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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n 16. 2021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나를 처음 본 사람들 혹은 잘 모르는 사람들 – 제라스를 비롯해 최근에 만나는 스터디 그룹 – 은 나를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내가 법조인이나 회계사를 선택했다면 잘했을 것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스터디할 때의 나는 남들이 신경쓰지 않고 넘기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모두까기를 시전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검사라는 역할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아마 내가 검사를 할 기회는 이번 생에 동안 없을 것이다. 1차적으로는 내 머리가 방대한 법전을 외울 만큼 좋지 못한 탓이고, 2차적으로는 머리가 나쁘면 노오오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노력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는 내가 이성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불나방이기 때문이다.


무계획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인생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인드로 모든 게임에서 무리수를 던지면서 살아왔다. 고스톱 열두 판 중 열한 판을 내리 져도 한 판만 이기면 되지 하면서 못 먹어도 고를 외치고, 당구 칠 때는 돌리고돌리고 돌리다보면 들어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쿠션만 죽어라 돌렸다.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관점을 따르는 경영학과의 입장과는 상반된 사람이었다. 경영학은 모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합리성이라고는 1 나노그람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인간의 합리성을 대전제로 삼는 경영학과 수업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내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 할 거 없이 한 번쯤은 문 앞에서 고민하던 CPA는 듣자마자 손도 대지 않았고, 사학과니 관광학부니 타과 수업들을 들으러 경영대 밖으로 돌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막연히 뼛속까지 순도 100% 문돌이라서 숫자로 말하는 경영학과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백글단 모임에서 내가 추구하는 글의 방향성과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평소 행동도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내가 쓰는 글도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된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글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써왔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네 페북은 잘 보고 있는데 그런 글을 너무 많이 쓰는 건 좋지 않아."라며 조언을 할 정도였다. 그 시간에 시험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을 테니 경영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손해를 피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성향이 사람의 본성이라고까지 말하는 경영학과 자본주의가 마치 절대불변의 진리인 세상이다. 외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아닌데 내가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자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삼국지의 관우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읽어주던 동화책 말고 내가 직접 책을 펴고 읽었던 첫 번째 책이 삼국지였다. 어렸을 적 사촌형의 집에서 빌려온 삼국지 시리즈였는데 공교롭게도 5권 중 4,5권이었고, 4권의 하이라이트는 관우의 죽음과 유비의 복수였다. 죽음을 눈앞에 마주한 상황에서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는 손권의 제안에도 쿨하게 죽음을 선택한 관우가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신하들 모두가 기를 쓰고 반대하는데도 관우의 복수를 하겠다며 수십만의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킨 유비나 전쟁을 준비하다가 부하에게 살해당한 장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린 마음에 꽤나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당장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깟 자존심이고 의리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피해를 최소화하기는커녕 피해를 극대화하는 관우나 유비의 모습은 비합리적 선택의 최고봉이다. 비단 관우 뿐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동안 읽은 수천 권의 역사책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패배할 것이 뻔한 황산벌로 향하면서 가족의 목을 직접 베었던 계백 장군이 있었고, 이방원의 하여가에 단심가로 답하며 선죽교에서 죽어간 정몽주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겠다며 10,000 마리가 넘는 소를 포함한 집안 재산을 다 처분하고 만주로 이민 간, 조선의 10대 부호 이시영 선생, 죽을 것을 알면서 만세를 부르며 앞장선 유관순 열사, 도시락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과 이봉창이 있었다. 역사 속 위인들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친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을 보면서 자라다보니 나 역시도 당장의 손해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때로는 누가 봐도 손해 볼 것을 감수하면서도 덤벼드는 모습이 그야말로 불나방과 다르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지나치게 퍼주는 호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비합리적이라 말하는 짓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때 계산적으로 대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까.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지만 어떤 식으로든 돌아왔다. 동아리 선배들에게 아직까지도 막내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 힘들 때면 기꺼이 술 한 잔 사주는 형, 누나가 있었으며,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는 여수에서, 울산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준 친구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뜬구름잡는 소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내 생각이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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