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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23. 2020

제너럴리스트 vs 스페셜리스트

   마케팅 담당자, 광고 기획자를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라면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컨셉, 크리에이티브한 발상 뭐 기타 등등.


   나 역시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하는 마케팅 교수님을 보면서 대학생 때 마케팅 기획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었다.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크리에이티브하다고 믿었고, 마케팅을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케팅 기획자를 일종의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들이 무슨 영화를 보고,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재밌어하고, 요즘 유행하는 색깔은 무엇인지, 힙한 장소는 어디인지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만 집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크리에이티브는 남들과 다른 취향, 다른 사고방식에서 나온다고 믿었으니까.


  계약직이나마 직무 경험도 있었고, 나름 대외활동이니 외부 교육이니 열심히 챙겨들으면서 준비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취업이 안 됐고, 결국 플랜 B였던 중소 마케팅 대행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었다.


   얼마 전 마케터의 여행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실패했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관찰을 통해 소비 트렌드를 이해하고, 투자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투자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통해 좋은 취향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다양한 맥주를 마셔보고, 여러 가지 브랜드의 옷을 입어본 사람만이 자신만의 취향을 가질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알아본다는 것은 곧 좋은 투자처를 발견한다는 의미다.


   그런 그조차도 순수하게 자신의 취향 때문에 투자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고 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햄버거의 본고장 함부르크 등에서 수제 햄버거를 맛보다보니 햄버거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생겼는데 미국의 대표 버거 브랜드인 쉐이크쉑은 자신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쉐이크쉑이 처음 한국에 진출했을 때도 투자하지 않았고,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쉐이크쉑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선배 특강을 마치고 H 선배가 ‘경영학과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경영지원 직무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겠지, 하지만 크리에이티브를 요구하는 마케터는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다.


   완벽한 오산이었던 셈이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이고, 마케터는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쉐이크쉑을 싫어한다고 해서 쉐이크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펭귄을 싫어한다고 해서 펭수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왔던 떡볶이 사장님은 전형적인 스페셜리스트였다. 사장님은 23년 동안 떡볶이를 만들어 팔아왔고, 더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고향 해남에서 고춧가루를 공수해와 직접 고추장을 담갔다고 했다. 고추장을 베이스로 만든 양념장에는 배, 사과 같은 각종 과일까지 담아 정성껏 만들었다. 이 정도 정성과 노력이면 성공해야 마땅하겠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하루 떡볶이 한 판을 완판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백종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입맛이라고 말하면서도 ‘여태껏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이 없다’고 혹평했다. 맛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야 없겠지만 손님이 맛있게 먹고 비우 접시와 팔지 못해 남은 음식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백종원의 조언에 따라 시중에서 파는 고추장과 간장 조금을 섞었을 뿐인데 맛은 훨씬 좋아졌고, 사장님의 소원이라던 떡볶이 한 판은 영업 시작 반 나절만에 완판되었다. 각자의 취향은 틀린게 아니기에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쉐이크쉑, 골목식당의 떡볶이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갖춰야 관심을 끌 수 있고 물건을 팔 수 있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스페셜리스트의 최후는 비참할 뿐이다. 천재 화가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는 극도의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지금 그의 그림은 사상 최고가에 거래되는 기록을 세우는 등 미술사에서 인정받는 걸작이지만 그가 직접 팔았던 그림은 ‘붉은 포도밭’ 한 장 뿐이었다. 전업 화가가 되고 10년이 지났음에도 생활비의 대부분을 동생 태오에게 유지해야 만큼 가난했던 그가 우울증을 겪은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다.


   극한의 크리에이티브를 요구하는 예술가의 세계에서조차 남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다. 하물며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마케터,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작가는 어떤가.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 동안 마케팅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었지만 어쩌면, 마케팅을 못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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