 아니라 그야말로 집요한 집착을 통해 남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연출한 피터 잭슨 감독이 대표적이다. 피터 잭슨 감독은 1987년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오는 호러물로 데뷔했다. 그의 초창기 작품 호평을 받는 ‘데드 얼라이브’는 또한 좀비물로 일명 판타지/괴수물 전문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판타지/괴수물 전문 감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골수 ‘톨키니스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번역하자면 ‘톨킨 빠’ 정도 되는 톨키니스트들은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톨킨이 남긴 작품을 분석해서 지도를 만든다거나, 원작의 연혁을 정리하는 등 그야말로 작품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반지의 제왕’, ‘호빗’, ‘실마릴리온’ 등 톨킨이 쓴 작품과 관련 설정들은 톨킨 이후의 판타지 소설과 게임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 톨킨의 작품을 보면서 ‘연구’하고 사람들과 ‘토론’하며 톨킨을 ‘덕질’했던 피터 잭슨의 경험들이 그가 반지의 제왕을 연출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나아가 판타지/괴수물 전문 감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반지의 제왕’의 성공을 바탕으로 피터 잭슨 감독은 2005년 평생 소원이었던 킹콩을 연출하여 다시 한번 성공했다.)


  판타지에 빠져 불태운 열정을 바탕으로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피터 잭슨 감독은 이른바 성공한 덕후인 셈이다. 피터 잭슨 감독만의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슬램덩크 포에버’ 팀의 김경준님도 성공한 덕후 중 하나다.


  평범한 직장인 중 한 명이었던 그는 그저 슬램덩크와 농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슬램덩크와 농구 관련 글을 꾸준히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리뷰가 아닌 나름의 분석을 통한 ‘전국대회 우승팀은 어디었을까?’, ‘NBA 방식으로 드래프트를 한다면?’과 같은 자신만의 콘텐츠들을 쓰기 시작하자 어느새 슬램덩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뜨는 파워블로거가 되었다.


  때마침 톨키니스트들처럼 슬램덩크를 인생 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원작자인 이노우에 선생님을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슬램덩크 포에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출판사 사정과 이노우에 선생의 개인 사정으로 만남은 불발되었으나 이후 그들은 ‘슬램덩크 인생 특강’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김경준님의 경우 처음부터 함께 한 멤버는 아니었으나 슬램덩크에 대한 열정이 인정받아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가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왔던 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슬램덩크가 너무 좋아서, 슬램덩크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을 쪼개 일본어를 공부하고, 농구 규칙을 공부하고, 몇 번씩 책을 다시 보면서 생각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돈이 되지도 않는 그 시간과 노력들이 무의미하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흔히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대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아이돌’을 좋아하지만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이돌’이 되어야 하지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적어도 3년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믿었다. ‘슬램덩크 인생특강’이라는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준님이 엄연히 출판 작가로 이름을 올린 이상 그 누구도 그의 노력을 헛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전문가 수준의 열정과 흥미를 갖고 한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한 덕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만 우직하게 한 사람들 중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처럼 살아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가 무수히 많다. 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조차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작가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 공식적으로 팔린 작품은 딱 1점에 불과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천재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고흐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불쌍하게 죽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편지를 한 번 보내면 일주일이 걸려서 받아보던 1800년대 후반을 살았던 고흐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불타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의 소식이 한국까지 전해지기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2020년을 살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돈은 벌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브랜드가 된다고 한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오래 할 수가 없다. 계속 트렌드가 바뀌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꾸준히 열정을 쏟아부으면 그만일 뿐이다. 당장은 돈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수많은 ‘성덕(성공한 덕후)’들이 보여준다. 꾸준히 하면 된다고. 너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작가의 이전글 제 취향은 존중해주시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